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마태복음 28장 20절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약속하고 있다. 이는 비록 육신으로는 함께하지 못하지만, 영적으로 항상 함께하겠다는 의미이다.
시편 23편 4절에서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라고 고백한다.
불교에서는 인격적인 '신'의 개념은 다르지만, 모든 존재 안에 내재된 보편적인 깨달음의 가능성, 즉 불성(佛性)을 이야기한다. 이는 "모든 중생은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사상으로, 부처의 지혜와 자비가 본래부터 우리 안에 존재하지만 번뇌와 무명에 가려져 보지 못할 뿐이라는 가르침으로 이어진다.
또한, 반야심경에 나오는 '공(空)' 사상은 세상의 모든 현상이 실체가 없으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이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된 우주적 생명력을 깨닫게 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진리가 항상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힌두교의 '브라만(Brahman)' 사상 역시 우주의 근원적인 실재가 모든 것에 내재해 있다는 범신론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는 '신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우리 자신도 그 일부'라는 의미이며, 우리가 일상에서 신성을 발견하지 못할 뿐이라는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
"신은 항상 너와 함께 한다, 단지 네가 보지 못할 뿐이다"라는 말은 어느 한 인물의 명언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유한한 인식을 넘어 존재하는 신성(神性) 혹은 진리의 보편적 임재를 강조하는 여러 종교와 영적 가르침의 정수를 담고 있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의 깊은 실재를 통찰하라는 영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는 갈 곳 없는 아기들의 마지막 보루이자,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는 2009년 12월, 이종락 담임목사에 의해 국내 최초로 설치되었다. 추운 겨울, 교회의 담벼락에 작고 따뜻한 공간을 마련하여 위기 영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설립자인 이종락 목사는 친아들이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어 평소에도 장애 아동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2007년경, 그는 한 아기가 새벽에 교회 대문 앞에 놓여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차가운 길바닥에 유기되어 저체온증 등으로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최소한 아기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절감했다. 버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 생명만이라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체코의 베이비박스 사례를 본보기 삼아 국내 최초의 베이비박스를 만들게 된 것이다.
베이비박스는 영아 유기를 조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길거리에 버려져 사망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아기들의 고귀한 생명을 구하기 위한 최후의 안전장치로 만들어진 것이다.
베이비박스의 운영 시스템은 아기의 안전과 부모와의 상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부모가 베이비박스의 문을 열고 아기를 눕히면, 교회 내부에 설치된 벨이 울린다. 그러면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즉시 나와 아기를 안전한 내부로 옮겨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따뜻하게 보살핀다.
직원은 아기를 두고 가는 부모를 만나기 위해 바로 밖으로 나간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는 멀리 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고 있다. 교회는 이 부모와 상담을 진행하며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도록 설득하고, 필요한 경제적·정서적 지원을 약속하며 마음을 돌릴 기회를 제공한다.
상담을 통해 마음을 바꾼 부모는 아기를 다시 품에 안고 돌아간다. 주사랑공동체에 따르면, 상담을 통해 상당수의 아기가 원래 가정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가 양육을 끝내 포기할 경우, 아기는 경찰에 신고된 후 구청을 통해 출생신고 절차를 밟고, 이후 아동복지시설(보육원)로 보내지거나 입양 절차를 밟게 된다.
베이비박스가 처음 설치된 2009년에는 맡겨진 아기가 없었으나,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그 수가 점차 늘어났다. 주사랑공동체교회의 공식적인 발표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2009년 12월 설립 이후 2025년 초까지 약 15년 동안 2,150명 아기의 생명을 보호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매년 꾸준히 수십에서 수백 명의 아기가 베이비박스를 통해 세상과 첫 인연을 맺고 있다. 이는 베이비박스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생명 안전망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 범인이 돈을 목적으로 한 최초의 유괴사건이 발생했다.
1962년 9월 10일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동에 살던 5살(1958년생) 2대 독자 조두형 군이 9시쯤 집 밖으로 놀러 나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의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조 군이 사라진 지 사흘이 지난 후 그의 가족 앞으로 1통의 편지가 도착했는데 내용은 '돈을 주면 두형이를 돌려보내 주겠다'는 것이었다. 비로소 두형이의 유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가족은 경찰에 신고했다.
금품을 노린 어린이 유괴라는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크게 주목받았고 거국적인 수사가 진행되었다. 경찰, 검찰은 물론이고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도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을 정도였으며, 내무부, 체신부, 문교부, 한국전력, 각종 언론 매체는 물론이고 여성단체들까지 조 군을 찾기 위해 애썼지만 이러한 수사에도 조 군을 찾지 못하였으며 그의 행방조차 알 수 없었다. 경찰은 '자수한다면 관대한 처분을 내리겠다'며 선처를 약속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1963년 5월에는 아시아레코드사 최치수 사장이 '두형이를 찾는 데에 도움을 주자'며 반야월 작사, 라음파 작곡, 가수 이미자가 부른 《두형이를 돌려줘요》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이미자의 슬픈 음색은 부모의 심정을 담은 흐느끼는 대사와 함께 듣는 이들의 가슴과 눈물샘을 자극했다.
당시 대통령이 나서서 대국민 담화까지 했으나 두형이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현재까지도 영구미제사건으로 막을 내렸다.
7살, 철 어렸던 내가 대전천 둑길을 걷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뚝 저 멀리에서 머리가 산발인 채로 저고리가 풀어진 채, 아이를 찾으며 뚝길을 달려오고 있는 한 어머니를 만났다. 그 어머니는 잃어버린 아이 때문인지 정신이 반쯤은 나가 있었다. 두 눈은 오직 잃어버린 아이만을 간절히 찾고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혹시, 이 근처에서 조그마한 사내아이 못 보았니?"
그녀는 아이의 모습을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
그녀는 낙담한 얼굴로 다시 둑길을 달렸다. 나는 멀어지는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혼신을 다해 오직 한 아이만을 찾고 있는 아이 어머니의 간절한 두 눈망울과 산발된 머리 모습은 내 뇌리에 깊숙하게 각인되었다. 나는 그 눈망울이 지금도 선하다. 아마 평생 그 모습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는 너를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는 말은 눈물 고인 말이다. 아니 통곡이 안으로 깊숙하게 베어든 말이다. 내가 외로울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병에 걸려 있을 때에도 신이 항상 함께하고 있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그런 것을 전혀 모른 채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내가 내 영혼을 낳아 준 신을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라며 때론 엄청나게 오해하며 살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내 육신을 낳고 길러주신 부모는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신다.
내 영혼을 낳아 준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부모인 신이 나와 항상, 언제나, 지금 현재 함께 하고 있다 - 이것은 사실, 참 놀라운 이야기이다.
나는 오랫동안 기도와 명상, 진리 묵상을 하며 언제부터인가 그런 신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런 마음으로 산, 소나무 아래 혹은 집 등에서 홀로 있을 때 명상과 묵언, 기도를 하면 가슴에 절절한 사랑의 심정이 흐름을 느끼기도 한다. 우주는 사랑, 부모, 자식으로 탯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외로움을 모르게 되었다.
7남매 중 막내인 나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 어머니 젖을 먹고 자랐다. 멀쩡한 초등학교 2학년 생이 학교에서 집에 오면 가방을 던져놓고 "엄마, 젖 줘!" 라며 어머니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 에피소드는 내가 유년시절 자란 대전시 은행동 동네에서 유명했었다. 동네사람들은 나를 보며 키득대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라서 그런지 나는 정말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내가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모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