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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 속의 나

듣는다는 살아 있다는 증거

by 대전은하수 고승민

난 음악 평론가도 아니고 특히 대중가요의 평론에 대해 얘기할 위치나 능력도 없지만 내가 살아온 세상의 한 부분이고 음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내가 느끼고 접했던 대한민국의 대중가요가 나에게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세상 풍파를 함께 겪어 왔는지 한번 생각해 본다


대중가요와의 첫 만남- 순수한 즐거움의 시절

대중가요를 언제 처음 접해 봤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가요를 좋아하고 관심? 이라기보다 그 어린 시절에 신나는 음악의 선율에 나의 몸이 반응한 것은

'님과 함께'다 바로 남진의 노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곡이 언제 발표되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국민학교 3학년쯤 되었던 것 같다

아마도 1970년 전후였던 것 같은데, 물론 찾아보면 언제 발표되었는지 금방 알겠지만 그럴 것까지는 없다는 생각이다 내가 가요를 접하고 느끼고 좋아하고 그 노래들을 불렀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까

그 시절엔 모든 집에 tv가 있지 않았고 좀 사는 집들 만이 가지고 있는 사치품이었다

만화영화보다 춤추고 노래하는 프로가 더 좋아 그 시간만 되면 옆 집의 tv는 내 것 인양 붙들고 살았다


남진의 '님과 함께'와 비슷한 시기에 불렸던 곡으로 기억되는 것은 김추자의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거짓말이야' 같은 대단힌 히트곳이 계속 나왔다

남진보다 선배인 이미자가 '동백꽃 아가씨'등으로 가요계를 지배하던 시절이었지만 나하고는 음악적인 감성이 맞지 않으니 나에게는 귀에 들리지도 않았고 불러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나에게 70년대의 대중가요는 '님과 함께' '커피 한잔' '거짓말이야' 같은 노래들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다

물론 수많은 노래들이 있지만 크게 각인된 노래는 몇 곡 되지 않는다, 왜냐면 어린 시절이었으니까


"두마안강~ 푸른 물에.." 오랫동안 국민가요로 불렸던 김정구 선생님의 노래다

어린 시절에야 이 노래를 좋아했을 리 만무하지만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계속되는 국민가요의 한 곡을 안 듣고 안부를 수 없었다 손가락과 손바닥을 부딪치며 박자를 넣어 많이도 불렀고 들었던 노래다


암튼 남진의 노래에 저절로 몸이 반응하는 나 자신이 그때는 몰랐지만 결국 나는 그쪽이구나 생각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남진의 노래 '빈 잔'등을 즐겨 부르곤 한다

당대의 라이벌인 나훈아도 있었지만 그 시절엔 잘 몰랐고 훗날 알게 되고 나훈아의 노래도 많이 부르긴 했지만 나하고 어울리는 분위기도 아니고 감성이 서로 달라 그다지 좋아하는 풍의 노래가 아니다

노래 잘하기로 패티김을 빼놓을 수없다. 내가 꼽는 실력 있는 가수의 표본이다

조용필도 있었지만 나하고는 크게 연결 고리가 없었다. 대학 연극부 시절에 무대에서 연습하던 중 누가 틀었는지 "엄마야, 나는 왜~" 음악이 흐르자 몸을 흔들어 댔던 기억이 있다


청춘과 낭만의 통기타 시대의 발화

또 한편으로는 통기타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한 대한민국 가수 중에 가장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조영남이다

음악대학을 나와서가 아니라 그의 창법과 목소리는 내가 좋아하는 실력과 감성을 갖추었다고 생각하기에 특별한 히트곡이 없는데도 그가 노래 부르면 그 음악적 재능에 매료되곤 했었다

조영남과 트윈플리오, 송창식과 윤형주 그리고 김세환, 이장희 등으로 이어지는 통기타의 시대가 젊은 층을 파고들어 청바지와 기타는 그 시대의 핫 한 아이콘이 되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친구 몇 사람만 모여도 둘러앉아 기타를 치며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며 똑같은 손동작으로 오락을 즐기곤 했다 그 시대에 걸맞은 풍경이었다고 생각되며 그 시절이 그립고 돌아가고픈 마음이다.


요즘은 구시대의 유물 취급받지만 그 시절엔 카세트테이프가 전부였다

송창식 노래모음집을 구해서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들었었다

'고래사냥'등 영화음악으로도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이장희의 '마시자 한잔의 술' 남자들의 우상 같은 곡들이었다


사회적으로 변혁기에 있었고 구시대에서 새로운 시대의 상황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사회상에 연예계도 굴곡진 현상이 생기며 대마초 파동이 있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서 가요계는 크게 요동치며 세대교체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록과 포크세대 1980년대 - 격변의 시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로 넘어오면서 발표된

산울림의 '아니 벌써', 사랑과 평화의 '한 동안 뜸했었지' 같은 류의 음악은 그동안 듣도 보도 못했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기념비 적인 노래라고 불릴 정도로 센세이셔널했다고 생각된다


고등학교 2학년 1977년에 대학가요제가 열렸다

대학생들의 창작곡과 번안곡들을 가지고 경연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곡들이 대학가요제를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1회 대회에서는 '나 어떡해'라는 서울대 샌드페블즈가 거머쥐었고 이 노래는 정말 젊은 시절에 안 불러 본 사람이 없을 정도의 히트를 했던 곡이다.

