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드라마 속 대사가 가슴을 두드린다.
어제의 세포가 오늘 없고, 오늘의 세포가 내일 없다는 그 말.
누군가에게는 그저 생물학적 변화일 뿐이겠지만,
인생의 가을길에 선 나에게는 매일 조금씩 깎여 나가는 시간의 통증으로 다가온다.
돌이켜보면 나의 생은 물 흐르는 대로 흘러온 시간이었다.
남들처럼 원대한 꿈을 꾸지도 못했고, 무언가를 단호하게 결정할 만큼의 배짱도 없었다.
사실 꿈이라고 해야 할까? 작은 소망 같은 것은 있었다. 국민학교 시절, 버스 엔진룸 옆 명당자리에 앉아
커다란 핸들을 돌리는 기사님을 보며 내가 운전대를 잡는 상상은 해본 것 같다.
티비에서 나오는 운동 장면 중에, 은반 위를 수놓는 피겨 스케이터의 우아한 몸짓과
다이내믹한 페어스케이팅을 보며 가슴 설레기도 했고, 대학 시절엔 밴드와 연극부 활동을 하며
무대 위 주인공이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7~8살쯤인가 처음 극장에서 본 '사운드 오브 뮤직'의 그 아름다운 음악들은
내 정서의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추진력이 부족했던 탓인지, 아니면 삶이 그토록 녹록지 않았던 것인지,
나는 그 화려한 꿈들을 하나둘 접어 갈무리해 두었다.
그리고는 남들처럼 세상의 속도에 맞춰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가족을 꾸렸다.
치열하게 앞서 나가기보다 주어진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살아온 세월, 그 끝에 남은 것은 공허함과
경제적 궁핍함, 그리고 가족을 향한 짙은 미안함뿐이다.
스스로를 한심한 인생이었다고 생각한다. 살면서는 몰랐다.
이렇게 뒤를 돌아보며 자책할 줄은.
시간을 죽이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내 인생은 실패한 기록만 남은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이 너무 싫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있다.
절망의 끝에서도 도망가지 않았고, 구질구질한 현실이라 해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자그만 위로일까? 한심한 인생의 비겁한 변명일까?
문득 영화 ‘늑대와 춤을’의 던바 중위가 떠오른다.
모두가 정복을 향해 달려갈 때, 그는 사라져 가는 것들을 눈에 담기 위해 고독한 서부로 향했다.
어쩌면 나 또한 지난 세월 동안 나만의 서부를 지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화려한 성공은 없었어도, 매일매일 사라져 가는
나의 세포들을 바쳐 가족의 오늘을 일궈온 셈이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화려한 훈장이 아니라,
끝내 도망치지 않고 견뎌온 이 발자국들일 것이다.
비록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다고 탄식하지만,
사라져 가는 것들을 아쉬워할 줄 아는 이 마음만큼은 아직 살아있다.
오늘도 내 몸속의 세포들은 죽고 다시 태어난다.
어제의 후회는 어제의 세포와 함께 보내주고,
오늘 새로 태어난 세포들에게는 조금 더 너그러운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 끝까지 버텨낸 인생이라고.
남들이 뭐라 하든 내 인생은 나만의 역사이고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