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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스콘 Oct 09. 2022

난폭하고 냉혹한 코스모스

<노스맨>

가차 없다. <노스맨>은 가차 없는 영화다. 관람하는 동안 영화가 뿜어내는 에너지에 잡아먹히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노스맨>은 난폭했다. 동시에 냉혹했다. 이러한 영화를 지금껏 만나본 적이 있던가?


<노스맨>은 판타지 호러 <더 위치>와 <더 라이트하우스>를 연출한 로버트 에거스의 첫 상업 영화다. 10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덴마크의 왕자 암렛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삼촌 피욀니르에게 복수를 다짐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바이킹과 북유럽 신화

영화는 바이킹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로버트 에거스는 철저한 고증을 통해 당시의 바이킹을 재현했다. 짐승처럼 울부짖고 창과 방패를 두드리며 춤을 추는 모습, 도끼와 칼로 적들을 살육하는 모습은 바이킹의 야만성과 웅장함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이렇듯 바이킹과 영화 속 배경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는 바이킹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했다. 그 덕분에 마치 스크린 속에서 바이킹과 함께 숨 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또한 <노스맨>은 로버트 에거스의 전작처럼 신화적 요소가 가미됐다. 가령 영화 속에서는 까마귀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암렛의 아버지이자 덴마크의 왕 아우르반딜의 상징이면서 오딘의 사자를 의미한다. 암렛이 아버지의 복수를 하도록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장치이면서 그의 복수에 신적인 존재가 함께 하고 있음을 나타내 복수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그뿐 아니라 왕족과 전사의 핏줄로 만들어진 '왕들의 나무'(Tree of Kings), 용맹한 발키리의 모습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증가시킨다.


극한의 액션

<노스맨>의 액션은 바이킹의 야만성과 난폭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늑대 가죽을 뒤집어쓰고 근육질 몸매를 드러낸 그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진다. 이어 슬라브족 마을의 나무 요새를 넘고, 도끼와 칼로 병사들을 난도질하고, 목을 물어뜯는 모습은 날 것 그대로다. 화려하고 현란한 액션이 아니라 묵직하고 차가운 살육의 이미지, 그리고 비명과 포효로 채워진 액션이 있을 뿐이다. 극한으로 치달은 액션으로 관객을 얼어붙게 만들 수 있음을 <노스맨>은 증명한다.


즉, 로버트 에거스는 액션의 설계에서도 두각을 드러낸다. 강렬한 액션 신을 만들기 위해 고뇌를 거듭한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영화의 후반, 화산에서 펼쳐지는 검투 신은 이미지 그 자체로도 멋지지만 첫 장면과의 대조를 나타내고 영화의 공기를 변하게 만들며 영화의 메시지까지 드러내는 명장면이었다. 영화의 초반은 추운 북대서양을 비춘다. 바다라는 수평의 이미지, 혹독한 공기를 전달한다. 그에 반해 화산 검투 신은 화산이라는 수직적 이미지와 용암이 터져 나오는 뜨거운 공기를 전달한다. 이를 통해 차갑고도 냉혹했던 분위기가 끓어오르면서 새로운 국면의 전환을 알린다. 그리고 암렛과 피욀니르가 전라의 상태로 결투를 진행하는데, 이는 인간성을 버리고 야만성을 분출하였음을 의미하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난폭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 덕분에 <노스맨>의 액션은 멋지다는 느낌을 넘어 전율과 처연함 등 복합적인 느낌을 준다.


예정된 운명으로 향하지만, 그럼에도

<노스맨>은 예정된 결과로 향한다. 영화의 오프닝,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오딘에게 고한다. 암렛이 복수를 완성하고 발할라에 당도할 것이라고. 따라서 이 영화는 복수를 향해 달려간다는 점에서 직선적이다. 관객은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갈지 아는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우리는 보는 내내 숨이 막히고 혼란스러워하고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이 영화가 단순히 복수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암렛은 운명의 굴레에 갇힌 자다. 그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피욀니르를 죽여야 하는 운명이다. 


하지만 그는 번번이 장애물에 가로막힌다. 피욀니르의 상태,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반전 등 과연 그가 복수를 해야만 하는지 당위성이 흐려지는 상황이 찾아온다. 또한 바이킹 암렛의 잔인성은 과연 그가 복수를 행해야 할 마땅한 인물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이러한 점들은 복수극을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게 한다. 또한 그 복수의 과정을 서스펜스와 카타르시스로 나타내지만, 동시에 처연함과 허무를 느끼게 만드는 등 암렛의 신화와 복수극을 단순히 오락적으로 여기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노스맨>은 인간의 야만성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 폭력의 순환, 사랑과 증오 사이의 선택, 그리고 복수의 허무를 다루었다. 로버트 에거스는 이를 바이킹의 사실적인 묘사, 극한의 액션, 최고 수준의 기술적 완성도로 그려냈다. 철저한 고증으로 완성된 장면 하나하나는 그 깊이감부터 달랐다. 그가 만든 난폭하면서도 냉혹한 코스모스는 피부로 전해지듯 생생했다.


대중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만의 세계를 온전히 구현해냈다. 아직도 당시의 공기와 바이킹의 포효가 귀에 맴도는 것 같다. 나태함과 자기만족에 빠진 작품들이 범람하는 지금, <노스맨>은 여러모로 진귀하고 의미가 크다. 이 무시무시한 걸작을 뚝심으로 빚어낸 로버트 에거스에게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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