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에 대한 묵상 2

by 전영칠

'근원에 대한 묵상' 시리즈는 묵상하고 살면서 문득 스치는 느낌(생각)들을 쓴 것입니다.



1. 고독은 없다


근원에 대한 묵상을 한다.

사랑과 진리의 근원이 존재한다는 것은 거시우주와 미시우주를 철저히 긍정한다는 의미로 이어진다.

이 복잡하고 싸우기 좋아하는 인간이라는 종족이 사는 삶과 역사까지도 긍정이 가능하다.

근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거나 인정한다는 것은, 인생을 사는 데 실로 중대한 갈림길에서의 선택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갈림길에는 화살표가 세 개 있다. 하나는 근원에 대한 긍정의 길이고, 나머지 두 개는 근원에 대한 불가지의 길과 부정의 길이 있다. 그 길을 선택하는 것에 따라 나의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 등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여행을 좋아했다. 그러나 혼자 가는 여행은 외로워서 싫었다.

그런 내가 근원에 대한 묵상이 깊어지면서 외로움이 없어졌다.

기독교인이라면 근원을 신이라 할 것이다.

신은 사랑과 진리의 존재이다.

인도라면 근원을 순수의식이라 할 것이다.

이 존재가 없다면 어찌 살까. 근원에 대한 묵상은 내게 평안을 준다.


근원을 발견하거나, 근원을 만나지 못하면 무신론 공산주의자들처럼 유일한 존재인 '우연히 만들어진 인간'이 근원자리에 앉아 '우연히 만들어진 땅'을 개발과 이용도구로 이용하면서 스스로 세상을 바꾸든지, 세상에 적응해 살든지 둘 중 하나를 해야 한다.

근원이 악한 것이라면 우리는 악착같이 남보다 더 악하게 살아 성공을 쟁취해야 한다.

근원이 선한 것이라면 우리는 선을 살아 선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완성해야 한다. 왜? 모든 것은 근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필라멘트 끊어진 존재다.'

헤밍웨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을 포기했다. 그는 불행하게도 근원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입속에 총구를 넣고 엽총자살했다.

근원자리에 '필라멘트 끊어진 고독' - 그런 것은 없다.

필라멘트가 끊어졌다면 불이 켜질 수 있도록 새 전구를 바꿔달면 된다.

우주의 전기는 무한하다.

근원에 대한 묵상의 불이 켜지면 온 천지에 불이 켜진다.

빛이 들어오고 어둠이 물러난다. 사랑이 켜진다. 긍정이 켜진다. 고독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독은 없다.



2. '나의 성장'과 '만날 사람은 만난다'는 말은 동의어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제 자리를 찾는다는 것이다.

영계는 제자리에 맞는 이들끼리 사는 곳이다.

60이 되어 흔히 죽마고우와 잘 만나지 않게 되는 것은 저마다 갖추어진 성장의 세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저마다 갖추어진 성장의 세계는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 개성관 등이다.

사람은 타고난 자기의 세계가 있다. 미를 좋아하는 사람. 진을 좋아하는 사람, 선을 좋아하는 사람......

그 세계가 다르면 영계가 달라진다. 영계는 영급의 세계이다.

주파수가 다른 이들은 세계가 다르다.

영계는 주파수가 같은 이들이 사는 세계다.

마치 지상에서 정향진화처럼 각자의 길을 갈 뿐이다.

그렇게 성장하며 가다 보면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다.



3. 자유와 독립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다.

인간은 곧 자유다.

·마음이 성장한 인간은 그것으로 '독립'이라는 형태를 띠게 된다.

때가 되면 부모나 스승은 자식과 제자의 독립에 감사한다.

성장한 자식과 제자의 독립에 감사하지 않는 부모와 스승은 가짜다.

스승 조훈현 9단이 제자 이창호 9단에게 모든 타이틀을 빼앗긴 후

"자식 같은 제자에게 타이틀을 뺏기는 것은 살점을 도려내는 아픔이었지만, 동시에 한국 바둑의 세대교체를 이룬 뿌듯함이기도 했다"

"제자에게 지는 것은 스승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완성은 독립과 자유함을 얻는다.

독립된 사람은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



4. 우리 모두는 주인공이다


경쟁사회, 성공제일의 사회, 승자독식의 세계는 덜 익은 사회다.

경쟁은 환상일 뿐이다.

우리는 각자의 개성을 완성해 각자의 메시아가 되는 존재다.

각자의 개성을 완성해 각자의 메시아가 되는 세계,

높고 낮음이 없는 무등의 세계가 우리가 사는 지상의 종착역이다.



5. 의미 있는 만남, 의미 없는 만남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이런 이들, 저런 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사람과의 만남에 의미 없는 것은 결국 만나게 되지 않게 된다.

만남에 절재와 조절이 필요하다.


사람은 육신이 전부가 아니다. 사람은 육신과 함께 있는 빛과 진동과 파장의 존재이니 내 진동과 맞고, 내 진동을 높이는 사람과의 만남이 유익하고 뒤가 남는 만남이다.





월요일 연재
이전 01화근원에 대한 묵상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