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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준비

사랑의 시작과 마무리

by 대전은하수 고승민

여명도 먼 시간

검은 하늘 아래 달리는 자동차 불빛만이

밝혀주는 고속도로를 올라섰다

잠도 덜 깬 상태로 희미하게 흔들리는 도로를 달린다

7년 동안 왕복하는 이 길을

오늘도 무거운 마음으로 페달을 밟는다

졸음을 털어내려 휴게소를 세 번씩 거치며

두 시간반이 넘는 시간에 도착한 부모님 집.


병원에 갈 시간이 아직은 시간반 남았다

부모님 머리를 감겨드리고 온몸을 비누수건으로 닦아 내린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가 불리며

각질을 닦아내는 손길에 문득 생각한다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 부모님이 나를 목욕시키고

머리를 감기며 발가락 사이사이를 씻어주셨을 때

어떤 마음 어떤 기분이셨을까...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기만 바라셨을까?

그 작은 손과 발을 씻기며

희망과 소망,

그리고 기쁨으로 가슴 벅차셨을까..

나는 이제, 부모님의 손길을 되돌려 드리고 있다

머리를 감기고 발을 씻겨 드리며

이별의 순간을, 그 끝을 생각하며 행하고 있다

아 너무 슬프다


아버지는 시인으로, 음악가로, 선생님으로, 신앙인으로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선량한 사람으로

살아오셨는데 왜 마지막이 이렇게 힘겨운지

그냥 닥치는 운명이라 생각하기엔 가슴이 너무 아프다


황혼의 저녁하늘이 아름다운 이 시절에

푸르른 색조가 도시를 덮어가며, 산야를 물들여 가고

작은 바람에도 산들 거리는 푸른 잎들의 생동감과

기분 좋은 바람이 머리를 쓰다듬고

높고 파란 하늘이 천지를 포근하게 감싼 안으며

동쪽 하늘 햇살 품은 청명한 하늘에 몸을 던져 날고 싶은

이 사랑스러운 계절에

가슴 아픈 끝을 바라다보는 이 마음이 애처롭다

내가 할 수 있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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