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완결

by 대전은하수 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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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조성진의 연주 장면을 보게 되었다.

곡은 쇼팽 전주곡 Op.28 No.24였다.

평소에 자주 듣는 곡은 아니지만, 마지막 연주 장면에서

건반을 주먹으로 내리치던 모습이 잊히지 않을 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연주는 거칠게 몰아쳤고, 마지막 화음은 단호하게 끝맺어졌다.

그 순간, 머릿속에 한 단어가 스쳤다.


비극적 완결.


많은 사람들이 쇼팽을 ‘피아노의 시인’이라 부른다.

보통 그의 음악을 들을 때면, 멜로디가 공기 중에 흩어지는 듯한 가벼움을 느끼곤 한다.

즉흥 환상곡같이 빠른 곡 속에서도 감정이 한 번 숨을 고르는 여유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전주곡은 확실히 달랐다.

라기보다는, 차라리 분노가 담긴 격문처럼 울려왔다.

음악은 끝까지 거칠게 치달아가며, 모든 것을 불태우듯 단호하게 마무리된다.

그러다 문득 또 다른 비극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바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이다.

이 교향곡의 마지막은 쇼팽과는 사뭇 다르다.

여기서는 음악이 터지지 않는다. 대신 어떤 결심을 앞둔 듯한 비장함,

비극이 시작되는 것만 같은 팽팽한 긴장 속에서 이야기가 열린다.

그리고 서서히, 조금씩 식어간다.

심장이 약해지는 듯,

숨이 가늘어지는 듯

마지막 음이 아주 조용하게 사라진다.


비극의 결말에도 두 가지가 있다.

어떤 비극은 불꽃처럼 한순간에 타올라 끝이 난다.

또 어떤 비극은 숨처럼 서서히 꺼지며 사라진다.


문학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이 폭발적으로 터지며 죽음으로 끝을 맺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지친 인간이 조용히 잠드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닫는다.


또 하나의 장면이 떠오른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마지막이다.

주인공 유진 초이가 기차에서 서서히 멀어지는 그 순간.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기를 시도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마지막 장면만은 끝까지 볼 수 없었다.

처음 보았던 기억이 너무도 강렬해서,

그 장면이 다가오면 결국 전원을 꺼버리게 된다.


어떤 비극적인 결말은 그렇게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타오르는 불꽃처럼 잊히지 않는다.


비극은 늘 슬프다. 그 안에는 처절한 원통함이 스며 있지만,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에는 평온도 함께 찾아온다.

그러나 비극의 마지막은 서로 다르다.

어떤 것은 불꽃처럼 타올라 사라지고, 어떤 것은 조용히 숨처럼 꺼져간다.


오늘, 조성진의 연주를 들으며

나는 오랜만에 모든 걸 태우며 끝나는, 하나의 비극적 완결을 마주했다.

“끝이 있기에, 그것이 오히려 영원을 남긴다.

쇼팽의 마지막 세 번의 타건이 피아노의 현을 끊어낼 듯 울릴 때,

아이러니하게도, 내 안의 어지러운 잡음들은 비로소 조용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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