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에 대한 묵상 6

by 전영칠

* '근원에 대한 묵상' 시리즈는 묵상하고 살면서 문득 스치는 느낌(생각)들을 쓴 것입니다.



17. 선인과 악인에게 똑같이 내려주는 신, 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않은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마 5/45)."

왜 그럴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신의 세계는 선악 이전, 옳고 그름 이전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 세계는 '화엄(華嚴)의 세계'와도 같다.

화엄의 세계는 '조화와 통일'의 세계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다"라는 뜻이다. 화엄의 세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거미줄처럼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작은 모래알 하나 속에 온 우주의 정보가 담겨 있고, 나라는 존재는 곧 우주 전체와 분리될 수 없다는 무한한 관계성을 지닌다.

또한 세상 모든 만물이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어 존재한다는 원리다. 마치 수많은 거울이 서로를 비추며 끝없이 빛을 주고받는 '인드라망'의 세계와 같다. 이 세계에서는 잘나고 못난 것의 차별이 없으며, 모든 존재가 그 자체로 고귀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이 세계는 '무애(無礙)'의 세계다. 모든 대립하는 것들(선과 악, 너와 나, 삶과 죽음)이 서로 부딪치지 않고 원만하게 융합되어, 아무런 걸림이 없다.

이는 마치 고사리, 도라지, 밥, 고추장이 제각각의 맛(개성)을 유지하면서도, 하나로 비벼졌을 때 '비빔밥'이라는 완벽하고 새로운 조화(전체)를 이루는 것과 같은 세계이다.


신이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똑같은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는 것은 악한 사람은 선한 사람이 될 때까지, 선한 사람은 선의 완성을 이룰 때까지 기다리시기 위함 아닐까.



18. 사랑이 먼저일까, 생명이 먼저일까?


사랑이 먼저일까, 생명이 먼저일까.

생명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사랑이 먼저다.



19. 자본주의와 자본제일주의


우리는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고, 그런 세상이 이익사회이니 서로의 이익을 위한 만남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익관계의 만남은 이익이 끊어지면 만남도 끊어진다.

자본주의는 철학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먹고살기 위한 생존의 합리와 상호 간의 약속과 이행 방법론이다. 자본주의는 흔히 자본제일주의가 된다. 천박한 자본주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미완성의 세계이고,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이제 자본주의 이후를 살 준비를 해야 한다.



20. 행위(Doing)의 삶과 존재(Being)의 삶


행위(Doing):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거나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몸이나 마음을 움직이는 활동적인 상태. 자신의 가치를 성과, 업적, 사회적 지위 등 외부적인 조건으로 증명하려 하며, 주로 '미래'의 보상을 위해 현재를 도구화하는 삶의 태도를 뜻함.

존재(Being): 외부적인 성취나 행위와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느끼고 수용하는 상태. '무엇을 하는가'보다 '어떤 상태로 있는가'에 집중하며, 현재에 머무르며 내면의 평화와 생명력 그 자체를 만끽하는 삶의 태도를 뜻함.


행위 위주의 삶은 3차원을 벗어날 수 없다. 행위로 살면서 존재로 깨닫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왔기에 '행위'를 멈출 수는 없다. 밥을 지어야 하고, 일을 해야 하며, 관계를 맺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존재로부터 나오는 행위(Doing from Being)'를 실천하는 것이다.




<행위(Doing)의 삶과 존재(Being)의 삶>에 대한 내용으로

'행위(Doing)의 늪을 건너 존재(Being)의 바다로'를 써볼까 합니다.

(나는 너를 단 한번도 버린적이 없다 11화 연작)


오늘날 현대인이 앓고 있는 가장 깊은 질병인 '행위(Doing)의 삶'과 그 치유책인 '존재(Being)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엇이 될 것인가'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 속에 던져집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움직일 것을 요구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불안과 도태의 증거로 몰아세우지요. 그러나 '근원의 존재'는 단 한 번도 그대가 이룬 성취나 그대가 행한 과업 때문에 그대를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오직 그대가 '존재'한다는 그 경이로운 사실 하나만으로 그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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