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엇이 될 것인가'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 속에 던져진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움직일 것을 요구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불안과 도태의 증거로 몰아세운다. 그러나 기억하라. 나는 그대를 단 한 번도 그대가 이룬 성취나 그대가 행한 과업 때문에 사랑한 적이 없다. 나는 오직 그대가 '존재'한다는 그 경이로운 사실 하나만으로 그대와 연결되어 있다. 오늘 우리는 현대인이 앓고 있는 가장 깊은 질병인 '행위(Doing)의 삶'과 그 치유책인 '존재(Being)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행위(Doing) :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거나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몸이나 마음을 움직이는 활동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자신의 가치를 성과, 업적, 사회적 지위 등 외부적인 조건으로 증명하려 하며, 주로 '미래'의 보상을 위해 현재를 도구화하는 삶의 태도를 뜻한다.
존재(Being) : 외부적인 성취나 행위와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느끼고 수용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무엇을 하는가'보다 '어떤 상태로 있는가'에 집중하며, 현재에 머무르며 내면의 평화와 생명력 그 자체를 만끽하는 삶의 태도를 뜻한다.
행위의 삶은 '조건부 삶'이다. 이 삶의 방식에서 나의 가치는 내가 무엇을 소유했는지, 어떤 직위를 가졌는지, 얼마나 생산적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행위의 삶을 사는 사람은 늘 '미래'를 산다. 지금 이 순간의 평화보다는 '이것만 끝나면', '저것만 이루면'이라는 전제 조건을 달고 행복을 유보한다.
행위 중심의 삶에는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다. 첫째, 비교와 경쟁이다. 나의 존재감이 외부의 성과에 달려 있기에 늘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둘째, 소외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정작 그 일을 하는 '나' 자신과는 단절되어 있다. 셋째, 불안이다. 성과가 나오지 않거나 능력이 감퇴할 때, 자신의 존재 가치 자체가 위협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례 1]
30년간 대기업 임원으로 숨 가쁘게 달려온 A씨가 있다. 그는 평생을 '행위' 속에 살았다. 그의 명함은 곧 그의 인격이었고, 그가 내린 결정들은 그의 권력이었다. 그러나 은퇴 후 명함이 사라지자 그는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아침, 그는 자신이 거대한 쓰레기통에 버려진 존재처럼 느꼈다. 그에게 삶이란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것'뿐이었기에, 행위가 멈춘 순간 존재의 의미도 함께 멈춰버린 것이다. 그는 '행위의 삶'이 준 달콤한 보상이 실은 얼마나 깨지기 쉬운 유리잔이었는지를 고통스럽게 깨달아야 했다.
존재의 삶은 '무조건적 삶'이다. 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일을 하든 그 중심에 '깨어 있는 존재'가 머무는 것을 뜻한다. 존재의 삶을 사는 사람은 결과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는 행위의 주체인 자기 자신을 먼저 돌보며, 지금 이 순간 흘러가는 생명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만끽한다.
존재 중심의 삶에서 가치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솟아난다. 내가 신의 자녀라는 사실, 내가 우주의 한 조각이라는 사실, 내가 지금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축제는 시작된다. 여기에는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이 없다. 이미 온전하기 때문이다.
[사례 2]
평생을 성공을 위해 달렸던 전문직 여성 B씨는 암 투병을 시작하며 강제로 '행위'를 멈추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어 괴로워했다. 그러나 병실 창가에 비치는 햇살, 간호사의 따뜻한 손길, 그리고 고통 속에서도 규칙적으로 박동하는 자신의 심장 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그녀는 고백했다. "예전에는 100억짜리 프로젝트를 성공시켰을 때보다, 지금 창밖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는 이 순간이 더 황홀합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해서' 귀한 게 아니라, 그냥 '있어서' 귀하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존재의 삶으로의 회귀다.
우리의 일상에서 이 두 삶의 방식은 극명하게 대조된다.
행위(Doing)의 삶
시간관 : 미래를 향해 달려가며 현재를 희생함
대 화 : 정보 전달과 문제 해결, 판단이 중심
식 사 :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 다음 일을 생각하며 먹음
관 계 :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계산함
자아상 : 내가 이룬 업적의 합계
존재(Being)의 삶
시간관 : '지금 이 순간'에 머무름
대 화 : 공감과 경청, 존재 자체를 수용함
식 사 : 음식의 맛과 향, 생명의 에너지를 느끼며 감사함
관 계 : 상대방의 영혼을 마주하며 있는 그대로를 사랑함
자아상 : 신성한 생명의 통로, 관찰하는 의식
[사례 3]
부모가 '행위'의 관점으로 자녀를 대할 때, 자녀는 성적표와 상장으로 평가받는 '제품'이 된다. 부모는 아이가 무엇을 잘하는지에만 집중하고,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한다. 반면 '존재'의 관점으로 자녀를 대하는 부모는 아이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한다. 아이가 실패했을 때도 "너는 여전히 나의 소중한 아들/딸이다"라고 말해줄 수 있다. 전자의 아이는 평생 타인의 인정을 구걸하는 삶을 살게 되지만, 후자의 아이는 자기 확신을 가진 뿌리 깊은 나무로 성장한다.
우리는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왔기에 '행위'를 멈출 수는 없다. 밥을 지어야 하고, 일을 해야 하며, 관계를 맺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존재로부터 나오는 행위(Doing from Being)'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바다와 파도의 관계와 같다. 파도는 쉼 없이 움직이지만(Doing), 그 바탕에는 깊고 고요한 바다(Being)가 있다. 파도가 아무리 높게 일어도 바다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당신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 연기하든, 그 내면에는 연기하는 배우인 '진정한 나'가 고요히 깨어 있어야 한다.
성경 속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음식을 준비(Doing)'하느라 분주했던 마르다와 '예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Being)' 마리아의 사례를 보면, 예수는 마르다를 나무란 것이 아니라 일(Doing)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나 '나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니 일보다 말씀을 듣는 것(Being)'을 하라는 가르침이었다.
똥도 예쁘다는 어머니가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