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8

by 전영칠


최은은 재봉사 옥순 언니와 시다 영자와 함께 가리봉동 '칠공주고개'라고 불리는 언덕길 주변에서 살게 되었다.

최은이 기거한 월세방 크기는 2평이었는데 거기에서 3명이 함께 생활했다. 연탄아궁이가 있는 부엌은 싱크대 놓을 자리도 없이 좁았다. 보증금 25만원에 월세 35,000원을 3명이 부담했다.

주야간 교대 근무를 하니 방은 3명이었으나 2인이 쉴 수 있었다.

그녀들은 그곳을 벌집이라 불렀다. 전자부품 공장에 다니는 이들도 있었고, 15,16세 소녀들, 20세 이상의 고참 미싱사, 20세 전후의 시다들도 있었다. 최은이 살던 벌집촌은 주로 봉제공장에 다니는 이들이 많았다.

벌집촌은 보통 30~ 50평 남짓한 집 한 채를 개조해 20~30개의 작은 방을 다닥다닥 붙여 만들었다. 그만그만한 집들이 이 고개에서 거대한 마을을 이루었다. 복도는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고 어두웠다. 방마다 번호가 붙어 있다.최은이 사는 방은 21번이다.

성인 세 명이 누우면 방이 꽉 차고, 머리맡에 옷가지를 쌓아두면 발을 뻗기도 힘들었다. 한명은 주간 근무, 다른 한 명은 야간 근무를 하는 식으로 '교대 잠'을 자며 공간을 확보하기도 했다.

복도 끝에 공동 세면장과 공동 변소가 두개씩 있어 아침마다 서로 그곳을 사용하려고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내가 과연 이곳을 버틸 수 있을까. 그녀에게서 차가운 황토바닥에 누워있는 인국이가 떠올랐다.

그녀는 다시 한번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일주일, 한 달이 지나갔다.


일요일. 어제가 월급날이었다. 첫 월급으로 최은은 7만 5천원을 받았다.

2평의 공간은 세 사람의 몸이 들어가는 순간 좁은 감옥처럼 변한다. 방 한가운데 가로지른 빨랫줄에는 눅눅한 작업복이 물기를 머금은 채 늘어져 있고, 머리맡에는 셋의 짐이 담긴 사과 궤짝들이 쌓여 있다. 최은은 이 비좁은 '2 평의 영토'에서 벌어지는 삶의 비린내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방장인 옥순 언니가 장부를 펴놓고 방세를 말했다.

"자, 다들 만 원씩!

옥순언니가 두 손가락을 폈다.

"그리고 공동 요금 각자 1,000원씩 주면 돼."

공동요금은 공동 수도료나 공동전기세 청소비 및 오물 수거비등을 집주인이 별도로 받았다.

전기 촉수세라는 것이 있어서 집주인은 방 안에서 라디오를 듣거나 카세트테이프를 틀면 전기를 많이 쓴다며 요금을 더 올렸다. 심지어 다리미라도 한 번 쓰다 걸리면 '전기 도둑'으로 몰려 요금 폭탄을 맞거나 쫓겨나기도 했다. 최은에게는 이 모든 것이 신세계였다.


옥순의 말에 최은은 아무런 말없이 만천 원을 건넸다. 영자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언니... 나 이번 달엔 돈이 모자라요. 고향 집에 동생 학비 보냈더니... 칠천 원밖에 안 남았어요."

옥순이 한숨을 내쉬었다.

"영자야, 너 저번 달에도 삼천 원 밀렸잖아. 또 나보고 빌려달라고 하려구?."

영자의 모습에 그늘이 비추었다. 최은이 주머니를 뒤졌다. 이곳에 올 때 과외 해서 벌어두었던 비상금이 있었다. 최은은 만원을 꺼내 옥순에게 내밀었다.

"언니, 여기 영자 몫이에요."

영자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영자의 눈에 물기가 보였다. 최은은 이곳에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1만이라는 돈의 가치를 알았다.

"나중에 돈 생기면 갚아. 울지 말고."

영자는 최은 보다 보름 먼저 시다일을 시작했다. 최은 보다 세 살이 어렸다.


쪽방 주인은 방장만 상대했다. 3명 중 가장 연장자나 공장 경력이 오래된 사람이 주인과 계약을 맺는 '방장' 역할을 한다. 방에서 한 명이 월급이 밀리거나 도망을 가면 남은 사람들이 그 몫을 메워야 했기에, '동숙생' 간의 신뢰가 기본이었고 그것 때문에 갈등의 소지도 있었다.



밤 11시. 일요일, 3명이 함께 쉬는 날이었다. 세 사람이 1자 모양으로 나란히 누웠다. 한 명이 몸을 뒤척이면 옆 사람의 갈비뼈가 느껴지는 거리였다. 최은의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집주인 눈치를 보느라 전등을 껐다.


"영순아, 너는 진짜 이름이 뭐야?"

옆에 누운 옥순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최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슨 소리예요 언니, 저 이영순이어요."

"아니, 그런 거 말고. 네 손 말이야. 너 시다치고는 손이 너무 고와. 가끔 네가 하는 말들, 라디오에서 나오는 아나운서 같기도 하고. 너 사실은 여기 사람 아니지?"

최은은 천장의 곰팡이 얼룩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옆에서 영자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지만, 그녀 역시 자지 않고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언니, 여기 사람 아닌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들 어디선가 떠밀려와서 미싱 돌리면 가리봉 사람이지요. 나도 돈 때문에 온 거예요. 시골에 몸 아픈 아버지와 학비를 대야 하는 동생이 있어요."

"그래. 알았어. 괜히 해 본 말이야."

옥순이 씁쓸하게 웃었다.

"사람답게... 그게 제일 비싼 거라더라. 난 가끔 꿈을 꿔. 2평 말고, 내 다리를 다 펴고 누워도 벽바닥에 발가락이 안 닿는 그런 방에서 자는 꿈. 아침에 눈 떴을 때 미싱 소리가 아니라 새소리가 들리는 그런 방 말이야."

"언니, 우리 그런 방에서 살 수 있을까요?" 영자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살 수 있어. 우리도 돈 모을 수 있어. 언젠가는 조그마한 봉제공장도 차릴 수 일을 거야. 너희들 나 잘 도와주고 내 말 잘 들으면 재봉 기술도 가르쳐줄게."

재봉사는 시다 월급의 2배다.

"언니, 정말이죠?" 영자가 말했다.

옥순은 말대신 영자의 손을 잡았다.


최은은 시다 3개월 만에 미싱을 조금씩 배우고 6개월 만에 정식 재봉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노동법은 분명히 1일 8시간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식사 시간 빼고 14시간이 기본이다. 사장은 빵과 음료수를 돌리고 대충 퉁친다.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폐병으로 피를 토해도 회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는다. 기계부속처럼 갈이끼우면 그만이다. 지옥이 따로 없다. 어찌 이럴 수 있나.

그녀는 진짜 사람답게 사는 꿈을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 길이 멀지라도,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