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시흥 늠내길 소금창고
2025년 현재, 시흥 '늠내길'은 도심 속에서 자연의 숨결을 느끼며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걷기 좋은 길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늠내'는 '뻗어 나가는 넓은 땅'이라는 의미를 지닌 시흥의 옛 고구려 시대 지명으로, 그 이름처럼 시흥의 다채로운 풍경을 품는다. 늠내길은 총 6코스가 있다. 1코스 '숲길'과 2코스 '갯골길'은 각각 숲과 갯골이라는 뚜렷한 테마를 가지고 있어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늠내길 1코스 '숲길'은 시흥시청에서 시작해 다시 시흥시청으로 돌아오는 약 13km의 순환형 코스이다. 약 4~ 5시간이 소요되며, 높지 않은 산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상쾌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울창한 숲과 나무가 어우러진 길을 걸으며 계절의 변화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코스 중간에 만나는 능곡선사유적공원에서는 시흥의 오랜 역사를 엿볼 수 있으며, 아기자기한 가래울 마을에서 잠시 쉬어가기 좋다. 난도가 높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늠내길 2코스 '갯골길' 역시 시흥시청에서 출발하는 약 16km의 순환형 코스로, 약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 경기 유일의 내만 갯골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옛 염전의 풍광을 감상하며 걷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갯골생태공원을 중심으로 칠면초, 나문재 등 다양한 염생식물이 자라는 독특한 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다. 특히 공원 내 '흔들전망대'에 오르면 뱀처럼 구불구불한 갯골의 모습과 주변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햇빛에 반짝이는 옛 염전 터와 어우러진 갈대밭 풍경이 아름다워 사진 촬영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
늠내길 2코스의 핵심 공간인 갯골생태공원에는 옛 소래염전의 역사를 간직한 소금창고가 자리하고 있다.
시흥 갯골생태공원 일대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부터 천일염을 생산하던 대규모 '소래염전'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 남아있는 소금창고는 193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소금창고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일제는 소금 수탈을 목적으로 이곳에 염전을 조성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우리 국민들의 중요한 생계 터전이 되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소금은 수인선 협궤열차를 통해 전국으로 운송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염전 산업이 쇠퇴하면서 군자염전에 이어 소래염전도 1996년 문을 닫게 되었다.
폐염전 부지는 오랜 시간 방치되었으나, 시흥시의 노력으로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했다. 당시 59동에 달했던 소금창고는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는 단 2 동만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이 두 동의 소금창고는 그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2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25년 현재 내부는 염전에서 사용하던 도구와 염부들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짠 소금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벽을 살짝 기울여 지은 독특한 건축 방식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시흥시는 원형 소금창고 주변으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소금창고들을 추가로 지어 방문객들이 염전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2025년 현재, 이곳은 늠내길을 찾는 이들에게 시흥의 역사와 자연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쉼터가 되어주고 있다.
2010년경, 소래염전과 그 주변 광활한 토지가 (주)성담에 의해 인수되었다.
2010년 전후 시흥 소래염전에서 발생한 소금창고 철거 사건은 2009년 10월에 일어났다. 당시 염전과 소금창고의 소유주였던 (주)성담이 전체 59동의 소금창고 중 52동을 하룻밤 사이에 철거하면서 큰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재산세 부담이었다. 해당 부지의 용도가 기존 '염전'에서 '잡종지'로 변경되면서 (주)성담에 부과되는 재산세가 연간 약 6천만 원에서 16억 원으로 급증했다.
세금 부담이 커지자 (주)성담은 미등기 건축물이었던 소금창고를 철거하여 재산세를 줄이려 했다. 이 소금창고들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었고, 시흥시와 시민단체들은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주)성담은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심의를 불과 며칠 앞두고 기습적으로 철거를 단행했다. 이로 인해 소금창고의 문화재 등록은 무산되었고, 시흥시의 갯골생태공원 조성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이 사건은 소중한 문화유산이 기업의 경제 논리에 의해 훼손되었다는 점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의 큰 비판을 받았다. 시민단체들은 (주)성담 본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원상 복구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개발과 보존의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 이후 남은 소금창고들을 중심으로 생태공원이 조성되었으나, 하루아침에 사라진 52 동의 소금창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다.
우리는 '사유지이므로 접근을 금지한다'는 팻말과 울타리를 지났다. 물론 2010년 1월의 첫 늠내길 풍경이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희귀종 모새달(벼과 식물). 자생한 모새달의 군락이 보였다.
내가 처음 무너진 소금창고들을 본 것은 2010년 1월 16일이었다. 하룻밤에 소금창고들을 망가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붕만 남은 모습들을 본 것이다. 그때 찍은 사진을 공개한다.
