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무렵, 인생을 되감는 음악
아, 슬프다.
내일모레면 동짓날이다.
길었던 밤이 짧아지기 시작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괜히 착잡해진다.
얼마 남지 않은 2025년,
12월도 이제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토요일 오전.
눈이라도 퍼부을 것 같은 짙은 잿빛 하늘이
푸근한 날씨 탓인지 빗방울을 떨군다.
이런 날엔 조용한 시골 국도를 달리며
음악을 크게 틀고
짧은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다.
비가 내리든,
하얀 눈이 날리든,
격정적인 음악 하나면 충분하다.
쇼팽의 즉흥환상곡이 머릿속을 맴돈다.
초반의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빠른 선율은
앞만 보고 달려온 젊은 날의 열정과 고뇌를 닮았다.
중반부의 애틋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는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는 평온함과 회한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격정으로 치닫다가
마지막에 낮은 저음으로 차분히 가라앉는 끝맺음은
삶의 풍파를 모두 견디고 도달한
노년의 깊이를 상징하는 것만 같다.
그 빠른 속도의 음악이 가슴을 파고들며
울컥 솟아오르는 미묘한 감정들.
이제 중년을 지나
노년의 길 위에 올라선 나의 애처로움 뒤로
지난 추억과 회한의 그리움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동지를 기점으로 다시 낮이 길어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지만,
한편으론 ‘한 시절이 또 이렇게 저무는구나’ 하는
상실감을 불러온다.
특히 중년을 지나 노년의 문턱에서 맞는
12월의 비는
단순한 날씨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한겨울에 비라니.
눈이 주는 불편함보다
눈이 지닌 아름다움과 서정이 더 크게 느껴진다면
나는 이 겨울에
비보다는 눈을 택하고 싶다.
추억이라는 이름의 풍경.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리는
시골 국도를 달리는 상상을 해본다.
옆으로 스쳐 가는 풍경은
이름 모를 나무와 빈 논밭일 테지만,
내 마음속 거울에는
지나온 시간의 조각들이 비친다.
애처로움이지만,
그것은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삶에 대한 진한 애착일 것이다.
회환과 그리움이 주마등처럼 스친다는 것은
그만큼 기억하고 갈무리할 이야기가
풍성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벽에 걸린 삶의 액자들이
하나씩 늘어가는 일과 같다.
때로는 그 그림이 슬퍼 보일지라도
그 그림들이 모여
비로소 ‘나’라는 박물관이 완성된다.”
오늘을 위한 작은 위로.
비 오는 토요일 오전,
굳이 밝아지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눅눅하고 서늘한 공기에 몸을 맡긴 채
쇼팽의 선율을 타고
소중한 추억 속을
마음껏 유영하고 싶다.
2025년의 마지막 보름.
누군가에게는 조급함의 시간이겠지만,
나에게는
지나온 길을 축복하고
다가올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하는
품격 있는 시간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