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빨강 5

by 전영칠

- 동생 인국이는 공업고등학교를 나와 가정을 돕겠다고 공장에 취직을 했어요.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지요.



최은의 뇌리에 인국의 모습이 스쳤다. 인국은 어렸을 때부터 유독 정이 많았다. 어머니에 대한 상처가 깊을 터인데도 스스럼없이 누나, 누나 하며 최은을 따랐다.

인국이가 공업고등학교 3학년일 때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

몇 달 전부터 마른기침이 끊이지 않아 감기인 줄 알고 약국 감기약만 먹다가 어느 날, 기침을 심하게 하며 하얀 손수건에 선명한 붉은 피를 쏟았다. 동네 병원을 찾았으나, 동네 병원은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 선암입니다. 3기 말입니다. 수술을 하기엔 암세포가 이미 중요 폐혈관과 림프절에 붙어 있어 불가능합니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해야 합니다.

의사는 쉽지 않다는 모습으로 그렇게 말했다.

담당의사는 최은을 불렀다. 그리고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며 다시 말했다.

- 환자분 폐는 깨끗한데, 간접흡연이 원인인 것으로 보입니다. 남편분이 뿜은 연기, 그거 필터도 안 거치고 그대로 부인 폐 깊숙이 영향을 준겁니다.

진찰실로 들어오던 아버지가 그 말을 들었다. 아버지는 그날로 담배를 꺾고, 라이터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통원치료를 하다가 증상이 더 악화되어 5개월 입원 동안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 누나, 할 말 있어.

인국이가 최은에게 말했다.

- 대학을 포기할래.

- 안돼, 그건 아버지가 오래전부터 너를 대학진학과 성공을 꼭 보겠다고 말하셨잖아.

최은의 아버지는 인국이 공대 졸업 후 관리직 승진 코스를 밟아 누가 보아도 사회적 성공인이 되기를 희망했다.

- 그럴 수 없어. 어렵잖아. 나 대신 누나가 대학을 졸업해.

- 안돼. 아버지와 상의해 보자.

- 대학 공대 4년 후 졸업은 큰 의미 없어. 4년 일찍 취업하면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어.

- 장기적으로는 불리할 수도 있어.

인국은 말 대신 고개를 저었다.


가세가 점점 기울어졌다.

인국은 기계과 전공으로 1980년 공고 3학년 2학기에 '현장 실습' 형태로 아시아자동차 광주공장에 생산직 기술자로 취업했다. 최은의 학비도 인국이 돈을 모아 보탰다.

어머니는 목소리가 쉰 소리로 변했다. 암이 성대 신경을 눌러 호흡곤란이 왔고, 독한 항암제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한 줌씩 빠지고, 물만 마셔도 구토를 했다. 최은은 복도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머리를 쥐어뜯는 아버지의 모습을 몇 번 보았다. 어머니는 극심한 고통으로 진통제 없이는 잠을 못 이루시다가 끝내 돌아가셨다.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자, '유신 체제'가 무너지고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끓어올랐다. 그러나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육군 사조직 '하나회' 세력(신군부)은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 지휘권을 불법적으로 장악했다. 당시 최규하 대통령이 있었지만 실권이 없는 과도기적 관리자에 불과했다. 전두환은 국군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 서리라는 두 가지 핵심 요직을 꿰차고 있었다. 이미 그에게 군부뿐만 아니라 민간 정치 사찰과 공작까지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이 주어졌던 것이다.


1980년 봄, 대학 개강과 함께 학생들과 시민들은 계엄령 해제와 신군부 퇴진, 민주 헌법 수립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참으로 불안한 '서울의 봄'의 서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국의 대학은 물론, 총학을 비롯한 각종 조직들이 총동원된 시위가 날마다 이어졌다.

5월 15일에는 서울역에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모여 민주화를 외쳤으나, 신군부의 무력 개입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자진 해산했다. 서울역 회군을 한 것이다.

서울역에서 대학으로 돌아오던 최은은 엄청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형국이었다.

그리고 최은의 불안한 예감은 현실로 이어졌다.

시위대가 해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과 신군부는 5월 17일 자정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비상계엄을 확대했고, 국회 해산, 정치 활동 금지, 대학 휴교령, 언론 검열 강화에 이어 김대중, 김종필을 연행하고 김영삼을 가택 연금시켰다.

최은은 있을 수 없는 기막힌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5월 18일 아침, 전남대학교 학생들은 휴교령에 반대하며 등교를 시도하다가 미리 배치된 공수부대원들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폭력적인 진압을 목격한 광주 시민들이 가세하면서 시위는 대규모 항쟁으로 번졌고, 신군부는 이를 '폭동'으로 왜곡하며 더욱 잔혹하게 유혈 진압했다.


최은은 아버지와 수시로 통화했다.


- 아버지 괜찮아요? 인국이는요?

- 어수선하다. 거리에 사람들이 많다. 보통 난리가 아니여. 인국이는 나와 함께 있다.

- 내가 내일 내려갈게요.

- 아니다. 오지 마라. 여기는 염려 말고 너는 서울에 그대로 있거라. 절대로 이곳에 내려 올 생각은 하면 안 돼.

- 몸 조심하세요, 인국이도 거리에 나가지 말라고 그러세요.

- 알았다. 염려 말아.


