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명상 16- 나는 쉬는 일만 남았다

사진 : 서포리해변

by 전영칠

덕적도 종주길


1일 차 : 진리항 도우선착장(버스이동) - 능동 자갈마당 - 소재해변 파라금이 - 인천해양경찰대 덕적출장소 -

벗개 - 서포리해변 11.3km

2일 차 : 서포리해변 - 서포리산림욕장 - 덕적면종합운동장 - 비조봉(292 m) - 운주봉 231m) - 호박회관(진리해변) - 진리항 도우선착장 12.2Km.

거리 : 23.5KM



│자기에게 맞는 명상이 정답이다│


서기 660년, 당나라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머물렀던 '덕물도(德物島)'- '덕물도'는 '물이 가득한 곳에 있는 섬'이란 의미로 덕적도의 옛 이름이다. 6월의 덕적도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덕적도 자갈마당


진리 도우선착장에서 버스로 자갈마당에 도착했다. 자갈마당은 모래 대신 크고 작은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으로, 파도가 칠 때마다 들려오는 자갈 구르는 소리가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해변에 우뚝 솟은 낙타바위도 보였다. 서해바다가 이리 맑은가. 오른손을 자갈 사이 바다에 넣어본다. 손가락 사이로 맑은 은하수가 흐른다. 그저 맑은 보석이다. 그 맑은 보석들이 투명하게 손에서 흘러내린다. 나는 사람들이 얹어놓은 자갈들의 탑을 보며 자리에 앉는다.


고요함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다. 고요함은 한 번도 부재한 적이 없다. 명상은 단지 마음이 자신의 본래상태로 자연스럽게 쉬는 것이다. - 라마나 마하리쉬


명상은 전쟁이 아니다. 명상은 노력도 투쟁도 아니다.

또한 명상은 기술이 아니다. 만트라를 반복하거나, 호흡을 제어하거나, 억지로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다.

마음과 싸우지 마라. 마음과 전쟁도 마라. 단지 그래, 그래, 사느라고 얼마나 수고 많아 라며 위로해 주라.

명상은 도피가 아니다. 억지도 아니다.

내게 원래 있는 그대로의 나로 쉬는 것이다. 내 속에는 '원래 그대로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는 침묵의 실재'가 있다. 명상은 그 속에서 편안히 쉬는 것이다. 내게 원래 있는 편안한 근원에서 마음껏 쉬는 것이다.


나는 경치가 좋은 곳에서 명상한다. 자연에서, 근원에서 쉬는 것이 명상이다. 그러다가 10분, 20분, 1시간 편안한 상태가 지속되면 '지극한 평안(平安)의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명상을 한다고 해서 늘 그러한 평안한 상태를 맛보는 것은 아니다. 기대도 실망도 할 것 없다. 자연의 흐름에 따르면 된다.


나는 명상의 기초대로 눈, 코, 호흡 등 그중 하나에만 집중하며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으로 시작했었다. 그러나 5분도 안되어 꼬리를 무는 잡생각들로 쉽게 되지 않았다. 그 기간이 오래다.

그러던 중 마하리쉬의 자아탐구(Ātma-Vichāra) 명상을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자아탐구명상의 핵심은 고요함과 순수의식은 원래 내게서 떠난 적이 없으니, 그저 그 근원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본래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쉬라고 했다. 그게 명상이라고 했다.

나는 이 방법을 택했다. 나는 보다 편하고 평안한 나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지극히 평안(平安) 한 상태' - 나는 그것을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 를 두 번 경험해 보았다. 그 상태는 사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지극한 편안함이었다. 우주가 평안함으로 녹아내리는듯한 느낌이었다. 나의 뇌가 지극한 평안함으로 완전히 젖어 들어 온몸으로 모두 퍼져버리는 상태,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평안함으로 다 녹아버리는 상태. 어떻게 이렇게 지극한 평안함이 있을 수 있지?

'지극히 평안(平安) 한 상태'가 뭔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내가 어느 경지에 갔다거나 자아완성을 이뤄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살면서 영성계발과 자아완성을 위해서 한걸음 한 걸음씩 가고 있을 뿐이다.

옛 도인은 말했다.


去 去 去 中 知 行 行 行 裡 覺

가고 가고 가는 가운데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속에서 깨닫게 된다


그저 모든 것을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에 맞추어 살며, 무엇을 해도 참자유인이 되는 인간이 되고 싶을 뿐이다. 그 방법 중의 하나로 명상을 택한 것이다.

명상을 해보니 자연미를 감상하면서 멍 때리는 형국이 명상상태에 도움이 된다. 나는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전국을 걸으며, 혹은 좋은 경치 앞에 앉아서 명상하는 것이다. 주의할 점이 있다. 이때 의식은 잡고 가야 한다. 의식 없는 수면 상태가 되면 시간 낭비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했다. 대도에는 특별한 문이 없다. 대도는 동서남북 사통팔달이다. 그러니 명상을 하려거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 하면 된다. 그것이 정답이다.


