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린다.
아침부터 세상이 통째로 젖어 있었다.
아내와 등산을 가기로 했던 계획은 비에 씻겨 내려갔지만,
아쉬움보다는 잔잔한 기분이 먼저 올라왔다.
봄비가 주는 감정이라는 게 그런 모양이다.
차창 밖은 온통 회색이었다.
하늘은 낮게 내려앉았고, 앙상한 가로수들은 비를 맞으며 말없이 위로하고 서 있었다.
와이퍼가 한 번 지나갈 때마다 흐릿해졌다가 다시 또렷해지는 풍경.
그 사이를 음악이 흘렀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
사람들은 이 곡을 두고 치유와 극복의 음악이라고 말한다.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선 작곡가의 이야기까지 덧붙인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내게 이 음악은 그런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저 비처럼 흘러내리는 소리였다.
처음 들려오는 클라리넷의 선율은 축축한 공기 그 자체 같았다.
무겁지만 불편하지 않은 감정.
외로운데도 이상하게 편안한 기분.
차가운 핸들이 부드럽게 돌아가며 음악과 운전이 하나가 되는 것 같이 느껴졌다
플루트가 이어지며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같은 비인데, 이제는 빗방울에 반짝임이 살아 있었다.
미세하지만 핸들의 떨림이 미세하게 변하는 것 같았다.
음악이 점점 고조될수록 감정도 따라 움직였다.
사람들은 이런 부분을 ‘격정’이라고 부르겠지만,
내게는 그저 오래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잠깐 떠올랐다가 스쳐 지나가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억지로 이겨내려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그냥 흘려보내도 괜찮은 감정.
빗속을 걷다 젖은 옷을 잠시 벗어두듯, 마음도 그렇게 한 번 젖어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조용해진다.
그 잔잔함은 단순히 편안해져서 오는 게 아니었다.
한 번 다 겪고 난 뒤에야 남는, 조금은 가벼워진 상태.
겨울의 혹독함을 견뎌낸 나무가 봄의 평안을 준비하듯,
음악도 그 어두운 시간을 통과해 마침내 평안에 닿는다.
차는 어느새 사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엔진을 끄고도 잠시 앉아 있었다.
아까 들었던 음악이 머릿속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턴테이블 위에서 돌아가는 검은 레코드판처럼, 느리고 일정하게.
라흐마니노프의 이 곡은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주는 음악이 아니다.
그보다는, 슬픔을 어떻게 견디는지를 조용히 들려준다.
비가 오던 아침,
나는 그 음악 덕분에 굳이 괜찮아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