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를 졸업하고 한신대 대학원을 가기 전 군대에서 1975년의 겨울은 장요한의 신학적 사춘기를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종결짓는 한 해였다. 강원도 철원 인근의 중부전선 GP에서 겪은 그 밤의 참상은, 그가 수유리에서 배운 '해방'의 낭만이 얼마나 허약한 모래성이었는지를 피의 언어로 증명한 사건이었다.
1975년 11월, 유신 정권의 긴급조치가 칼날처럼 예리하던 시기였다. 상병 장요한은 소등 후 막사의 희미한 취침등 아래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다. 당시 그의 머릿속은 안병무 교수의 '오클로스(민중)'와 서남동 교수의 '한(恨)'의 신학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이 신의 뜻이라면, 저 휴전선 너머의 이념도 결국 형제애의 다른 이름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위험한 호기심이 그를 괴롭히던 시절이었다. 그는 총구 끝에 서 있는 북측 군인들 또한 구원받아야 할 민중이라 믿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 밤, 요한의 소대는 야간 매복 근무 중이었다. 눈이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혹한 속에서 정막을 깬 것은 금속성 마찰음이었다. 하얀 위장복을 입은 3명의 무장공비가 요한의 매복 지점으로 접근했다.
짧고 강렬한 총성이 계곡을 울렸다. 요한의 바로 옆에서 졸음을 쫓기 위해 고향집 어머니 이야기를 하던 '박 일병'이 단 한 발에 가슴을 관통당했다. 박 일병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온, 글자 그대로 선량하고 가난한 민중이었다.
요한은 쓰러진 박 일병의 상처를 움켜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뜨거운 선혈이 쏟아졌다. 박 일병은 혁명도, 해방도 외치지 않았다. 그저 "엄마, 추워요..."라는 비명을 남기고 요한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교전 끝에 사살된 공비들의 배낭 속에서 나온 것은 '해방의 논리'가 아니라, 남측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기 위한 정교한 폭약과 살상용 독침, 그리고 신(神)을 아편이라 규정한 유물론 학습서였다.
요한은 사살된 적의 눈을 보았다. 거기엔 자비도, 형제애도 없었다. 오직 기계적인 증오와 체제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만이 박제되어 있었다. "저들은 민중을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다. 민중의 생명을 제물로 삼아 '무신론의 지옥'을 건설하러 온 사탄의 군대다."
사건 이후 요한은 더 이상 수유리의 낭만적 신학자로 남을 수 없었다. 그는 막사 뒷산에 홀로 앉아 박 일병의 피가 묻은 성경책을 펼쳤다. 그리고 로마서 13장을 읽으며 통곡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요한은 이 구절을 새롭게 해석했다. 국가라는 울타리가 무너지는 순간, 예수가 사랑한 가난한 민중들은 무신론자들의 총칼 앞에 가장 먼저 희생된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긴 것이다. 그에게 승공(勝共)은 단순한 정치 구호가 아니라, '신의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거룩한 전쟁'이 되었다.
단순히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저 악령과 같은 무신론 이념을 박멸하고 그 속에 갇힌 영혼들을 구출해야 한다는 '구공(救共)'의 논리 또한 이 피의 현장에서 싹텄다.
요한에게 그 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낭만의 죽음'이자 '전사의 탄생'이었다.
훗날 그가 권 실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국가를 지키는 것이 곧 교회를 지키는 것"이라 믿게 된 것은, 그날 밤 철원 벌판에서 흘린 동료의 피에 대한 그만의 뒤틀린 복수이자 사명감이었다.
- 주여, 저 너머 무신론의 깃발이 이 땅을 덮는다면, 당신이 말한 그 가난한 자들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무질서한 해방은 결국 더 큰 지옥을 낳을 뿐입니다. 신이 없는 평등은 인간을 가축으로 만듭니다.
그는 그날 밤, 낡은 군용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국가 안보가 무너진 곳에 신의 섭리는 머물 수 없다. 승공(勝共)은 단순히 정권의 구호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기 위한 영적 방파제다."