정작 내가 가장 좋아했고 항상 불렀던 곡으로는 동상을 수상한 '젊은 연인들'이란 곡인데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음악이 나와 맞아 들어 정말 사랑했던 곡이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많이 불렀고 들었던 음악은 '어쩌다 마주친 그대'등 송골매의 음악들과, 이용의 '잊혀진 계절'등 밴드음악의 가슴을 때리는 신나는 음악과 잔잔하며 서정적인 곡들을 사랑했다

빼놓을 수 없는 가요로는 김수철의 '젊은 그대', 전영록의 '종이학' 같은 곡들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음악으로는 방송국에서 진행하던 이산가족 찾기가 어마어마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오면서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이 공전의 히트를 했고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같은 국뽕 노래도 나왔다


정말 잊히지도 않고 잊을 수도 없는 노래는 내가 졸업하고 취업 후에 어느 날 대한민국은 온통 '호랑나비'라는 노래에 취해 버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듣보잡이었던 '김흥국'이라는 가수가 들고 나와 그해 10대 가수상을 수상했다

나하고는 정서적으로 괴리감이 있는 음악이었지만 어디 가나 흘러나오는 음악이라 강제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돌, 힙합, 청소년 문화시대 - 1990년대 - 보는 음악.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사회적으로도 급격히 많은 변화의 물결이 일어났다

대한민국이 국제적인 위상이 올라가며 마이카 시대가 도래했고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이라는 희망이 물들던 시기였고 민주화를 위한 시민들의 저항이 계속되며 1987년 6월 항쟁으로 직선제를 이뤄낸 시기였다.

1992년의 어는 날, '난 알아요'를 외치면서 중얼중얼 대며 그때까지 듣도 보도 못했던 신기한 음악을 들고 나와 청소년들 사이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대중가요의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보여주는 곡이었다

아이돌 문화가 시작된 기념비 적인 곡이었다


이 시기부터 대한민국의 아이돌 문화가 세계를 넘 볼 것이라는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1990년대 중반을 넘어가며 아이돌 그룹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HOT를 필두로 SES, 핑클 같은 아이돌이 젊은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꽃 피우고 있었지만

나는 음악을 듣는다기 보다 '음악을 본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귀로는 쿵작거림을 인지하고 반응하지만

가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그냥 화면에 나와 멋지게 춤추는 영상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2000년대 이후 -- k-pop 세계로 나아가다

이미 나의 나이는 아이돌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세대가 아니었다

다만 나의 정서적 바탕이 음악과 함께하며 예능적인 감성이 풍부한 탓으로 아이돌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현란한 몸동작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하지 못했던 꿈의 연극의 무대를 음악의 무대로 바뀌어 감상하고 있을 뿐이다.


2000년대를 지나며 대중가요는 K-pop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보아가 일본 무대를 장악했고, 동방신기, 빅뱅, 소녀시대 같은 그룹들이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어느덧 방탄소년단(BTS)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이 시기의 음악을 예전처럼 ‘따라 부르고 흥얼거리는 노래’로 듣기보다는, 멀리서 감상하는 느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음악보다는 영상, 감성보다는 트렌드로 변화한 느낌이 컸다.

그렇다고 이 시대의 음악을 소홀히 여기는 건 아니다. 기술, 제작력, 기획의 정교함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고, 한국 대중가요가 이토록 먼 세계로 나아갔다는 사실에 자부심도 느낀다.


에필로그 – 음악은 나의 시간이다

그렇게 나는 대중가요와 함께 나이를 먹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느 시절의 노래든 들으면 그때의 나, 그 시간의 공기와 감정이 되살아난다.

위 글 내용에서는 없지만, 요즘도 내가 가장 즐겨 듣고 부르는 노래는 이문세, 변진섭의 노래다

이문세의 '옛사랑' '시를 위한 시' '광화문 연가', 변진섭 '홀로 된다는 것'등등

발라드 곡들이 정서적으로 너무나 나하고 맞다는 것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리고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나이가 들수록 대중가요와의 간극이 커지기도 하고, 본래 클래식과 감성적인 음악을 더 좋아하는 나로선 점점 클래식 음악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가요는 여전히 내 삶의 중요한 일부로 남아 있다.

어떤 노래는 오래된 교실을, 또 어떤 노래는 그 시절의 첫사랑을,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떠오르게 한다. 음악은 나의 기록이고, 나의 기억이며, 무엇보다도 나의 위로였다.

앞으로 어떤 음악이 나를 울리고 웃게 할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하나—나는 여전히 음악을 듣고 있고, 듣는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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