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20

by 전영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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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겨울, 수유리 한신대 대학원 세미나실. 목사 고시의 마지막 관문인 면접이 진행 중이었다.

면접관들은 민중신학의 거두들이었고, 그들은 요한의 명석함을 알면서도 그의 보수적인 색채를 경계하고 있었다.

안병무 교수의 제자 김명한 교수가 그에게 물었다.


- 장 전도사, 자네는 안병무 선생의 '오클로스'를 어떻게 정의하나? 지금 이 시대의 고통받는 민중을 위해 신학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요한은 잠시 눈을 감았다. 요셉의 죽음과 철수의 차가운 뒷모습이 스쳤다. 그는 천천히 입을 뗐다.

- 오클로스는 억압받는 민중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억압하는 것은 독재 정권의 구둣발만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혼을 볼모로 잡고 혁명의 불꽃으로 밀어 넣는 무신론적 이념 또한 거대한 구조적 악입니다. 저는 민중을 사상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모든 세력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참된 민중신학이라 믿습니다.

면접장 안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 젊은 교수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 그 말은 지금 우리 교단이 지향하는 민중 해방 운동을 부정하는 것인가? 승공(勝共)이 신학의 자리에 올 수 있다고 보는 건가?

-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려는 것입니다. 승공(勝共)은 단순히 이념의 승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신론이라는 영적 질병으로부터 민중을 구출하는 구공(救共)의 전 단계입니다. 민중의 손에 화염병 대신 성경을 쥐여주는 것, 그것이 제가 가려는 좁은 문입니다.

교수들은 요한의 논리가 위험할 정도로 아슬아슬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가 내뱉는 '구공(救共)'이라는 표현의 독창성과 진정성에 압도당했다. 요한은 그렇게 신학적 파격을 남긴 채 면접장을 나왔다.


1981년, 종로의 한 대형 교회, 파이프오르간의 장엄한 선율이 울려 퍼졌다. 목사 안수식의 절정, 요한이 하얀 가운을 입고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선배 목사들이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했다. 성령의 임재를 구하는 거룩한 순간이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장요한을 그리스도의 거룩한 종으로 임직 하노라....

요한의 어깨 위로 붉은색 스톨이 걸쳐졌다. 10년의 인고 끝에 얻은 '목사'라는 칭호. 그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 눈물은 신의 길을 가겠다는 다짐이었다.


당회장과의 식사시간이 되었다. 권실장이 배석했다.

당회장이 말했다.

- 구면이니 새삼 인사는 필요 없을 게요. 장 목사, 우리 한번 어지러운 조국에 보탬이 되어 봅시다.

권실장도 축하인사를 했다.

- 축하합니다. 이 모두 나라를 위한 일 아니겠소? 잘해봅시다.

- 좋습니다. 미력이나마 힘을 다하겠습니다.

당회장과는 이미 장 목사가 한 일 간에 해야 할 일에 대해 상세하게 말을 끝낸 후였다.

- 정보와 일본 조직과의 협조,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돕겠소.

권실장이 말했다.

당 회장이 건배 제의를 했다.


1981년 여름, 한신대학교 인근 교회 강당.

목사 안수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요한이 '기독교와 국가의 위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열었다. 강당에는 수유리 시절의 후배들과 민중신학을 따르는 학생들이 가득 찼다. 요한은 자신의 '승공 신학'을 설파했다.

"무신론적 이념은 민중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먼저 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요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당 뒤편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장요한! 당신은 목사가 아니라 남산의 끄나풀이 된 것 아닌가? 요셉이 어떻게 죽었는지 잊었는가?!"

순식간에 강당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누군가 던진 음료수 병이 요한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붉은 피가 두어 방울 하얀 셔츠 깃 위로 흘러내렸다. 학생들은 그를 향해 "배신자!", "어용 목사!"저주를 퍼부었다.

요한은 피를 닦지도 않은 채 강단 위에 꼿꼿이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돌들을 보며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 그래, 나를 돌로 쳐라. 그것이 내가 너희를 지키기 위해 뒤집어쓴 가시관이다.

강당 밖에는 권 실장이 보낸 검은색 그랜저가 시동을 건 채 기다리고 있었다. 요한은 돌팔매질 속을 유유히 걸어 나와 그 차에 몸을 실었다. 그날 이후, 수유리 청년 장요한은 죽었고, 냉혹한 승공의 전사만이 남게 되었다.


장요한은 신주쿠의 화려한 야경을 뒤로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네온사인의 잔상이 망막에 붉게 남았다. 그 붉은빛은 시간을 거슬러 1970년대 후반, 최루탄 가루가 눈 내리듯 쌓이던 수유리 한국신학대학의 교정이 떠올랐다.

그곳의 뜨거웠던 청년 장요한은 구공(救共)의 전략가가 되어 있었고 , 이제는 주적이 된 강철수가 있었다.


1983년 11월, 중앙정보부(안기부) 권 실장의 비밀 집무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방 안, 권 실장은 요한이 제출한 시모노세키 보고서를 훑어보며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요한은 칠판 앞에 서서 그가 정립한 신학적 체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 실장님, 단순히 공산주의를 이기는 것(승공)은 물리적인 제압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잡초의 머리만 자르는 격이지요. 승공(勝共)은 수단이고, 구공(救共)은 목적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사상적 악령에 사로잡힌 '환자'들입니다. 무신론이라는 질병에서 그들을 건져내는 것, 즉 공산주의자를 구원(救共)하여 하나님의 질서 아래 두는 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우리가 저들을 죽이면 순교자가 되지만, 저들의 논리를 신학으로 깨부수고 전향시키면 저들은 우리의 가장 강력한 우군이 됩니다. 안기부의 총은 몸을 잡지만, 나의 구공신학은 저들의 뇌를 잡을 것입니다.


