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인적 끊긴 비 오는 한강
오늘은 당산에 있는 한국소방안전원에서 소방교육이 있었다. 직장에서 필요한 교육이다.
4시간을 마치고 당산역 근처에 있는 한강 선유도공원을 향했다. 당산역부터 선유도공원으로 해서 한강을 따라 목적지 구일역까지 3시간 20분 정도 거리이다.
행주좌와 어묵동정 (行住坐臥 語默動靜) - 일상생활과 수행의 시간이 따로 있으랴. 나는 바로 마음 내면을 열고 '원래 그대로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는 침묵의 실재'에 스윗치를 꽂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쉰다'.
나는 오랫동안 호흡, 신체부위 한 곳만 집중하며 여러 생각들을 관찰하는 명상기법을 해보았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나와 맞는 명상은 마하리쉬가 말한 자아탐구명상의 '그 속에서 쉰다'는 것이다. 상상으로 '고요함에 스위치를 꽂고 그 속에서 쉬기'를 하면 그야말로 '속통(速通)'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몸이 릴랙스 되며 알파파장 상태로 서서히 접근해 감을 느낀다.
가장 핵심 키는 '쉰다'는 것이다. 온갖 잡다한 생각들에게 '그 속에서 쉰다'는 것에 대해 물어보면 동의하거나 기쁘게 찬성한다. 생각들은 뇌에서 기록된 대로 자동으로 튀어나오거나, 오랜 기억들의 쌓임으로 잠재된 것들이 생각의 형식으로 역시 자동으로 떠오르니,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없는 현상인 것이다. 다시 말해 튀어나오는 생각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들도 '그 속에서 쉬고 싶어' 한다.
명상 = 그곳에서 쉼
이처럼 나를 편하게 하는 것은 없다. 부담이 없다. 게다가 고향과도 같은 근원, 본성(本性)에서 쉰다니!
아침에 나올 때 오락가락하던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쏟아지기 시작한다. 선유도공원을 마주 보고 낚시꾼 한 명이 우산을 쓰고 낚시를 하고 있다. 점점 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한다. 그 빗속에서도 자전거를 탄 이들이 하나 둘 지나간다.
비가 점점 거세진다. 우산을 썼음에도 허벅지까지 젖어 질퍽하다.
비가 오니 사람들 자취가 끊겼다. 한강가 도보길이 비었다. 공원의 벤치도 모두 비어 있다.
비어 있으면 뭐라도 채울 수 있다. 비어 있는 곳이라야 비로소 새로운 무엇인가로 인연이 이어진다.
비어 있기에 가능하다. '가득 차면' 운이 다한 것이다. 그러니 빈 의자는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우주는 텅- 비어 있다. 우주는 비어 있기에 파괴되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다.
또한 자기 계발분야의 한축을 이루는 '끌어당김'이라는 것은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전생업이 '끌어당김' 성공으로 가도록 가만 놔두지 않는다. 전생업을 비우고, 현생업을 비워야 '끌어당김'도 가능하다. 그러면서 나(我相)를 비워내야 '끌어당김'의 축복도 오는 것이다. 우주는 공짜가 없다. 우주 원리가 그렇다.
우기(雨期)가 온 것인가. 올해는 비다운 비가 오지 않았다. 강릉을 골라 집중적으로 가뭄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요즈음이다.
한강둑의 배관들이 열려 물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25년 9월 16일 현재 지구는 살아있다. 탄소과잉, 공해, 무지막지한 난개발 등에도 아직은 살아 있다. 그러나 스페이스 X CEO, 578조 세계최고 부자 일론머스크는 지구는 조만간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화성이주에 목숨을 건다. 나무 하나 없는 화성에서 살겠단다.
난 나무 있는 곳에서 산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그보다 나무 있는 곳에서 계속 살겠다는 내가 더 부자다. 그 돈 가지고 지구를 구하는데 쓰면 어떨까.
소설 『율리시스』는 하루 동안 더블린을 배경으로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 스티븐 데달루스, 몰리 블룸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그들의 내면세계를 깊숙이 파고든다. 이때 가장 중요한 기법이 바로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다. 이는 인물의 생각, 감정, 기억, 감각 등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필터링 없이, 논리적인 순서와 상관없이 그대로 서술하는 방식이다.
의식의 흐름 기법의 예를 보자. 작가는 작품 속에서 인물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레오폴드 블룸이 더블린 거리를 걷거나 일상적인 활동을 할 때 그의 머릿속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예를 들어, 블룸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고양이에게 우유를 줄 때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고양이. 고양이. 그래. 작은 그르렁거림. 고양이의 젖병. 고양이의 작은 혀. 맛있는 우유. 우유. 고양이. 고양이." (이러한 방식으로 그의 생각이 비약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보여준다.)
