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들의 삶 돌아보기

사진 : 서울신문에서 인용

by 전영칠


경쟁은 환상이다를 연재하면서 경쟁 이전의 시각에서 사신 분들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분들은 인류를 위한 삶을 사신 성인들과 나라를 위해 사신 독립운동가와 전쟁터의 영웅들이다.



나는 우리나라에 살면서 가족들이나 나라에 애경사가 있을 때나 외국에서 살고 있는 교포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 세 곳을 방문해 볼 것을 권한다.

이 곳은 한민족의 나라 세움과 삶의 가치관 원형이 담겨 있는 강화도 참성단과, 선지선열과 전쟁 영웅들이 잠들어 계신 동작동 국립묘지와, 국민의 성금으로 만든 천안 독립기념관이다.



1. 천안 독립기념관


천안 흑성산 자락에 자리 잡은 독립기념관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다. 이곳은 '우리 민족의 불굴의 독립 의지'를 집대성한 성역이다. 1982년 일본의 교과서 역사 왜곡 사건을 계기로, 우리 역사를 우리 손으로 지키고 알려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건립이 추진되었다. 외세의 침략에 굴하지 않고 자신을 던졌던 선열들의 정신을 후대에 전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독립기념관의 건립 과정 자체가 하나의 독립운동과도 같았다.

정부의 예산도 투입되었으나, 핵심은 전 국민적 성금 운동이었다. 1982년부터 약 50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이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고사리손의 초등학생부터 평생 폐지를 주워 모은 노인까지, 온 국민이 '내 나라의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참여했다.

이는 국가가 일방적으로 주도한 건설이 아니라, 민초들이 직접 벽돌 한 장을 쌓아 올린 '민족적 자긍심의 결정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독립기념관은 구한말 의병 투쟁부터 1945년 광복의 순간까지, 시대별 독립운동의 흐름을 7개의 전시관에 담고 있다.


구한말 의병 : 위정척사 사상을 바탕으로 일제의 침략에 맞선 선비와 민초들

최익현, 신돌석, 민영환

계몽 및 외교 : 교육과 언론, 외교를 통해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려 한 지식인들

안창호, 이승만, 서재필

3.1 운동 : 비폭력 불복종 정신으로 전 민족이 하나가 된 분수령

유관순, 손병희, 한용운

의열 투쟁 : 개인의 안위를 버리고 직접적인 타격으로 일제를 전율케 한 투사들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김상옥

임시정부 및 광복군 : 체계적인 정부 조직과 군사력을 갖춰 독립을 준비한 이들

김구, 이동녕, 지청천, 김원봉


독립기념관에 모셔진 수만 명의 선열 중, 당시의 잣대로 '개인적인 성공'을 거둘 능력이 없었던 이는 거의 없다. 이회영은 당대 최고의 자산가였다. 김구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 한 시대의 선비로 안락했을 것이다. 유관순은 배움을 통해 신여성으로서의 삶을 꿈꿀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남보다 잘 사는 경쟁'이 아니라, '함께 자유로운 세상'을 만드는 길을 택했다. 독립기념관은 바로 그 '비경쟁적 선택', 즉 나를 버려 우리를 살린 거룩한 선택들이 모여 만든 거대한 기록관이다.


국민의 성금으로 세워진 독립기념관의 벽돌 하나하나에는 개인의 성공을 포기한 선열들의 피와 눈물이 서려 있다. 천안 흑성산 자락에 우뚝 솟은 그 거대한 '겨레의 집'은 단순히 국가의 예산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다. 1982년, 일본의 역사 왜곡에 분노한 민초들이 고사리손으로 모은 동전부터 노인의 쌈짓돈까지 정성을 보태어 일구어낸 민족적 자긍심의 결정체다.


독립기념관의 전시관을 따라 걷다 보면 시대별로 명멸해 간 수많은 이름과 마주하게 된다. 구한말의 최익현과 민영환, 3.1 운동의 유관순과 손병희, 의열 투쟁의 안중근과 윤봉길, 그리고 임시정부를 이끈 김구와 이동녕에 이르기까지.


우당 이회영 선생의 가문을 보면 당대 최고의 명문가이자 거부였던 그 육 형제가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 벌판으로 향했을 때, 세상의 계산기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패배'의 길을 자초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버린 것은 가지고 있던 재물이었고, 그들이 얻은 것은 민족의 영혼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의 총성 속에 담았던 것은 개인의 분노가 아닌 동양 평화라는 거대한 질서였고, 유관순 열사가 아우내 장터에서 외친 것은 개인의 생존을 넘어선 민족의 자유였다. 그들은 '나'를 넘어 '우리'로 달렸다.