권 실장은 흥미롭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 장 목사, 당신은 가끔 우리 요원들보다 더 무섭군.



요한은 권실장과의 미팅을 끝내고 그의 사무실을 빠져나와 일본으로 향했다.

캠퍼스에서 강철수와의 마지막 토론이 떠올랐다.

그 당시 한신대는 안병무의 '오클로스'와 서남동의 '한(恨)'의 신학이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던 곳이었다.

성경책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들먹이던 강철수가 또다시 입을 뗐다. 그의 눈은 혁명가의 그것처럼 번득였다.


- 요한, 자네는 아직도 하늘만 보나? 예수가 골고다에서 못 박힌 건 영혼 구원 때문이 아니야. 당시 로마라는 제국주의와 바리새인이라는 기득권 체제에 맞선 정치적 처형이었지. 안병무 선생이 말한 '오클로스'를 보게. 그들은 억압받고 소외되었으나 역사의 주체인 민중들이야. 그들은 죄인이 아니라 배제된 자들이었을 뿐이지. 지금 평화시장에서 피를 토하는 여공들이 바로 오늘의 예수란 말일세!


철수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는 해방신학의 논리를 빌려, 기독교가 민중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혁명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신이 가난한 자들의 편이라면, 신학은 마땅히 구조적 악을 부수는 무기가 되어야 해.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죄악을 무너뜨리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임하게 하는 실천이야!


요한은 철수의 뜨거운 열정을 인정하면서도, 그 이면에 숨은 신앙보다 차가운 이성이 앞서는 것을 경계했다. 유물론의 공산주의자들이 이 이성의 신학을 역이용할 수도 있다. 이성이 앞서면 영성이 막힐 수가 있다. 요한에게 신은 역사의 주관자였지, 혁명의 수단이 아니었다.


- 철수, 그대의 열정은 귀해. 우리가 신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구원받기 위함이지. 구원받으면 해방은 선물처럼 오는 거야. 하지만 철수가 말하는 해방 속에 '신'은 어디 있는가를 언제나 확인해야 하네. 마르크스는 신을 아편이라 불렀어. 신이 빠진 혁명은 결국 인간의 탐욕과 증오로 가득 찬 또 다른 지옥을 만들 뿐이야. 스탈린과 마오쩌둥을 보게. 그들이 민중을 위한다고 휘두른 칼에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나?

요한이 다시 한번 힘을 주어 말했다.


- 기독교의 본질은 인간의 죄성을 인정하고 신의 절대 주권 아래 질서를 찾는 것이네. 공산주의는 인간을 신의 자리에 앉히려는 오만이야. 나는 '승공(勝共)'이야말로 이 나라와 교회를 지키는 진정한 신학적 방패라고 믿네. 승공으로 시작해서 구공(救共)으로 무신론 공산주의자들까지도 구원해야 해. 영혼이 죽은 빵이 민중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두 사람의 토론은 밤늦도록 이어졌다. 철수는 민중의 '한'을 풀기 위해 기꺼이 현장의 깃발을 들 수 있어야 한다고 했고, 요한은 그 깃발이 적그리스도의 도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맞섰다.


- 요한, 자네는 결국 기득권의 신학자로 남겠군. 가난한 자들의 비명보다 국가의 안녕이 더 중요한가?" 철수가 차갑게 물었다.


- 철수, 자네는 민중과 해방의 논리로 이념의 노예가 될 위험에 빠질 수 있어. 신학을 논하기 전에 우리는 신과 예수를 믿는 신앙인이야. 민중신학은 민중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먼저 보이는 현실을 중시하다 보면 주객이 전도될 수가 있다는 말일쎄. 정작 그들의 영혼이 믿음으로부터 파괴될 수가 있어.

요한이 답했다.


그날 밤, 도서관을 나오며 철수는 요한에게 짧은 인사를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것이 요한이 본 '학우 강철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얼마 후 철수는 종적을 감췄고, 요한은 그 후 그가 북한과 연계된 조총련의 핵심 요원이었다는 안기부의 보고서를 읽으며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설득과 논리로 공산주의자들을 유신론자로 전향시킬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나도 불기능 하다는 것을 안다.

공산주의는 이미 세계 삼분의 일을 점령했다. 그들은 신은 죽었으며 신의 자리에 인간이 앉아 공산주의 국가라는 유토피아를 건설해야 한다는 명확한 목표로 전진하고 있다. 점점 한국은 자생적 공산주의자들로 조직화되어가고 있다.

신의 힘이 필요하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은 신이 할 수 있다. 나는 그 신을 믿는다.


요한은 손 안의 적수정을 꽉 쥐었다. 한신대 교정에서 나누었던 그 뜨거웠던 대화는 이제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는 실전이 되었다.

철수는 민중과 해방신학을 공산주의 혁명의 도구로 썼고, 요한은 '부산-시모노세키 연락선'을 흐르는 사상의 밀항로를 차단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전사가, 아니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들은 같은 성경을 읽었지만, 한 명은 그 성경으로 붉은 불꽃을 피웠고, 다른 한 명은 그 불꽃을 끄기 위해 차가운 강철의 성벽을 쌓았다.


- 철수, 우리는 그때 이미 서로의 무덤을 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군.

요한은 낮게 읊조리며 권 실장에게 보낼 최종 보고서를 점검하기 시작하였다. 신주쿠의 달빛은 유난히도 창백하게 빛나고 있었다.

(계속)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