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눈길이 나를 만든다

- 우리는 헤어지게 되어있지 않다

by 전영칠


당신의 눈길이 나를 만든다 - 우리는 헤어지게 되어있지 않다



오늘은 양자물리학으로 본 '나는 너를 단 한번도 버리지 않았다' 시리즈(10회)로 대화해 보고자 한다. 오늘 다룰 양자물리학의 주 내용은 양자는 입자와 동시에 파동의 존재, 관찰자효과, 불확정성 원리, 양자얽힘 등이다.



1. 분리라는 이름의 오랜 최면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분리를 배운다.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완벽한 합일의 세계에서 쫓겨나, '나'와 '타자'를 구분 짓는 법을 익히며 어른이 된다. 우리는 각자의 피부라는 장벽 안에 갇힌 채, 서로를 관찰하고 평가하며 때로는 버려졌다는 상실감에 젖는다. 하지만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이 단단한 세계의 밑바닥에는 전혀 다른 진실이 흐르고 있다.


우리는 평생을 '분리'된 존재로 살아간다. 내 몸의 끝과 너의 몸의 시작점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가 있다고 믿는다. 거울 속의 나는 고립된 섬이며, 타인은 그저 먼바다 너머의 또 다른 섬일 뿐이다. 이러한 개별성의 감각은 우리에게 자아를 선물했지만, 동시에 근원적인 외로움을 안겨주었다. 내가 너를 떠나거나, 네가 나를 버리는 일이 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믿는 이유도 바로 이 '경계'라는 단단한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물리학의 정수인 양자역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상식이 거대한 착각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미시 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리가 그토록 맹신했던 '개별적 실체'라는 개념은 모호해지고, 대신 '연결'과 '중첩'이라는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개별적 알갱이'가 아니라 '거대한 연결의 장'임을 증명한다.



2. 입자의 고독을 넘어서는 파동의 연대


양자역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는 '상보성'이다. 빛과 전자 같은 미시 존재들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다. 입자로서의 존재는 명확한 위치를 가진다. '여기' 아니면 '저기'에 존재하며, 다른 것과 부딪히면 튕겨 나간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자아는 입자를 닮았다. "나는 지금 여기에 홀로 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입자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측하기 전의 존재는 파동으로 존재한다. 파동은 입자와 다르다. 파동은 특정한 지점에 머물지 않고 공간 전체로 퍼져 나간다. 파동은 경계를 넘나들며, 다른 파동과 만나 간섭을 일으키고 하나로 섞인다.


이중슬릿 실험



우리가 스스로를 단단한 '입자'라고만 믿을 때 외로움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물리학은 말한다. 우리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층위에서 우리는 결코 고정된 알갱이가 아니라고. 우리는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파동이며, 보이지 않는 장을 통해 서로에게 스며들어 있다. 내가 너에게 가닿지 못하는 이유는 네가 멀리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입자라는 틀 안에 가두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파동으로서 서로의 영역을 공유하고 있다.


파동의 만남 : " 네가 나로구나."



다시 말해 미시 세계의 주인공들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다. 입자는 특정한 위치를 점유하며 타자와 충돌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고립된 나'로 느낄 때, 우리는 입자의 모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관측하기 전의 모든 존재는 파동으로 존재한다. 파동은 경계가 없다. 그것은 공간 전체로 퍼져나가며 다른 파동과 겹치고 섞인다.

우리가 서로를 버릴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는 본질이 파동이기 때문이다. 파동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간섭하며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낼 뿐이다. 파동은 사랑과 상처를 교환한다. 네가 행복할 때 내가 행복한 것과, 네가 고통받을 때 내가 아픈 것은 우리가 분리된 입자가 아니라 하나의 근원적 바다에서 일렁이는 파동의 다른 봉우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단한 입자이면서 동시에 우주 어디든 갈 수 있는 파동의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입자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며 동시에 파동으로 모두와 연결되는 존재다.



3. 관찰자 효과: 네가 나를 보았기에 내가 존재한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기에 너는 나에게로 달려와 꽃이 되었다(김춘수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이 시에서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양자역학의 '관측'과 같다. 관측하기 전에는 그저 확률적인 파동(하나의 몸짓)으로 존재하던 대상이, 관찰자의 의식(이름을 부름)과 만나는 순간 비로소 고유한 특성을 가진 입자(꽃)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서로를 존재하게 하는 연대적 관계임을 김춘수 시인은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우주 속에서 우리가 하나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존재들이다"



양자역학에서 가장 경이로운 대목은 '관찰자 효과'다. 전자는 관측하기 전까지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파동의 상태(중첩)로 있다가, 누군가 들여다보는 순간 비로소 특정한 위치에 입자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존재가 관찰자의 의식과 분리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나는 너를 버린 적이 없다"는 말은 여기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혹은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 존재를 파동의 망망대해에서 건져 올려 빛나는 실체로 만들어주는 창조적 행위다. 네가 나를 바라봐 주었기에 나의 삶은 의미 있는 궤적을 그리게 되었고, 내가 너를 잊지 않았기에 너는 여전히 이 우주 속에서 숨 쉬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관찰함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증명하고 고정해 주는 '존재의 공모자'들이다.