블룸이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그는 죽음에 대한 생각, 과거의 기억, 장례식에 온 사람들의 외모, 자신이 읽었던 신문 기사 등 온갖 잡다한 생각들을 동시에 한다. 그의 의식은 특정한 논리적 흐름 없이, 하나의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비약적으로 이동하며, 심지어는 농담이나 불필요한 정보까지도 포함된다. "그들은 죽었다. 죽은 자들. 죽은 자의 숨. (중략) 저 남자의 코가 이상하군. 아, 저 사람은 내가 예전에 보았던… 아, 그 신문에 나왔던…." 이러한 식으로 그의 생각은 예측 불가능하게 흘러간다.
몰리 블룸은 중얼거린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꽃을 가져다주었지 산 장미들을 그래 그가 내게 청혼했을 때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그리고 나는 그를 처음 만났던 것을 기억해..." 이 독백은 구두점 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몰리의 의식이 자유롭게 과거와 현재, 희망과 좌절을 넘나드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녀의 생각은 논리적 순서가 아닌, 감각적인 인상이나 감정적인 연상에 따라 흐른다.
내가 제임스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 사례를 여러 가지로 드는 것은 사람이 이러한 잡다한 생각에 얼마나 사로잡혀 있나 하는 것을 실감시키기 위해서다. 사람은 이 복잡한 세상을 살면서 '생각'의 노예로 산다.
1922년 출간 이후 T. S. 엘리엇, 에즈라 파운드 등 동시대의 선구적인 문인들의 극찬을 시작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율리시스』는 20세기 최고의 소설이자 모더니즘 문학의 가장 위대한 성취로 평가받게 되었다.
여러 언론사와 문학 단체에서 '20세기 최고의 영문 소설'을 선정할 때마다 『율리시스』는 거의 항상 1위 또는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예를 들어, 1998년 미국 랜덤하우스의 모던 라이브러리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문 소설' 목록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전 세계 후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소설이라는 장르의 역사를 바꾼 '문학적 혁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적 성과로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순수의식과의 합일을 지향하는 명상의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버그가 끼면 컴퓨터는 먹통이 된다. 이 소설의 많은 잡생각과 망상들은 버그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이 소설은 이러한 생각들에 휘둘리며 살 수밖에 없는 20세기 현대를 사는 인간들의 속내를 그대로 담아내어 보여준다. 또한 이 소설은 마구마구 떠오르는 뿌리 없이 구름처럼 떠도는 생각들이라는 것이 내 인생에서 얼마나 제 멋대로 이리저리 휘젓고 돌아다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동병상련의 사정이 통할 듯도 싶다. 복잡한 현대에서 오죽하면 저리 살 수밖에 없을까 싶기도 하다.
21세기 들어 고대와 중세에 거의 없던 병 - 조울증, 우울증 같은 정신분열적인 각종의 정신적 질환들이 현저히 많아지고 있다. 이 병들은 탈출구나 통로가 없어, 수 없는 생각들이 쌓이고 썩어 생긴 부산물들일런지도 모른다.
진아와 본성을 열어 자아성취, 자아완성을 목표로 하는 입장에서 보는 '율리시스의 의식의 흐름'의 생각들을 읽으면 명상 공부에 도움이 된다. 버그가 잔뜩 낀 컴퓨터(사람)를 청소(포맷)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로, 진지하게 들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내가 가장 오랫동안 근무하던 직장에 160여 개의 중소기업이 있었다. 나는 그들이 잘 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센터장의 역할을 했다.
경제가 어럽다는 것은 지금도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2023년까지 근무하던 빌딩의 2011년 4월 이후의 전입, 전출이 매년 20% 이상 더 늘었었다. 앞으로도 그런 통계가 더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 같다. 또한 앞으로도 흥해서 나가는 기업보다 망하거나 덩치를 줄이기 위한 기업들이 더 많아질 것 같다.
어느 회사는 하루아침에 사장과 사원이 보이지 않는 곳도 있었다. 전화, 책상과 케비넷 등을 그대로 놓아둔 채 오리무중인 곳도 보았다. 하루아침에 경매로 주인이 바뀌는 것도 목격했다.
사원은 사원대로, 사장은 사장대로 이래저래 잠 못 든다. 먹고사는 것이 이리 어려우니, 그 밖의 걱정과 근심을 합하면 사람들의 머리는 갖가지 생각들로 쉴 틈이 없다. 그러니 어찌 떠오르는 잡다한 생각과 생각들을 비우고 쉽게 명상에 잠길 수가 있을 것인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든 가장들과,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마음의 쉼'이 있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