'하루 밤만에' 헐린 소금창고의 잔해들. 멀리 빼곡하게 아파트의 대군이 쓰러진 소금창고를 덮칠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있고 엄청난 시흥시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원상복구 데모가 있고 난 이후, 시흥시의 대표적인 도보 여행길인 늠내길은 시흥시청과 토지 소유주인 (주)성담을 비롯한 여러 지주들의 긴밀한 협조 관계를 통해 조성되고 유지되게 된다. 특히 늠내길의 핵심 구간인 소래염전과 주변 지역을 소유한 (주)성담과의 협력은 늠내길 조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주)성담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차원에서 늠내길 1코스(갯골길)와 2코스(소금길) 등이 지나는 자사 소유의 부지를 시흥시가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는 늠내길의 초기 조성과 확장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탐방로 개설 및 유지보수 협조: 시흥시는 (주)성담 소유 부지에 탐방로를 개설하고, 안내판, 편의시설 등을 설치했다. 이 과정에서 (주)성담은 토지 형질 변경이나 시설물 설치에 필요한 행정적 절차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또한, 탐방로가 훼손되거나 안전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시청과 협력하여 신속하게 보수 작업을 진행했다.
(주)성담은 자사의 토지가 생태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는 것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고, 시흥시는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생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할 수 있었다.
늠내길이 1코스에서 6코스까지 점차 확대 개발되는 과정에서 시흥시청과 (주)성담을 포함한 토지주들은 지속적인 소통 채널을 유지하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사전에 조율하고 해결해 나갔다. 이는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비 온 뒤의 땅이 더 단단해지는 것일까.
결과적으로 시흥 늠내길은 지방 자치 단체와 민간 기업,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서로의 이익을 존중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한 성공적인 민관 협력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았다.
늠내길 1코스는 산 능선을 따라가는 길이어서 평지 도보하시는 분에게는 조금은 벅찬 길이다.
늠내길 2코스는 평지로 터진 길이어서 넓은 평야지대를 걷는 느낌이었다.
늠내길 2코스는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번성했던 소래염전을 O자 형태로 도는 형국이다. 소래염전은 당시만 해도 100만 평이 훨씬 넘었다.
주안염전이 63만 평으로 근대화된 최초의 천일염전이었다. 남동염전이 90만 평이었다.
주안염전과 소래염전은 물밀듯 싼 중국식 가공품이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한 1980년대 중국의 싼 소금에 밀려 끝내 그 수명을 다했다.
시흥만까지 이어지는 소래염전의 하천을 걷는다. 2010년 처음 이 길을 걸었으니 오히려 그때 찍었던 사진들이 소중하다. 2025년 지금은 그때 당시보다 훨씬 늠내길이 세련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 길보다 15년 전의 더 자연스러웠던 그 길이 눈에 밟히는 것은 무엇일까.
밀물과 썰물로 인해 소금과 눈, 벌이 섞여 만든 자연이 만들어놓은 예술작품바닷길 하천이 보였다.
아래 사진 역시 2010년 겨울에 찍었던 사진이다.
시장경제의 원칙과 사유재산 존중에 입각한 '개발'과 자연과 환경을 위한 '보전'의 갈등은 오늘도 계속된다. 천성산 터널 공사, 새만금 간척 사업,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 사업, 종로 1가와 3가 사이의 피맛골 등 크고 작은 개발과 보전이라는 갈등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 피맛골은 양반의 갑질에 눌린 서민들의 통풍구였다. 그러나 보전보다는 개발 논리로 밀려 피맛골이라는 이름만 남았다. 아무리 멋있게 인테리를 하고 고급화해도 피맛골의 옛맛은 사라진 지 오래다. 600년 된 피맛골은 사라진 지 오래이나, 그 자리에서 피맛골의 자취를 이어가던 60년 이상된 근대적인 골목길은 고층빌딩이라는 수익구조에 형채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이조시대의 피맛골에 쌓인 중인, 상민들의 길, 그리고 1950~90년대 근대사 산증인들의 흔적은 이제 찾을 길이 없다
좋다, 우리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기고 승리해야 한다. 그 내용은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는 '돈과 빌딩'이라는 하드웨어를 얻는 대신에 '인간 삶의 애환과 정서'라는 소프트웨어를 잃는다.
소멸되는 것은 추억과, 과정과, 가난하고, 아프고, 슬프고, 기뻤던, 삶의 희로애락들이다. 그 위로 고층 빌딩과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 현재에도 개발이냐 보존이냐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21세기 들어 화두로 떠오른 개발과 보전 문제는 산과 강, 길 도처에 산재해 있다.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영화가 넷플릭스 역사상 최장기 1위를 찍었다. 주제가 골든은 8주 이상 빌보드 1위를 하고 있다. 그 영화에는 덕수궁, 무속, 이조시대의 호랑이와 까치 민화, 서울북촌의 한옥골목 등 한국 고유의 문화와 풍속이 선을 보였고, 전 세계에서 그것들을 보려고 관광객이 구름처럼 몰려오고 있다. 그 덕분에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적인 고유한 한국 역사와 문화를 보고자 하는 세계 관광객들의 중요한 코스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여'를 외치지 않아도 보전의 가치는 그 영화 하나로도 검증된다.
세상은 공평하다. 결국 얻는 만큼 잃는다. 그러나... 정서만큼은 잃지 말자. 그러나 정서를 느끼려면 옛것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옛것을 보존하는데 지혜를 모으자.
우리는 시멘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