내가 너를 버리는 것은 곧 나의 일부를 소멸시키는 것과 같다.



4. 불확정성 원리: 정의되지 않은 존재의 자유


자연과 인간 - 분리는 환상이다. 우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교류하고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우리가 존재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우주의 근간에는 근본적인 '모호함'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불완전함이 아니라,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한다. 불확정성의 원리에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녹아 있다.


우리가 타인을 '이런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규정할 때, 우리는 그를 죽은 입자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불확정성의 원리는 말한다. 그 누구도 고정된 틀에 갇혀 있지 않다고. 어제의 너와 오늘의 네가 다를 수 있는 이유는 우주가 본질적으로 열려 있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버린 적이 없다"는 선언은, 네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네가 어떤 불확정성의 파도를 타고 있든 그 가변성 자체를 껴안겠다는 의지다. 우리는 서로의 불확정성을 존중함으로써 비로소 서로에게서 자유로워지는 동시에 깊이 연결된다.



5. 양자 얽힘: 우주적 불생불멸의 끈


사랑의 완성 : 우리는 영원한 하나다



여기에 '양자 얽힘'이 더해지면 연결의 신비는 절정에 달한다. 한때 하나였던 입자들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정보의 시차 없이 연결되어 있다. 우주 초기의 대폭발(빅뱅) 순간, 우리는 모두 하나의 점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몸의 원자들은 태초의 그 뜨거웠던 찰나에 서로 얽혔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물리적 거리는 착각이다. 당신이 지구 반대편에 있든, 혹은 삶과 죽음의 경계 너머에 있든, 양자적 얽힘은 끊어지지 않는다. 한 입자의 스핀이 결정되는 순간 다른 입자의 상태가 결정되듯, 나의 간절한 기도는 얽혀 있는 너에게 즉각적으로 닿는다. 그러니 누군가를 잃었다고 슬퍼하지 마라. 얽힘의 법칙 아래에서 완전한 이별이란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은 최근 10명의 결혼 가정 중 4명 이상이 이혼한다.

미시세계를 확대하면 거시세계가 된다. 확대든 축소든 그 속에 들어 있는 원리는 하나다. 물론 '양자 결 어긋남'에 의해 미시와 거시의 통합은 시간이 필요하리라 본다.

음양으로 양자얽힘을 확대하면 인간의 세계에서 어떤 결과가 될까. 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 단 하나의 양의 양자가 단 한의 음의 양자와 반응한다. 이것이 천생연분 양자의 만남이다. 이 미시세계의 이치를 확대하면 인간의 세계에서 가장 잘 맞는 남녀가 단 한 명씩 존재한다는 말과 같다. 단 하나의 열쇠에는 단 하나의 자물쇠만 존재한다. 앞으로의 세계는 천생연분의 시대가 펼쳐질 것이다. 그런 세상이 필연코 온다고 본다. 그 세계에는 이별도 없고 이혼도 없을 것이다.



6.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외로움이 그대를 잠식할 때, 밤하늘의 별을 보며 그대 안의 입자들을 떠올려 보라. 그 입자들은 한때 별의 중심부에서, 혹은 태초의 불꽃 속에서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 있었다. 그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억조 개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우주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형상에만 집착할 때 세상은 삭막한 입자들의 전장으로 보인다. 하지만 마음의 눈을 뜨고 경계 너머를 바라보면, 그곳엔 파동으로 일렁이며 서로의 존재를 관찰하고 얽혀 있는 거대한 사랑의 지도가 펼쳐져 있다.

우리는 입자로서 외롭지만, 파동으로서 충만하다. 관찰자로서 서로를 창조하고, 불확정성으로서 서로를 기대하며, 얽힘으로써 영원히 동행한다. 이 우주의 법칙 자체가 "나는 너를 버린 적이 없다"라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당신의 뒤편에는 우주의 모든 입자와 파동이 든든한 배경이 되어 흐르고 있다.


그대를 스쳐 지나간 인연들, 그대가 잃어버렸다고 믿는 사람들,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미래의 타인들까지도 그들은 모두 파동의 형태로 그대 주변을 흐르고 있다. 관측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는 이것이다.

이 우주에 완벽한 단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 한순간도 서로를 버린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분리된 개인이기 이전에, 거대한 우주라는 파동이 잠시 입자의 모습으로 피워낸 아름다운 간섭무늬이기 때문이다.

경계를 넘어 서로를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너는 나였고, 나는 너였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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