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빗소리에 실려 온 함박눈 같은 추억
학창 시절의 12월은 온통 교회 안에 다 들어 있었습니다.
입김을 호호 불며 모여 앉아 성가대 칸타타의 화음을 맞추고,
서툰 대사를 주고받으며 성탄극 연습에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던 시절.
삐뚤빼뚤 정성을 다해 카드를 만들고, 솜뭉치를 얹어 트리를 꾸미던
그 순수했던 손길들이 오늘 밤 눈앞에 선명하게 아른거립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노년의 문턱에 서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이브.
젊은 날의 나였다면 지금쯤 예배당 한구석에서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준비하고 있었겠지요.
세월은 참으로 많은 풍경을 바꾸어 놓는 심술궂은 마법사인가 봅니다.
북적이는 예배당 대신 고요히 술잔을 든 지금의 내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작은 술잔에 든 추억과 그리움을 마십니다.
기다리던 눈 대신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야속한 소식에 마음이 먼저 젖어듭니다.
조용히 혼자 앉아 기울이는 술잔 속에는, 그리운 노래 대신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친구들의 얼굴이 일렁입니다.
함께 찬양하고 함께 꿈꾸던 정말 사랑하는 친구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술기운 때문일까요, 아니면 켜켜이 쌓인 그리움 때문일까요.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그 찬란했던 청춘의 조각들이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함박눈처럼 하얗게 반짝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노년의 크리스마스에 설렘이 없다 말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시즌이 기다려지고, 추억 속에 흠뻑 젖어들고 싶습니다.
비록 창밖엔 비가 내려도, 내 마음은 여전히 친구들과 함께
성탄을 준비하던 그 뜨거웠던 ‘청춘’의 예배당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친구들도 오늘 밤만큼은 이 빗소리를 타고 내려와
내 술잔에 함께 건배해 주리라 믿어봅니다.
눈이 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늘의 비는 충분히 눈처럼 마음 위에 내려앉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