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포착] 102동 위의 십자가

by 대전은하수 고승민

오늘 오후, 아파트 102동 벽면에 낯선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숫자 위로 길게 드리워진 십자가.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다.


햇빛의 각도와 건물 사이 어딘가의 구조물이

우연히 만들어낸 순간일 뿐.

그럼에도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습관처럼 카메라를 꺼냈다.

매일 아무 생각 없이 보이던 102라는 숫자가

오늘은 왠지 다른 의미로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102동이라는 이름에는 아무 뜻도 없다.

단지 많은 건물 중 하나를 구분하기 위한 숫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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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평범한 숫자 위에

십자가 하나가 의미처럼 다가왔다.


마치 우리가 의미 없이 지나치는 일상의 자리에

어느 날 문득

어떤 표식이 내려오는 것처럼.


어쩌면

그저 햇빛이 만든 그림자 하나였을 뿐이다.

이상하게도 그 장면

하루 종일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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