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거울, 포레스텔라를 보며

소리의 거울, 포레스텔라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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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국보’라 부르는가

우리가 국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그 안에는 우리 기술과 영혼, 그리고 자부심이 깊숙이 어우러져 있다.

오늘, 나는 문득 이런 질문으로 글을 시작하게 됐다.

과연 네 명의 남성 중창단, 포레스텔라를 우리는 ‘국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세계 무대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하는 이들은 누구나 주저 없이 국가의 소중한 자산이라 말한다.

그런데 소리로 세계를 움직이는 이 존재들은 왜 그런 평가를 쉽게 얻지 못할까?

그 생각이 나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데리고 갔다.


* 나를 멈춰 세운 낮은 읊조림

“Je suis malade(나는 아파요).” 그 낮게 깔린 읊조림이 가슴을 쿵 치는 순간,

나는 그대로 소리에 사로잡혔다. 그건 그저 노래 한 곡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어떤 감각, 내 안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감성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마치 내 속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 화음의 빈자리를 채우던 기억

어릴 적엔 내가 노래를 잘하는지 몰랐다. 음악이 흐르면 그냥 따라 부르고 흥얼거리는 게 다였다.

그러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회 성가대에 서 보면서 처음 알게 됐다.

내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질 때, 신기하게도 비어 있던 자리가 꽉 채워진다는 걸.

혼자 노래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울림, 여러 소리가 겹칠 때만 생기는 특별한 공기.

그래서인지, 지금도 어디선가 노래가 들리면 무의식적으로 화음을 얹을 자리를 찾게 된다.

멜로디를 그대로 따르기보단, 그 옆에 또 다른 길을 놓고 싶어 하는 내 습관은

오래전부터 만들어진 것 같다.

나는 혼자 울리는 소리보다 함께 어우러지는 소리를 오래도록 갈망해 온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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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겹쳐질 때 깊어지는 세계

아직도 나는 화려한 독창보다 여러 목소리가 쌓인 합창에 더 끌린다.

한 선율 위에 또 다른 길들이 얹힐 때 만들어지는 넓고 깊은 울림이 좋았다.

그 시작은 아마 어린 시절 들었던 ABBA의 ‘치키치타’였던 것 같다.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가 교차하며 쌓이는 그 순간, 나는 그저 넋을 잃고 귀 기울였다.

그때 처음 알았다. 소리는 혼자보다 겹쳐질 때 더 깊어진다는 사실을.

그래서인지 나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들을 때마다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악기만으로 쌓아 올리던 세계에 사람의 목소리로 울리는 합창이 악단과 어울려

극적인 시너지를 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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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리던 설계도, 그들은 이미 만들고 있었다.

포레스텔라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감탄하기보다 온몸의 감각이 일깨워지는 느낌이었다.

낯선 감동이 아니라, 오히려 어딘가 익숙한 ‘확인’에 가까웠다.

하늘을 뚫을 것 같은 조민규의 하이테너, 대지를 단단히 받치는 고우림의 베이스,

그 사이를 채우는 배두훈의 깊은 울림, 구분을 허문 강형호의 카운터테너.


서로 다른 소리지만 한 치의 충돌도 없이, 오히려 서로를 지탱하며

하나의 정교한 예술품을 만들어 낸다.

이들의 화음을 듣다 보면, 이건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어디에도 없는 ‘설계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문득 깨닫게 된다.

이 소리들이 내가 언젠가 상상했던, 완성에 가까운 어디쯤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 기술이 아닌 ‘태도’가 울린 마음

각국의 리액터들이 그들의 무대 앞에서 감탄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여러 번 봤다.

언어나 노랫말을 몰라도 왜 모두 그토록 마음이 움직일까.

흔히 음악은 언어를 초월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 한마디로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본 건 기술이 아니라, 그 소리에 담긴 태도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하나의 화음을 완성하려는 진지함과 치열함.

절제 속에 담긴 간절함이 언어보다 먼저 듣는 이의 마음을 두드린다.

그래서 나 또한, 그들의 소리에서 내 인생의 시간들을 떠올린다.

내가 지나온 세월, 아직 끝내지 못한 꿈마저도.


* 국보라는 이름을 넘어, 나의 거울로

처음엔 그들을 국보라 부르고 싶어 글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글을 마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국보라는 단어는 너무 멀고, 마치 박물관 속에 가둬둔 것만 같다.

반면, 이들의 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들을 국보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대신 포레스텔라는 내게 ‘거울’ 같은 존재다.

그들의 화음 속에서 나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 내 인생의 조각들을 듣는다.

내가 그려 보고 싶었던 삶의 모습, 그 단서들을 이 소리의 거울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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