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 오는 어느 날

by 대전은하수 고승민

비 오는 날의 귀가,

어느 비 오는 날이었어요
마냥 거리를 걷고 있었죠
회색 우산 하나 들고 말이에요


이슬비였다면 우산을 접고
몸으로 받으며 걸었겠지만
그날의 빗줄기는 꽤 굵었죠

땅거미 질 무렵부터 서쪽으로 걸었어요


왜냐하면, 그쪽에 집이 있으니까요
인생의 끝에 도달한 듯한 터전이

그곳에 있었죠


어느덧 거리는 화려한 불빛으로 물들었고
가로등 아래서 고개를 들어 하늘 보면
불빛에 떨지는 빗방울이
하얗게 내 얼굴을 때리곤 했죠


거리의 어느 점포에선가
샹송이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타닥타닥 아스팔트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음악을 얹으니 밤거리에
운치를 한층 더해주었죠


젖은 거리는 빗물에 반사되어

불빛에 눈이 부셨지만

이 시간은 멜로디에 휩싸여

가로수 아래서 샹송과 사랑에 빠졌어요

제목도 가사도 모르는 들어 봄직한 곡이에요


덧없이 내리는 계절의 비는

때가 되면 반복되는 인생과 같아요

하루가 또 저물고 나의 생도 하루 없어져요

변함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를 사랑한다는 거죠


불 밝힌 밤의 도시를

비와 함께, 음악과 함께

걷는다는 것은

도시 안에서 쓸쓸히 나이 먹어가는

나에겐 즐거움이고 행복이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