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 성장과 복지 사이에 서 있는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이 진보 정권으로 다시 이동하면서,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정책 방향이
서서히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도한 재정 지출 확대, 시장에 대한 개입 강화, 특정 집단의 이해를 앞세운 분배 위주의 정책은
단기적 지지 확보에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제의 활력을 저해하고
미래 성장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결코 추상적 경고가 아니다.
우리는 바로 옆 나라, 일본의 예를 통해 사회주의적 정책이 장기적으로 국가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선진국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일본은 오랫동안 사회주의적 색채가 짙은 국가 운영을 해온 나라다.
중소기업 보호와 종신고용,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개입, 그리고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지향해 온
정책은 외형상 자유시장경제를 채택했지만, 내용적으로는 분배와 안정에 무게를 둔
국가 개입 중심의 경제 모델이었다.
이러한 구조는 한때 일본 사회의 안정과 공동체 정신을 가능케 했지만,
결과적으로 혁신과 경쟁을 가로막고, 생산성을 정체시키며 일본 경제를 장기 침체로 빠뜨렸다.
오늘날 일본은 낮은 성장률, 고령화, 기술 경쟁력 약화, 그리고 경직된 노동시장이라는
‘정체의 그늘’ 속에 머무르고 있는 대표적 예가 되었다.
지금도 일본은 하나를 가지고 가능한 한 여러 사람에게 골고루 분배해
모두가 ‘평균치의 삶’을 살게 하는 방식을 유지하고자 한다.
의도는 좋지만 결과는 냉혹했다. 경쟁력이 떨어졌고, 새로운 시도나 변화에 대한 사회적 저항은
점점 더 강해졌다.
이제 모든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그동안의 국민에 대한 눈속임을 인정하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사회주의적 정책에 익숙해진 국민들의 마인드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안정은 곧 정체’로 변하고, 그렇게 일본은 세계 흐름에서 뒤처지는 국가의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선 바로 옆에 있는 이 사례만 보더라도, 장기적인 사회주의 기반의 정책이
어떻게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고, 결국 나락의 길로 빠지게 만드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국 역시 산업화 시기에는 국가주도형 경제정책을 택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고 자원하나 없는 최빈국에서 일어 서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감수해야 했다.
박정희 시대에는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로 모든 경제정책이 결정되었고,
정부는 산업을 육성하고 수출을 장려하며 재벌 중심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한국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몇 안 되는 나라다.
군사정권 하에서 많은 부침이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경제성장의 기초를 닦았으며
격동이 세월 속에서 성숙한 국민들은 우여곡절을 견디며
민주주의의 기반을 만들었고 모든 고통을 감내하며 결국 이겨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IMF 체제를 수용하며 고통스러운 개혁을 감수했고,
이후 보수와 진보가 정권을 교차하면서 ‘성장’과 ‘복지’ 정책을 번갈아 강조해 왔다.
그 덕분에 우리는 유연한 정책 실험을 가능케 했고, 결과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또 다른 갈림길 앞에 서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역대 최고 수준의 복지 지출을 기록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들이 줄줄이 시행되고 있으며, 다양한 연령층과 계층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고 있다.
복지는 당연히 필요하다.
양극화 완화, 사회 통합, 불평등 해소등,
문제는 그 방식과 속도, 그리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다.
과도한 현금성 지원과 단기적 인기 영합성 정책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미래 세대의 짐으로 되돌아온다.
지금 정치권은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는 명분 아래 분배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그러나 복지를 지키려면 성장의 기반이 먼저다.
자원 하나 없는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당연히 성장을 기반으로 하는 정책을 쓸 수밖에 없다.
이제 많이 벌었으니 골고루 잘 먹고살게 분배 정책으로 가자고 한다면,
그 방법과 속도조절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경제가 무너지면 복지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굳이 북유럽의 고도 복지국가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는 많은 교훈을 목격했다.
사회주의는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 비해 지속 가능성이 떨어지고,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은
역사 속에서 입증되었다.
소련은 미국과의 경쟁에서 패배하며 무너졌고, 러시아는 여전히 사회주의 유산에 발목 잡힌 채
정체되어 있다.
중국 역시 미국의 자본주의적 수혈 없이는 세계 경제 2위 국가가 될 수 없었다.
지금은 미국의 입장에서 많은 후회를 하고 있겠지만 중국을 살려 준 것은 미국이라니 아이러니다.
아직 5%의 경제 성장을 하고 있지만 그 중국도 중진국 함정 속에 빠질 가능성이 짙게 보이고 있다.
‘모두가 잘 살자’, ‘골고루 나누자’는 구호는 듣기에 좋지만, 현실 속에서 그것은 하향 평준화의 정책으로
극단적으로 사회적 분열이 되고 자기들만의 리그에 힘입은 소수 권력층만 기득권을 누리게 되고 다수의 국민은 의존적인 구조속에서 자율성과 경쟁력, 기회와 의욕을 잃은 무기력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모든 국민이 똑같이 누리는 복지를 만들겠다며 성장을 억제하고 경쟁을 억누르면,
결국 사회 전체가 가난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사회주의 정책이 무조건 잘못이다 낡은 이념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현실에서는 자유경쟁의 기반의 시장경제보다 효율성과 지속 가능한 측면에서 취약하고 경쟁에서 뒤처지는 결과가 나온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기에는 결국 포퓰리즘이라는 이름아래 유혹으로 다가온다.
“서민을 위한다”, “국민을 위한 복지다”라는 달콤한 말로 지지를 얻고, 막대한 재정을 퍼붓는 일이 반복된다면, 결국 우리는 남미와 남유럽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그리스, 이탈리아… 이들 모두는 한때 풍요로운 나라였다.
물론 이탈리아의 경제는 우리나라보다 앞서고 있으며 그리스도 회복기에 들어서긴 했다.
그러나 정치가 경제를 앞지르고, 잘못된 정책이 국민의 눈을 가릴 때, 그들은 빠르게 무너졌다.
이제 우리는 성숙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성장과 복지는 적대적 개념이 아니다.
성장은 복지의 기반이며, 상황에 맞는 복지는 성장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선택은, 달콤한 유혹이 아니라 견고한 미래를 위한 결단이다.
정치가 책임을 다해야 하며, 국민도 감정이 아닌 구조를 판단하는 냉철함을 가져야 한다.
언제나 그랬든 결국 나라를 구하는 것은 정치권이 아니라 평범한 국민의 힘이다.
우리는 지금 일본의 뒤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위한 고통스러운 선택을 감내하며 새로운 길을 만들 것인가?
현재의 나를 보지 말고 미래의 후손을 생각할 때이다.
그 선택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