그런데 21일 새벽부터 전화가 되지 않았다. 당일 저녁에는 광주가 외부로부터 봉쇄되었다. 최은은 밤을 꼬박 새웠다. 불안은 대한민국을 덮치고, 최은을 덮쳤다. 공수부대의 발포로 수백, 수천 명이 죽었다는 말이 돌았다. 광주는 들어갈 수도 없었다. 언론이 통재되고 소문만 무성하여 실상을 알 수 없는 며칠 밤이 지났다.


5월 27일 아침부터 시외통화가 개통되었다. 여러 차례의 전화 끝에 이웃집 식당 최사장의 부인이 전화를 받았다. 최사장의 부인은 최은에게 밤 8시쯤 통화하자고 아버지가 말했다고 전했다.

끊임없는 불안감이 그녀를 엄습했다.


불행은 한꺼번에 오는 것일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밤 8시에 아버지와 통화가 되었다.


- 아버지 괜찮으세요?

- 나는 괜찮다. 그런데...

- 인국이는요? 인국이가 어떻게 되었어요?

- 죽었다.

- 인국이가 죽어요?


최은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야기를 종합하니 인국은 20일부터 친구를 따라 데모대에 휩쓸려 다녔고, 21일 행방불명이 되었다. 최은의 아버지는 도청 상무관과 주요 병원 영안실을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인국의 행방을 찾았다. 그러나 인국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27일이 되어서야 상무대 강당에 도착한 인국의 시체를 찾았다고 했다. 그리고 당일 오후에 망월동에서 삼엄한 계엄군들의 감시와 인부들의 삽질속에서 급하게 매장되었다. 염도, 3일장도 없이 시신은 무명천에 감싸여 얇은 관에 넣어져 묻혔다고 했다.


최은은 28일 전주까지 내려가 다시 아버지와 상황을 통화한 후, 광주 시외버스정거장에서 아버지와 만나 아버지의 오토바이로 망월동으로 함께 가기로 했다.

최은은 28일 오전 7시경 전주고속버스를 탔다. 전주에서 광주까지 가는 시외버스는 2시간여 지체되었다가 출발했다.

두 차례 총기를 든 군인들의 검문이 있었다. 버스에 올라타 승객들을 위협적으로 훑어보고, 승객들의 짐과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하며 승객 명단을 대조했다.

군인들은 최은에게 '광주에 가는 목적이 무엇이냐', '가족 중에 폭도에 가담한 자가 있느냐'라고 물었다. 최은은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고 말했다. 인국의 사망은 말을 꺼낼 엄두도 없는 형국이었다.

계엄군의 김렬 3회, 차량 우회 2회로 차가 광주시외버스정거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가 넘어서였다. 아버지가 2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


최은이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가 소리 없이 눈물을 보였다. 최은은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타고 가며 폐허처럼 변한 시내의 모습을 보았다. 총탄 자국, 불에 탄 잔해, 곳곳의 바리케이드, 무장 군인들의 검문을 마주하며 공포를 느꼈다. 망월동 인국의 묘지에 도착하기까지 또 두 차례의 검문이 있었다. 등에 총을 멘 계엄군과 사복 입은 자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중 한 군인이 그들을 세웠다.


- 폭도들과 무슨 관계요?

- 아들이요. 아들은 폭도가 아니었소. 아들이 철이 없어서... 거리에서 유탄에 맞았을 뿐이요. 어제 여기 묻혔소. 얘는 내 딸인데 아들의 묘가 어딘지 장소라도 알려 줘야 하지 않겠소?


계엄군은 잠시 그들을 훑어보다가 출입을 허용했다.

망월동은 여기저기 파헤쳐진 붉은 황토들, 인부들의 삽질, 곳곳에 울음과 통곡이 섞인 채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해질 무렵의 모습과 두 화가의 그림이 디졸브처럼 이어졌다. 실레의 자화상으로 날카로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클림트의 금빛처럼 화려했지만 곧 검게 변해버릴 것 같은 퇴폐적인 황혼!


인국의 시신이 쓰레기 차에 실려 상무대 한쪽 바닥에 떨어졌다고 했다. 인국의 아버지는 툭 떨어진 한쪽 신발이 틀림없이 인국의 신발임을 바로 알아보았다고 했다. 그 신발은 최은이 시장에서 사준 시장표 노란 운동화였다.

아버지는 천을 젖혔다. 흙과 피범벅이 된 얼굴. 하지만 인국이었다. 배 쪽에 총탄을 맞았는지 피가 검붉게 말라붙어 있었고, 쓰레기차 안에서 다른 시신들과 뒤엉켰던 탓인지 팔다리가 기이하게 꺾여 있었다고 했다.


- 아...... 아아......


최은은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식도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치밀어 올랐다. 사람이 쓰레기인가. 내 동생이, 착하기만 하던 인국이가 왜 쓰레기처럼 이렇게 누워 있어야 하는가. 최은은 동생이 묻힌 무덤에 엎어져 차가운 뺨에 그 흙을 비비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서 '저주'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이 세상은 지금 저주의 세계가 되었다. 그것도 아주 차가운 저주라는 빙하의 세계!


가부장의 귄위, 고집스러운 자존심의 아버지상 - 아버지는 그렇게 부모시대의 그런 아버지로 사신 분이다. 어머니도, 아들도 없는 지금, 아버지가 내부로부터 부너지면 어찌할 거나. 최은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안돼.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충격이 큰 것을 알기에 최은은 아버지 앞에서 심리가 무너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허사였다.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