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가본 지 벌써 몇 해가 흘렀다.
발목이 약해지고 심장에 무리가 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산을 등지고,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몸이 멀어졌지만 마음은 늘 산의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눈을 감으면 산행의 장면들이 여전히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내가 유독 겨울산을 좋아했던 건, 능선 끝에서 마주하던 숨 막히는 찬 공기 때문이었다.
흙을 밟고 바위를 오르던 긴장, 그리고 정상에서 들이마시던 그 서늘한 해방감.
그 감각이 아직도 사무치게 그립다.
눈을 감으면 내 기억 속엔 한 편의 입체영화가 상영된다.
산등성이를 걸을 때마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원근을 달리하며 좌우로 유영하던 그 움직임.
사람들이 하산할 때 혼자 거꾸로 올라가던 고독한 시간.
능선의 바람 소리와 발자국, 거친 숨소리만이 적막을 가르던 순간들.
그 고요한 고독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겨울산은 과감했다.
잎사귀 하나 남기지 않고 깊은 골짜기와 언덕 아래를 숨김없이 드러내던 그 정직한 나신.
사람들은 겨울산을 삭막하다 말하지만, 내게 그 삭막함은 오히려 축제였다.
발밑에 부서지던 낙엽은 세상 어떤 카펫보다 폭신했고,
듬성듬성 남은 잔설은 햇살 아래 박힌 보석이었다.
무엇보다 그리운 건 그 솔직함이다.
겉옷을 다 벗어던지고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던 산의 모습.
차가운 정적 속에서도 계곡 아래로는 끊임없이 생명수가 흐르고,
찬 공기 사이로 새들의 지저귐이 삶의 소리를 깨우던 그 강인함.
산을 내려온 지 오래되었지만,
내 마음의 스크린에는 여전히 그 겨울산이 상영 중이다.
삶이 지나치게 복잡해질 때면
나는 그 입체영화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의 본심은 지금 어느 골짜기를 흐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