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원에 대한 묵상' 시리즈는 묵상하고 살면서 문득 스치는 느낌(생각)들을 쓴 것입니다.
지상은 사랑완성의 훈련장이다.
남녀가 서로 사랑해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그 사랑을 완성하기 위함이다.
사랑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법도가 있다.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둘의 사랑관계는 금이가고 종래는 깨어진다.
부부가 처음 만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서로 항상 결재를 받고 살아야 한다. 결재를 받지 않으면 오해와 갈등이 생긴다. 그것이 쌓이는 만큼 점점 멀어지다가 종래는 이별(이혼)하게 되는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단어가 있다.
남과의 비교는 나와 남을 불행하게 만든다.
남과의 경쟁 역시 나와 남을 불행하게 만든다.
인간은 한 가지 이상의 나만이 가진 개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인간은 타고 난 개성을 완성시키면 그것으로 지상 삶의 목적을 이룬다.
비교와 경쟁은 개성을 말살한다.
감히 이 우주에서 누가 누구를 지배한다는 말인가.
지배는 사전에서 첫 번째로 없어져야 할 단어다.
도(道)의 완성은 사랑의 완성이다.
* 이 글은 <나는 너를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연재물 중 '세 작품으로 본 나는 너를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에 일부분 올려져 있습니다. 이 글(13번)을 쓴 후 쉘 실버스타인의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과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이 세 작품의 존재성(Being) 공통점을 탐구해 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지요. 앞으로도 '근원에 대한 묵상'을 쓰면서 이 같은 아이디어는 계속 생길 것 같습니다. 좀 더 발전되고 종합화된 글들이 창작될 경우, 연작 시리즈에 발표하고 그 원석인 '근원에 대한 묵상' 글은 그대로 이곳에 남겨 놓을까 합니다. 이 점 참조 바랍니다.
쉘 실버스타인의 그림 소설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은 나머지 한쪽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완벽
한 한쪽을 만난다. 그러나 완벽한 한쪽을 만난 덕분에 동그라미는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동그라미는 찾은 한쪽을 뱉어낸다.
그리고 다시 찾아 헤맨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평생을 애타게 찾던 나의 한쪽은 마침내 나타나나, 뱉어내고 다시 헤맨다...?
나의 한쪽은 평생을 함께 하는 천생연분의 반려자이기기도 하고, 완성된 내 삶의 가치관 철학과 인생관 철학일 수도 있다. 평자들과 독자들은 이 소설이 현대인의 강박적인 완벽주의를 꼬집는 철학적인 동화라고 박수를 친다.
'평생을 찾던 한쪽을 뱉어낸다' - 이 것은 똑같은 3차원 형국일 뿐이다. 그리고 이 속에는 거시, 미시의 우주관에 부정적 요소가 단단히 숨어 있다.
나는 이럴 것이라 판단한다.
동그라미는 평생을 헤매다 드디어 나의 한쪽을 찾았다. 한쪽이 나와 정확하게 맞아 동그라미가 완성이 되니, 동그라미는 기쁨과 환희에 차 둥글게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환하고 밝은 빛으로 화해 자유자재, 4차원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대화도 텔레파시로 종래 입으로 대화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아무런 오해가 없는 섬세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둘은 하나가 되어 마침내 우주와 하나로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