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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앉은 채로 있다가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가져왔다. 그는 최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물을 권했다.
내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요한의 머리에 베드로의 좌절의 모습이 떠올랐다.
베드로가 로마 교외의 아피아 가도를 따라 도망치던 중, 홀연히 예수를 만났다. 그는 흠칫 놀라 그에게 물었다.
- 쿼 바데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 네가 내 백성을 버리고 도망치니, 나는 다시 로마로 가서 십자가에 못 박히겠다.
베드로는 이 말을 듣고 순교 자리인 로마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요한이 그의 인생에서 신앙의 길로 방향을 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과 시간이 필요했던가. 그 길을 찾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방황도 했고, 여러 신앙의 지도자들과 목사들을 만나 토론과 상담의 시간을 갖기도 했었다.
베드로가 스스로 죽을 자리를 찾아간 것은 예수의 충고도 있었지만 그가 가야 할 신앙적 숙명길이었다.
요한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세상에서도 신앙 길은 가능하다. 나는 왜 사도의 길을 선택했을까. 내게 어떠한 신앙적 숙명의 길이 있었기에 나는 이 길을 가는 것일까.
-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그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집까지 바래다 줄께.
문을 여니 어두운 거리를 뚫고 한 무더기 무더운 바람이 그들을 싸안았다.
- 내가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했지요?
- 아냐,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를 해줘서 고마워.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 지금은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스럽겠지만...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어떤 뜻이 있을 거야.
- 신의 뜻이요?
요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 100명, 200명이 총칼에 찢겨 죽을 때 신은 왜 침묵했지요? 올바르지 않은 일에 침묵하는 신은 도대체 뭐지요? 무능?, 침묵이라는 섭리?
- 신도 슬퍼하셨을 거야.
그녀의 눈에서 이념적 결기가 보였다.
- 슬퍼했으면 막았어야죠. 정의가 뭐죠? 인국이는 총에 맞을 짓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 인국이가 총에 맞아 창자가 쏟아진 채 쓰레기 더미 속에 파묻혀 있었어요. 신은 저 높은 구름 위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지요? 신이 전능하다면 뭐라도 보였어야지!
그녀의 목소리가 분노를 보였다.
- 인국이를 죽인 건 악마가 아니라 총을 든 군인들이었고, 그 명령을 내린 전두환이었어요. 적은 그들이에요. 신이 그들을 벌하지 않는다면, 아니 못한다면 우리라도 나서야지요.
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라며 신의 유무를 논거 하는 신정론(神正論)은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했다.
요한은 이 주제를 놓고 많은 대화와 논쟁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J. L. 매키는 신은 전능하고, 전선하며, 악은 존재하니, 이 세 명제 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신이 악을 막을 수 있는 데도 막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능하지도 않고 전선하지도 않다. 또는 막고 싶어 해도 막을 수 없다면 전능하지도 전선하지도 않은 것이다. 유신론적 신은 우리가 아는 정의대로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윌리엄 로우는 '신이 막을 수 있었고, 더 큰 선을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악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로우가 제시한 유명한 예는 숲에서 번개에 맞아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슴이나, 아무도 모르게 잔인하게 학살당하는 어린아이의 고통이다.
만약 전능하고 전선한 신이 있다면, 신은 적어도 그 고통을 유발하지 않고서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동등 하거나 더 큰 선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로우는 이러한 불필요한 고통이 역사와 현실에 너무나 많고 흔하다는 사실 자체가, 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이성적으로 믿기 어렵게 만든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무신론을 대변하는 학자들에 대한 방어 논리로 앨빈 플랜팅가의 자유의지 변론이 있다. 플랜팅가는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할 때, 신은 설령 전능하다 할지라도 '모든 가능한 세계에서 인간이 악을 선택하지 않는 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본질적으로 악을 선택할 경향성을 내포하고 있어, 신이 자유로운 존재를 만들려면 악의 존재를 기술적으로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신이 악을 막을 능력을 갖고 있지만, 더 큰 선인 자유의지를 주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악을 허용한 것이지, 신의 선함이 부족해서가 아님을 논증한다. 그는 매키의 논리적 모순이 실제로 모순이 아니며, 신의 존재와 악의 존재가 논리적으로 양립 가능함을 주장했다.
존 힉의 영혼성장론도 있다. 신은 인간을 미성숙한 존재로 창조했으며, 고통의 세계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완성하는 데 필수적인 도덕적, 영적 훈련장이다.
신이 인간에게 너무 명확하고 가깝게 존재한다면, 인간의 도덕적 결정은 진정한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의 강압적인 존재감에 의한 것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신은 인간이 진정한 도덕적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자신의 존재를 어느 정도 숨긴 채 고통과 불확실성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신을 믿는 자들과 불신자, 신을 믿고싶지 않은 자들은 역사속에서 이들의 주장에 설왕설래 하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의 고통은 너무 아프고 신의 섭리는 너무 크다.
눈앞에서 죽어 나가는 부모, 아내, 형제를 보는 가족의 피흘림과 갈가리 찢겨나가는 심신의 고통은 어찌할 것인가.
요한은 성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 부디 저 고통을 줄여주소서. 가능하시다면 가정에 조금이라도 평안함을 더 주옵소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라 할지라도, 그 상처를 조금이라도 더 아물게 하옵소서. 눈물을 씻어주신다는 묵시록의 예언을 속히 이루어 주소서......
진지함과 현실적 엄혹한 분위기의 첫번 째와 두번째 대화 이후 그녀는 그뒤로 어김없이 요한을 찾았다. 둘만의 토론은 2달 동안 매주 3번씩 이어졌다. 어느 날은 최은이 요한에게 검은색 비닐봉지에 담긴 제본 뭉치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거 읽고 밤에 토론하자'고 제안했다.
'어느 노동자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복사본 문건이었는데 전태일 전기로 조영래 번호사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중일 때 썼던 것을, 한국에서의 책 출간이 어려워 일본에서 출판한 것을 번역한 것이었다. 요한은 전태일 전기를 일부는 보았지만 일본 번역 전체 복사본은 다 보지 못했었다. 그는 조영래 변호사와 김관식 목사 등의 NCCR(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활동을 잘 알고 있었다.
요한은 토론 중 최은의 상처를 회상하게 하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처절한 노동자, 대학생, 국민들의 삶에서 '현실'은 그들 토론의 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불꽃같았다. 토론스타일이 그랬다.
계엄, 구원, 사상 등의 토론 중 틈틈히 이성관 ,취미 같은 대화도 나눴다. 요한은 2달 후 그녀가 그를 떠나면서 한 말이 떠올랐다.
- 형, 민주화운동과 구원은 하나 아닌가요? 그 게 가능하다면 전 형과 함께 이 길을 가도 싶어요. 동지와 이성 함께요.
그녀가 그의 차를 나가기 전 나를 안았다. 그리고 잠시 입술을 포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