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명상(徒步冥想) 25 - 동해안의 끝 저너머까지,

사진 : 더 갈 수 없는 땅, 구선봉과 금강산 / 도보명상 후편 끝

by 전영칠

해파랑길 49~ 50


코스 : 거진항 - 김일성 별장 - 화진포 - 대진항 -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 명파해변 입구 - 제진검문소 - 통일전망대

거리 : 18km



│짓 푸른 동해를 보며 걷는 길


해파랑길은 동해안을 따라 걷는 대한민국 최장 거리의 도보 여행길이다. 총 구간 길이가 약 750km로,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 부산, 울산, 경주, 포항, 영덕, 울진, 삼척, 동해, 강릉, 양양, 속초, 고성 등 동해안의 해변, 숲, 마을을 연결하는 총 50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해파랑이라는 단어는 '떠오르는 해'를 뜻하는 '해'와 푸른 바다색인 '파랑', 그리고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을 조합하여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해파랑길 49~ 50코스는 거진항에서 시작해 화진포, 대진항을 거쳐 마지막 구간인 통일전망대에서 북한 땅 구선봉과 금강산을 보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일찍이 20대 중반에 부산에서부터 강릉까지 가보았으니 전구간 중 이번 49~50 코스만 남은 샘이다.


거진항에서 명태축제가 열리지만, 현재 동해안에서는 명태가 거의 잡히지 않아 축제는 명태잡이의 본고장이었던 과거를 기념하는 의미가 크다. 현재 국내 소비되는 명태의 95% 이상이 러시아산 수입 명태이다.


거진항을 포함한 강원도 고성군은 한때 국내 명태 어획량의 60~70%를 차지했던 명태잡이의 본고장이었다. 거진항은 추운 겨울 명태를 잡는 어선 수백 척이 모여들었던 '명태 황금어장'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명태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하고, 1990년대 후반에는 거의 씨가 마르다시피 했다. 현재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수온 상승, 남획 등으로 인해 동해안에서 자연산 명태는 거의 잡히지 않는다. 2000년대 이후로는 사실상 어로가 중단되었으며, 정부는 명태 자원 회복을 위해 2019년부터 명태 포획을 전면 금지하고 명태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거진항에서 매년 열리는 명태축제(고성 통일명태축제)는 러시아산 명태로 대체되어 명태를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과거 명태잡이의 본고장이었던 것을 추억하는 행사가 되었다. 지금도 매년 10월에 10여만 명이 거진항에서 명태축제를 즐기고 있다.


화진포 지역에는 이승만, 이기붕, 김일성 별장이 있다.

화진포는 둘레 16km에 달하는 거대한 석호이다. 주위에 소나무숲과 기암괴석, 철새와 해당화가 장관을 이룬다. 특히 호수에 비친 소나무숲의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최북단 동해안에 접해 있는 화진포에서는 매년 새해에 남과 북이 하나됨을 기원하며, 해맞이 축제를 개최한다.



186785154BE3BA537E.jpg 화진포 앞바다 금구도


화진포 앞바다에는 작은 섬, 금구도(金龜島)가 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수중릉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고성군이 이에 대한 조사를 추진한 바 있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고성군은 그야말로 '대박'이다.

금구도가 광개토대왕릉이라는 주장은 2005년경 지역 문화 연구 모임인 '고성문화포럼'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주장의 근거는 특정 '고구려 연대기'라는 문헌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고 알려졌다.


광개토대왕 3년(서기 394년): 화진포의 거북섬(금구도)에 왕릉 축조를 시작했다.

광개토대왕 18년: 왕이 직접 화진포의 능 축조 현장을 방문했다.

장수왕 2년(서기 414년): 광개토대왕의 시신을 거북섬에 안장했다.

또한, 금구도에는 실제로 인공적으로 쌓은 것으로 보이는 길이 60m, 높이 약 2m의 석벽 흔적과 주춧돌, 기와 조각 등이 남아있어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러한 주장이 제기되자 고성군은 지역 관광 활성화와 역사적 가치 규명을 위해 관심을 보였다. 화진포해양박물관 관장 등이 중심이 되어 재조사를 추진하고, 고성군 차원에서도 강원도에 정밀 탐사를 건의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주장의 핵심 근거인 '고구려 연대기'라는 문헌의 실체와 신뢰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정사(正史)에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은 내용이다. 그리고 현재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는 장군총이 광개토대왕릉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며, 이를 뒤집을 만한 명확한 고고학적, 문헌적 증거가 부족하다.

결론적으로, 고성군이 화진포 금구도의 광개토대왕릉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조사를 추진한 것은 사실이나, 현재까지 그 주장을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금구도는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하나의 설'로 남아있다.


화진포는 내게는 좀 색다른 느낌을 주는 곳이다. 화진포 해변으로 들어가는 쪽으로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 즉 기수역(汽水域)이 있다. 동해안, 서해안을 막론하고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은 숭어가 매우 좋아하는 곳이다. 봄과 가을에 어부들이 이곳에서 숭어를 잡는다.

기수역은 염분 농도가 민물과 바닷물의 중간 정도인 곳이고, 수온변화가 급격하지 않은 곳이다. 그리고 강에서 내려온 유기물과 플랑크톤이 풍부하게 섞이는 지역이다. 숭어는 계절에 따라 서식지를 이동하는 회유성 어종으로, 산란을 하거나 겨울을 나기 위해 깊은 바다로 나가기 전이나, 또는 성장한 후 민물에 가까운 곳으로 들어올 때 기수역을 중요한 이동 통로로 이용한다.

