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7

by 전영칠



요한이 최은을 만난 것은 2년이 지난가을 무렵이었다. 그녀가 일요일 오후 4시 학사를 방문했다. 나는 자리를 권하고 차를 내왔다.

- 형, 오래간만이에요.

최은이 나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 이게 얼마만이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 보고 싶었어요.

그녀는 여전히 풋풋했다.

- 나는 사실...

내가 잠시 망설였다.

- 연락도 하고 싶었지만 가는 길에 방해라도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지.

- 알아요. 그 말 알아요. 많이 생각났어요. 그리고 제가 했던 마지막 말에 마음이 상하시지나 않았나 했어요.

- 정말 마음이 언쨚으셨지요?

- 아니야. 그럴 리가. 서로가 밉거나 싫어서가 아니었을 뿐...... 오랜만에 얼굴 보고 털어놓고 말하니 좋네.


세상에는 많은 만남과 이별의 사연이 있다. 미워하거나 오해가 쌓여서 멀어지는 사이도 있다. 거래관계, 이익관계가 끊어져 자연히 멀어지는 관계도 있다. 최은과 나는 바라보는 구원의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 기도했어. 조금이라도 더 상처가 아물기를 , 조금이라도 더 아픔이 덜하기를. 그랬으면 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란 생각이 들어 미안했고.

그녀의 눈에 잠시 슬픔이 비쳤다.

- 아버지는 잘 계시나?

- 네. 다행히 하시던 일을 열심히 하고 계세요. 저는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 학교를 휴학하고 구로공단에서 공활(工活)을 했어요.

- 위장취업을 했다고?

- 네. 1년 반을 지나니 나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복학하지 못하고 미복학 제적 처리가 되었지요. 지금은 공활을 접고 사회과학 전문서적을 내는 출판사에 다니고 있어요.

- 놀라운 변화로군. 세상이 가녀린 젊은 여성을 전사로 만들었어!

- 틈틈히 책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 무엇을 하든 '뜻'을 위해 후회없도록 열심히 산다면 되는 것 아닐까? 아우님은 그렇게 살고 있구만.

- 일본은 자주 가시나요?

- 평균 석달에 한번 정도.

- 책 나오면 다시 들를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일승공세미나와 더불어 일본우익단체를 만나기 위한 준비에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3. 차가운 현실


위장취업은 냉혹한 현실이다. 최은은 공활 현장 취업 선배의 지도로 치열하게 중졸자, 중졸자의 면접 방법, 대학을 안 간 고향 친구나 친척의 주민등록초본을 빌려 위장취업하는 방법 등을 배웠다. 거친 손을 만들려고 일부러 농촌일을 돕고 삽질을 하기도 했다. 대학생 티를 지우는 게 급선무였다. 로션도 바르지 않고 옷은 시장에서 산 싸구려 티셔츠와 허름한 바지 등을 입었다. 어려운 말 쓰지 않는 것도 연습했다.

면접관이 "노조 같은 거 관심 있냐"라고 물으면 순박한 사투리로 "돈 벌어서 동생들 공부시켜야 돼요."라며 연기도 배웠다.


- 민증 좀 보자.

공장장이 손을 내밀었다.

- 상경하다 잃어버려서 지금 재발급 신청 중이에요. 대신 동사무소에서 뗀 초본 가져왔어요.

공장은 수출물량 때문에 일손이 너무 급했다. 공장장은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이 적힌 초본 서류만 있으면 세금 신고나 서류 처리가 가능했기에, 얼굴 대조를 대충 넘어가곤 했다. 최은처럼 '시다'로 들어오는 어린 여공들은 더더욱 의심하지 않아 위장취업을 할 수 있었다.

최은은 그날부터 구로공단 봉제 의류 수출 업체인 대성 실업 공순이 '이영순'이 되었다. 주민등록증 속 이영순은 스물한 살, 중졸이었다.


최은이 현실에 뛰어들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내가 저 불쌍한 노동자들을 계몽해야지'라는 우월감이 있었다. 그러나 최은은 그 우월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치한 것이었는지 일을 하며 이내 알게 되었다.

공장 안은 숨이 막힐 듯한 먼지와 굉음뿐이었다. 천장은 낮고, 환풍기는 고장 나 있거나 턱없이 부족했다.

오전 8시 출근하고 밤 10시 퇴근은 기본이었다. 수출 물량을 맞추기 위해 '밤샘 근무'도 했다.

미싱사들은 졸음을 쫓기 위해 '타이밍'을 먹었다. 타이밍은 카페인 알약 같은 각성제다. 그것을 물과 함께 삼키며 미싱을 돌렸다.

남자 재단사나 관리반장들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욕설은 기본이었다. 성희롱도 빈번했다.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체크하며 "똥 싸러 가서 안 나오냐"라고 소리 질렀다.

최은이 하는 일은 가장 밑바닥인 시다 일이었다. 시다는 미싱사가 재봉만 할 수 있도록 나머지 모든 잡일을 다 하는 존재다. 실밥을 따고, 30킬로 원단을 지고 좁은 계단을 올랐다. 원단의 거친 단면에 목덜미나 팔 안쪽 살이 쓸려 벌겋게 부어올랐다.

손가락에 끼워 쓰는 작은 쪽가위로 하루에 천여 벌 옷의 실밥을 땄다. 이걸 점심과 야근 저녁식사 시간을 빼고 하루 14시간 동안 수천 번 반복했다. 나중에는 엄지와 검지 사이의 근육이 마비되어 숟가락을 들 힘도 없어졌다. 손가락 관절 마디마디가 퉁퉁 붓고 열이 났다.

봉제 공장은 원단에서 나오는 미세 먼지가 눈 내리듯 날렸다. 점심시간 도시락을 먹는데, 밥 위에 하얗게 먼지가 앉을 정도였다. 피를 토하는 17세 어린 시다를 보기도 했다. 이 일을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최은은 폐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했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수요일 연재
이전 08화빨강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