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무그늘 아래
부모님 병간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몸도 피곤하지만 정신적으로 지쳐가는 순간,
차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그 선율이 마음의 빗장을 툭 건드다.
'옴브라 마이 푸'의 그 평온한 선율은 마치 "애썼다,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라고 다독이는
나무 그늘처럼 느껴진다.
나무그늘 아래서라는 뜻,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의 시작 아리아로 세르세 왕은
화려한 왕좌보다 정원의 나무 그늘에서 더 큰 위안을 얻었다는 내용의 유명한 곡이다.
문득 '나무 그늘 아래서'라는 제목의 뜻처럼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의 큰 나무그늘 아래의 나무냄새와 풀향기, 운동장의 흙먼지 냄새,
그리고 파란 하늘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얻었지만 동시에 너무 귀한 것들을 잃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천진난만했던 시절, 송충이 한 마리에 놀라고 구름 모양 하나에 깔깔대던 그때는,
세상이 온통 나의 놀이터이자 안식처였다.
부모라는 책임감도, 사회인이라는 의무감도 없던 그 시절의 '나'는 지금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 사라진 여유와 낭만,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편리한 세상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는 오히려 더 귀해졌다. 계산하고, 속이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차가운 현실 속에서 우리는 늘 긴장하며 살 수밖에 없으니까.
오늘 병간호를 하며 부모님의 야윈 모습이나 세월의 흔적을 보며, 몸을 닦아 드리며 느끼는 소회는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을 넘어 '진정한 휴식'에 대한 갈망일지도 모르겠다.
헨델의 노래 속에 담긴 의미는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마음의 그늘이 되어준 것 같다.
비록 세상은 예전만큼 낭만적이지 않고 사람들은 각박해졌지만,
오늘처럼 음악 한 곡에 옛 추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적실 수 있는 '감수성'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그 마음이 바로 삭막한 세상을 버티게 하는 힘이라고나 할까.
부모님 간호하느라 몸도 마음도 많이 고단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다른 걱정 잊고
깊은 잠에 빠지면 좋겠다.
물론 부모님도 평안하시길.
2025년 12월18일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