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이 사라진 예능, 경쟁만 남았다

‘골 때리는 그녀들’이 드러낸 한국식 경쟁주의

정치 뉴스의 피로감에 티브이를 안 본 지는 오래되었다.

유일하게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데,

바로 수요일 저녁에 방영되는 '골 때리는 그녀들'이다.


여성 연예인 한 사람의 축구 실력에 착안해 만들어진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은 시작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축구를 잘 몰라도, 함께 뛰며 땀 흘리고

성장하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와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진심으로 축구를 사랑했고,

그 진심이 시청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리그가 만들어지고 한일전까지 생겨나며,

세계관의 프로그램으로 확장되며

예능에 스포츠를 곁들이는 수준을 넘어서서 프로경기 같은 압박감이 자리했다.


그러면서 분위기는 변하기 시작했다.

예능의 가벼움과 웃음보다는 진지한 승부와 압박이 전면에 나섰다.

감독들은 마치 프로팀을 지휘하듯 선수들에게

강한 지시를 내렸고, 선수들도 때로는 경기에 몰입하기보다

승부욕에 집착해서 오로지 이기기 위한 전투를 하는 것 같이 거칠어졌다.


지난주 수요일에 대장정의 막을 내린 g리그 결승전은

재미와 감동보다는 스포츠맨십이 사라지고 반칙만 남은 경기였다.

실력 있는 스트라이커의 멋진 모습을 보기 위해 시청하던 사람들은

경악했고, 감독과 선수들에 실망했다.

오죽했으면 선수가 감독에게
“이렇게 하는 게 맞냐”라고 되물었을 정도였다.


결국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멋진 경기 속에 웃음과 유쾌함은 사라지고,

다큐멘터리 같은 무거움만 남았다.

문제는 단순히 한 방송의 연출 방식에 있지 않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문화가 투영되어 있다.

승부욕이 지나치게 미덕으로 포장되는 사회

위에서 지시하면 의문 없이 따라야 하는 위계적 관계

과정보다 결과만 중시하는 사고방식

예능조차 이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승리를 위해선 무엇이든 정당화되는 문화,

그리고 성과만 남는 현실.

결국 ‘골 때리는 그녀들’의 논란은 우리 사회 전체의

경쟁 지상주의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말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