진짜 인생은 남을 이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넘어서는 가치를 위해 기꺼이 나를 내어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선열들이 선택한 고난과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이기심이라는 환상을 깨트린 가장 고귀한 승리였다.



독립운동가 대학생으로 환생하다 <신문희 (Moony)>


독립기념관의 육중한 '겨레의 집'을 지나 전시관 깊숙이 발을 들이면, 단순한 유물을 넘어선 선열들의 '선택'과 마주하게 된다. 그곳의 공기는 오늘날 우리가 매몰된 치열한 생존 경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숭고함을 머금고 있다.


제3전시관(나라 지키기)에는 보물로 지정된 윤봉길 의사의 유품이 있다. 바로 거사 직전 김구 주석과 바꾼 회표(회중시계)다. 자신의 시계는 6원을 주고 산 새것이고 김구의 시계는 2원짜리 낡은 것이니, 이제 자신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시계를 바꾸자던 그 담담한 목소리가 유물 위에 서려 있다.


제5전시관(나라 되찾기)에서 마주하는 '광복군 서명 태극기'가 있다.

전시관의 마지막 여정인 '추모의 자리'에 서면, 수많은 독립군의 형상을 한 조각상들과 마주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개개인의 얼굴이 아닌, 거대한 하나의 흐름을 보게 된다.

일제강점기, 지식인과 자산가들에게 세상은 '달콤한 유혹'의 무대였다. 당시의 법조인, 관료, 사업가로 산다는 것은 개인의 지평에서 볼 때 완벽한 '승리자'의 삶을 보장받는 일이었다.


이회영 선생의 가문은 당대 최고의 명문가이자 거부였다. 그들이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떠날 때,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어리석다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개인의 영달을 위했다면 그들은 대대손손 부귀영화의 정점에서 군림했을 것이다. 대신 그들은 민족의 해방이라는 거대한 가치를 위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기꺼이 제단 위에 바쳤다.


독립기념관을 나서는 길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선열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독립은 이루어졌다. 이제 대한미국은 선진국이 되었고, 우리에게는 정신의 자유, 가치관의 자유, 인생 성공과 경제적 자유가 남았다. 그것은 우리에게 당면된 새로운 독립이다.



2. '나'와 '우리' : "우리는 결코 적이 아니다"


나라의 독립은 이루어졌다. 우리는 열심히 살아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이루었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일이 여전히 우리에게 남았다.

독립군의 후예든, 평범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후예든, 매국노의 후예든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당면한 현실은 이 사회가 경쟁으로 점철된 사회라는 것이다. 경쟁은 이미 시스템화되었다. 그런 사회를 바로 바꿀 수도 없다. 경쟁 사회가 바꿔지려면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경쟁사회의 시스템이 바뀌려면 제도와 체제가 바뀌어야 한다. 그만큼 경쟁사회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현재 전세계적으로 뿌리가 깊다. 그 가능성은 있기라도 하는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때'가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장으로 다루기로 한다.

인간은 성공을 원한다. 경제적 독립도 중요하다. 분명한 것은 인간은 행복을 위해 사는 존재라는 것이다.

어려운 550만 자영업자들에게 밥 잘 먹었다고, 커피 잘 마셨다고 고맙고 따듯한 인사라도 한번 더 건네자. 경쟁에 지칠 때, 경쟁이 우정을 이길 때, 기업이 경쟁을 유도해 힘겨울 때, 우리는 조금은 더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 보자.


유관순 누나,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그리고 이름 없는 수많은 애국열사들.

'나'보다 '우리', '나'보다 '나라'를 우선한 그분들께 감사하며 묵상하자.

우리 모두는 피, 땀, 눈물을 우리 대신 흘려준 그분들의 귀한 후손들이다.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조금은 더 양보하자. 경쟁에 진 이에게 격려를 잊지 말자. '다음은 너야!'라며 우리 서로, 그분들의 귀한 후손들에게 힘을 실어주자.

"우리는 결코 적이 아니다"







* 추신 : 그분들이 지금의 시대를 만났다면 대학에서 미팅하고, 맛있는 것 먹고, 사랑을 만나고 가정을 이루었을 청춘들이었겠지요. 모두 훌륭하신 모습들이지만 특히 유관순 누나가 대학캠퍼스에서 손흔들고 걸어가는 모습에서 눈물을 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분들 대신 우리들이 잘 살아주어야 겠습니다, 그 분들 몫까지 말입니다.

'독립운동가 대학생으로 환생하다'를 재생해주신 신문희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