이것은 그가 권 실장을 만나 '질서의 수호자'로 거듭나게 되는 사상적 모태가 되었다.
그에게 군대는 단순한 병역의 의무가 아니라, '강철 같은 질서가 곧 사랑'임을 깨달은 시나이산의 떨기나무 불꽃같은 현장이었다.
그가 깨닫고 사상적 체계를 세운 구공신학(救共神學)은 그렇게 출발되었다.
하나의 노트에서 시작된 질문은 최은에게는 '사랑'으로, 철수에게는 '혁명'으로, 그리고 요한 본인에게는 '질서'라는 열매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세 갈래의 길은 이제 80년대라는 거대한 폭풍 속에서 서로를 베고 찌르는 비극으로 치닫게 될 것이었다.
요한은 신주쿠의 달빛 아래서 이 기억을 반추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같은 스승 아래서 같은 단어를 배웠지만, 한 명은 그 단어로 방패를 만들었고 다른 한 명은 칼을 갈았다.
3)
1979년 10월 27일 새벽, 수유리 캠퍼스의 공기는 차갑다 못해 날카로웠다. 신학대학원 기숙사 휴게실의 낡은 TV에서는 검은 넥타이를 맨 아나운서가 침통한 목소리로 대통령의 서거를 발표하고 있었다.
요한은 떨리는 손으로 라디오 다이얼을 돌렸다. 계엄령 선포. 거리에는 탱크가 깔렸고, 18년간 철옹성 같았던 권력의 탑이 단 한 발의 총성으로 무너져 내렸다. 동료 학생들은 술렁였다. 누군가는 해방을 말했고, 누군가는 더 큰 공포를 예견했다.
요한은 홀로 텅 빈 대강당으로 향했다. 어두운 강단 앞에 무릎을 꿇은 그의 머릿속에 번개 같은 깨달음이 스쳤다.
'절대적이라 믿었던 지상의 권력도 결국 인간의 심장 박동 하나에 의지하고 있었구나.'
그는 바닥에 이마를 대고 나직이 읊조렸다.
"주여, 이제야 보이나이다. 인간의 권력은 유한하나, 당신의 질서는 영원하나이다. 흔들리는 인간의 이념에 내 생을 걸지 않겠나이다. 무너지는 제국 위에 서지 않고, 오직 당신의 견고한 법 위에 서겠나이다."
그날 요한은 '민중'이라는 유동적인 파도 대신, '질서'라는 차가운 바석 위에 자신의 성을 쌓기로 맹세했다. 그것이 그가 권 실장의 손을 잡게 된 사상적 단초가 되었다.
1980년 봄, '서울의 봄'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 수유리 캠퍼스. 요한은 한신대 대학원 코스를 거치고 있었다.
정기 채플이 끝나자마자 학생회장이 강단에 올라가 선언문을 낭독했다. 순식간에 예배당은 투쟁의 현장으로 변했다. 요한은 손바닥만 한 작은 신약 성경을 품에 안았고, 후배 민요셉은 미리 준비한 붉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맸다.
학교 정문을 나서는 순간, 대기하던 '백골단'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최루탄 SY-44탄이 바닥에서 회전하며 독한 연기를 뿜어냈다. 요한은 쓰러진 여학생을 일으켜 세우려다 형사의 구둣발에 차였다.
그 순간, 요셉이 화염병 하나를 경찰차 앞에 던지며 길을 열었다.
- 요한 형! 빨리 애들 데리고 뒤쪽으로 빠져요!
요셉의 눈은 이미 평범한 신학생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두려움보다 분노가 앞선 전사의 모습이었다.
요한은 학생들을 이끌고 캠퍼스 구석의 작은 기도실로 숨어들었다. 잠시 후 피범벅이 된 요셉이 들어왔다. 요한은 떨리는 손으로 요셉의 상처를 닦아주었다.
- 요셉, 어디 다친 곳은 없니?
- 괜챤아요.