기수역은 개울과 강의 최종 목적지인 바다를 만나는 곳이다. 바다를 만나기 위해 강은 수백 , 수천 킬로 미터를 거쳐야 한다. 원래 강물이 흐르고 있는 강가는 기가 흩어지기 쉬운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다르다. 오히려 이곳 바다 방향 기수역 모래 언덕이 내게는 최고의 명상터이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지극히 평안한 기운이 느껴진다. 내가 느낀 이러한 평화로운 평안함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전국에 몇 개 되지 않는다. 그중 한 곳이 이곳이다.

가만히 앉아 강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며 명상을 하고 있으면 평화로운 기운이 이곳에서 느껴진다. 나는 이곳만 봄이나 가을에 10여 차례 이상을 방문하였다.

도보명상은 내게 이러한 명상 명당터를 발견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더 가고 싶다, 원산을 지나 나진까지


대진항을 지난다.

49코스의 종점이자, 50코스의 시점인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통일안보공원)에서 통일전망대로 가기 위한 출입 신고와 안보교육을 10여분 받는다. 더 갈 수 없는 곳, 멈춰야 할 곳이 운명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안보교육은 영상 시청으로 이루어진다. 영상의 주 내용은 '이제부터는 민통선(민간인 출입통제선) 구간이므로 가고 싶어도 더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망향탑 IMG_20230623_111656.jpg 망향탑


2018년 당시의 남북관계는 그지없이 좋았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핵심 국정 목표로 삼고 대북 정책을 추진했다. 2018년 한 해 동안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에 총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고, 남북관계의 전면적 발전, 군사적 긴장 완화 및 상호 불가침 합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였다. 그리고 비핵화 실질 조치(동창리, 영변 핵시설 폐기 용의 표명), JSA를 비무장화하였고, 9.19 군사합의로 지상,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으며, 비무장지대 내 시범적 GP(감시초소) 철수, 공동 유해 발굴 등 실질적인 군사적 신뢰 구축 조치들을 시행하였다. 2018년 8월, 3년 만에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개최되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선수단이 개회식에 공동 입장하고, 여자 아이스하키 종목에서는 단일팀(코리아팀)을 구성하여 참가하였고, 평양, 서울 등에서 남북 예술단의 교환 공연이 진행되었다.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 연결 및 현대화를 위한 공동 조사 및 연내 착공식 개최에 합의했다.

당시는 당장이라도 통일될 것 같은 '평화 무드'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

당시 이경일 고성군 군수는 '남북통일을 위한 관광벨트를 조성'하기 위해 2018년 12월에 68억 원을 들여 지상 3층 높이 34m의 DMZ를 표상하는 D자 형상의 고성통일전망타워를 새로 지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상호주의 원칙과 박근혜정부의 개성공단 철수, 윤석열 정부의 반공 정책으로 남북관계는 속절없이 냉랭해졌다.


평화 무드는 간 곳 없고 다시 냉전 상태가 된 형국에서 고성통일전망타워를 오른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 - 북녘땅을 바라본다. 낙타등을 닮았다는 구선봉이 눈앞에 보이고 그 뒤로 금강산의 일출봉, 월출봉, 육선봉, 옥녀봉이 아련하다.

실향민들을 위해지어 놓은 '어머니 품 안으로 안기어가는 이 길은 고향의 길, 불망의 길' 망향탑 아래, 제단이 덩그러니 보인다. 저 제단은 고향이 눈에 보여도 갈 수 없는 그들에게 얼마나 한 서린 곳일 것인가. 부모 형제를 보지 못한 지 75년째!

아래의 시를 1천만 이산가족, 돌아가신 남북의 실향민들께 바친다.



목욕재계하고 아이와 함께

망향제(望鄕祭)에 섰다

작년처럼 싸아한 바람이 일었고

올해는 아이에게도 향을 사르게 할 참이었다

이번에도 바람은 구선봉(九仙峰) 앞 푸른 바다 근처로

향을 실어 나를 것이다

아이에게도 원수를 심어줘야 하는 것일까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헤어짐의 막다른 길목

번득이는 K2와 아카보 때문만은 아니었다

섬찟한 대화

반복되는 답변의 판문점과

동족 75년의 기이(奇異)한 만남

아이야, 우리는 원래 원수가 아니었단다

한 핏줄, 배달의 누이, 형제,

손자였단다

나는 놓으면 그대로 멀어질 것 같아

아이의 손을 꼬옥 쥐었다

향불 피움에 낯선 까닭일까

무리의 소리 없는 목놓음

그 무게 때문일까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나는 그만 동강 난 반도(半島) 앞에

무릎 꿇는다

끊어진 갈비뼈 그 패인 곳,

아이에게 잡아보라 한다

이처럼 깊고 험한 골짜기 155마일

세상 어디에 다시 있을까

이처럼 길게 시린 가슴 서로 겨눈 채

모로 누운 자 어디에 다시 있을까

그러나

천형(天刑)의 철사 넝쿨 지뢰밭 비빔으로 감겨 있어도

반도의 억세디 억센

손아귀의 힘살과

불끈거려 숨 쉬는 긴긴 인내와

역사(歷史),

그 맥박의 울렁거림을

나는 아이에게 가르쳐야 한다

아이에게 누누이 들려주어야 한다


(전영칠 : <실향민(失鄕民) 일기> 전문)






* 동해안의 끝 저너머까지로 도보명상 후편을 마무리합니다.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