명상과 함께 반드시 병행하여야 할 것이 있다. 끊임없는 진리탐구를 생활에 실천하는 것이다. 한 순간도 놓치지 말고 그 화두를 이어가야 한다. 진라탐구생활을 혹여 놓쳤다거나 실수했다면 교훈 삼고 다시 가면 된다. 그것은 자아향상과 이리저리 치우치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지닐 수 있는 무기와도 같은 것이다. 명상과 진리탐구 생활은 좌우 양 날개와도 같은 것이다.



│근원에서 쉬는 일만 남았다│


소재해변을 지난다. 소재해변은 규모는 작지만, 아늑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소재해변 파라금이는 밀물이 들어오면 섬이 되고 썰물이 되면 육지가 된다.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다. 맑은 물, 그리고 병풍처럼 둘러싼 소나무 숲이 어우러지고 평일의 한가함이 더해져 우주가 나와 함께 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일찍이 어머니가 맑은 개울물을 보며 내게 하신 말이 있다.

"내가 처녀 땐디, (고향인 영광 근처에서) 햇빛에 반짝이며 졸졸졸 흐르는 샘물을 보쟎어, 그 햇빛에 졸졸 흐르는 샘물을 보고 있으면 햇빛이 아까워! 정말 햇빛이 아까워! 그 말이 절로 난당께"

어머니는 그 말을 하시며 행복해하셨었다.

오늘은 섬과, 바다와, 바닷물과, 소나무와, 소나무잎과, 소나무잎을 살랑거리는 맑은 바람과, 통째로 핀 해당화를 아까워하며 천천히 걸어보기로 한다.


서포리해수욕장은 약 30만 평에 달하는 넓은 백사장과 완만한 수심, 주변을 둘러싼 100년이 넘는 해송 숲이 어디 나무랄 데가 없이 넉넉하게 펼쳐진 곳이다. 무엇보다 캠핑과 산림욕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다. 이곳에 1인용 탠트를 친다. 소나무숲 사이에서 탠트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마냥 행복하다. 아직 안 와보신 분은 가족과 함께 꼭 와보시기를 추천한다. 서포리해수욕장 캠핑장은 덕적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해송숲이 너무 좋다.

이곳에서 1박 하고 내일 비조봉과 운주봉을 돌며 섬을 종주하기로 했다.


비조봉에서 바라본 덕적군도


해발 292m의 비조봉 정상에 오르면 덕적군도의 크고 작은 섬들이 흩뿌려진 덕적군도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정상에 있는 팔각정에서 조망을 보면 된다. 이곳은 일출과 일몰 명소이다.

비조봉은 수백 년 된 적송림의 울창한 숲 속을 따라 소나무향을 맡으며 산행을 할 수 있는 등산로이다. 제 멋대로 살고 있는 적송들을 감상하며 오르다 보면 1시간가량의 시간이 언제 갔는지 모른다. 감투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진 감투바위, 30m 높이의 암벽과 망재봉이 나를 맞이한다. 정상에 오르면 덕적도 주변 바다 위로 솟아 오른 크고 작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객군들에게 한국의 갈라파고스라고도 불리는 굴업도도 보인다.


비조봉을 지나 능선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해발 231m의 운주봉이다. 운주봉에서는 덕적도의 북쪽 해안으로 진리 이개마을을, 남서쪽으로 서포리해수욕장과 서포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진리항 도우선착장에 도착하니 1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다.

근처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아무 데나 앉아 믹스커피를 타 마신다. 더운물에 믹스커피는 도보하며 습관이 되어 으레 싸가지고 다닌다. 길꾼들은 1시간 걷다가 쉴만한 곳에 주저앉으면 그곳이 카페다. 오늘처럼 혼자가 아니라 길꾼들과 함께 하는 휴식시간은 그야말로 꿀휴식과 평등의 시간으로 펼쳐진다.

길 카페 앞에서 돈 많고 돈 없고, 어떤 직책이나 직위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상일은 흘러가는 물결이다. 하늘의 별들만큼이나 많은 개울들과 강들은 바다라는 하나로 만난다. 결국 이별은 없다. 세상을 살되 돈 벌고 직책을 가지고 사는 것 등은 역시 흘러가는 물결이다. 집착할 이유가 없다. 순간순간을 진실하게 살고 내 마음의 영성을 키우며 살면 그뿐이다. 자식이 인연이 되면 말없이 내 삶을 보여주면 그뿐. 그리고 이생의 인연들은 하나의 바다에서 만날 것이다.

나는 대자연의 자연미 감상을 하며 근원에서 쉬는 일만 남았다.


이전 01화도보명상(徒步冥想) 15 - 개발과 보전이라는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