요셉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1980년 봄, 수유리 캠퍼스는 유신 이후 가장 치열한 시위의 중심지였다. 당시 요한에게는 친동생처럼 아끼던 신학과 1학년 후배 민요셉이 있었다. 요셉은 요한만큼이나 신앙이 깊고 심성이 고왔으나, 강철수의 뜨거운 해방 서사에 매료되어 시위의 최전방에 서기 시작했다.
5월의 어느 날, 경찰과의 격렬한 대치 상황에서 민요셉은 학생들에게 '결사 항전'을 외치며 전진을 독려했다. 철수의 열정적인 연설에 감화된 요셉은 맨몸으로 전경의 방패 벽을 향해 뛰어들었다.
요셉은 전경의 진압봉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으나, 대열은 멈추지 않았다. 지도부는 요셉의 부상을 '투쟁의 동력'으로 삼아 시위를 더 격렬하게 밀어붙였다. 결국 요셉은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고 요한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요한은 큰 충격을 받았다. 요셉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철수가 "한 명의 희생이 민중을 깨운다"며 차갑게 몰아세우던 그 눈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강철수는 사라지고 없었으나 철수의 과격한 혁명론이 또 한 사람의 희생자를 만들게 된 것이다. 우리는 전사가 아니다. 우리는 신앙인이다. '나'와 '너'라는 적 이전에 '너'까지도 구원에 이르게 하자는 신앙인인 것이다.
요한에게 투쟁과 혁명으로 현실을 바꾸자는 것은 구원과 해방이 아니라 '이념이 신앙과 인간을 집어삼킨 괴물'로 보였다.
요셉의 장례식이 끝난 뒤, 수유리 공동묘지 근처 식당으로 권 실장이 요한을 찾아왔다. 권 실장은 요한의 상처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 장 전도사, 동생의 죽음이 억울하지 않나? 자네 동생을 죽인 건 최루탄이 아니야. 뒤에서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정작 자신은 살아남아 사상을 파는 저 유령들이지.
권 실장은 요한에게 한 권의 파일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강철수가 조총련을 통해 북한과 접촉해 온 기록과, 희생자들의 죽음을 어떻게 선전 도구로 활용하려 했는지에 대한 감청 기록이 담겨 있었다.
요한은 강철수의 이력에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았다. 권 실장은 요한에게 '복수'가 아닌 '질서'를 제안했다.
'하나님이 세운 이 나라를 저 무신론의 불길로부터 지키는 것, 그것이 죽은 요셉에 대한 진짜 속죄가 아니겠나?'라는 논리였다.
요한은 요셉을 지키지 못했다는 부채감과, 철수가 상징하는 민중신학의 급진성, 그리고 철수의 정체에 대해 충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권 실장은 요한에게 '절대적 질서의 수호자'라는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그의 상실감을 메워주었다.
그날 이후 요한은 성경책갈피에 안기부의 암호를 숨기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를 '더러운 일을 대신하는 방파제'라고 믿기로 했다.
요한은 생각했다.
누군가는 오물을 뒤집어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요셉 같은 아이들이 또다시 저 붉은 불꽃에 타 죽을 것이다. 그리고 신주쿠에서 요한이 강철수와 조총련 조직들을 상대해야 한다. 철수는 자신의 소중한 것을 앗아갈 유령과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요셉처럼 최은이 휘말리게 된다면... 어찌할 것인 가.
요한은 지금도 품 안에 요셉이 쓰던 작은 손때 묻은 신약성경을 지니고 있다. 권 실장의 보고서에 사인을 할 때마다 그는 그 성경을 만지며 자신의 결단이 '하나님의 공의'라고 스스로를 최면을 건다.
요한에게 '빨강'은 요셉이 흘린 피이자, 그 피를 보고도 멈추지 않았던 철수의 붉은 깃발이다. 그래서 그는 그 빨강을 지우기 위해 차가운 짙은 청색과도 같은 공권력에 의한 질서의 세계와 손을 잡아야 한다라고 판단하였다.
국가는 존립해야 한다. 그래야 신앙도, 이웃도, 사랑하는 사람도 지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