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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스콘 Oct 08. 2021

반성문이자 선언문

<모가디슈>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류승완이 돌아왔다. 단순히 차기작으로 돌아왔다는 게 아니다. 다시 한번 자신을 증명하며 돌아왔다는 의미다. 예전부터 그는 홍콩 스타일의 무협 영화(<아라한 장풍 대작전>)나 타란티노 스타일의 액션 영화(<짝패>), 예측불허 B 영화(<다찌마와 리>)는 물론, 사회 고발 영화(<부당거래>, <베테랑>)까지 만들면서 능력치를 갱신해갔다. 하지만 큰 야심을 갖고 만든 전작 <군함도>가 처절하게 실패해버렸다. 통쾌함과 뻔뻔함의 영화를 만들던 류승완의 개성이 사라진, 전형적인 한국 상업영화의 모습이었다. 결국 류승완은 단 한 편의 영화 때문에 '한물갔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군함도> 가장  문제는 태도와 감정의 과잉이었다. 군함도  한국인들의 고통과 절망을 다루기보다는, 후반부에 벌어지게  액션에 초점을 맞췄다. 다시 말해, 실제 역사의 아픔을 액션과 스케일을 위한 배경으로만 다루었다. 또한 인물의 처절한 희생을 소위 말하는 '신파' 연출로 강조하며 관객의 눈물을 강요했다. 과장된 음악, 과장된 인물들의 눈물 연기는 보는 이들을 피로하게 만들었다.


전작의 비판을 수용하고 앞으로 나아가다

류승완은 그 비판을, 그 실패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모가디슈>는 그 결과다. <모가디슈>에는 <군함도> 속 실패가 보이지 않는다. 태도부터 살펴보자. 류승완은 소말리아의 비극을 무시하지 않았다. 비록 모가디슈 내전의 배경과 전개 과정을 일부 생략하긴 했지만, 전작처럼 실제 역사의 아픔을 가볍게 다루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를테면 정부군이 무자비하게 반군을 진압하는 와중에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보내는 메시지가 내레이션으로 들리게 한 연출은 탁월하다. 대한민국의 동일한 아픔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대사관 직원의 운전수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이나 어린 나이에 폭력의 세계에 익숙해진 아이들, 그리고 길거리에 내던져진 수많은 시체들은 전쟁의 참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북한말 대사를 자막 처리한 것도 인상 깊다. 이는 두 가지 효과를 준다. 하나는 북한을 외국으로 설정하면서 관객이 적당히 거리를 두도록 만든다. 협력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언제 위협적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대상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 효과는 엔딩에서 더 빛을 발한다. 두 번째는 관객에게 편의를 준다. 북한말은 한국 관객이 온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자막 덕분에 북한 인물의 대사를 보다 쉽게 알아들을 수 있다. 이는 <베를린>에서 북한말 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는 비판을 수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가장 다행스러운 점은 이 영화에 신파가 없다는 사실이다. 집념의 탈출극이면서 남북한 사람들의 협력이 소재인만큼 분명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류승완은 그런 선택을 배제해버린다. 오히려 절제를 택하면서 담백하게 끝맺음한다. 이러한 연출은 오히려 신파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이는 김윤석과 허준호 등 베테랑 배우들의 따스히 감싸는 듯한 연기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영화가 관객에게 메시지를 주입하는 계몽적 태도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며 대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남북한 사람들이 생존과 탈출을 위해 협력했을지라도 엄연히 적대 관계에 놓여 있다는 냉혹한 현실은 인물과 관객을 현실로 추락시킨다. 그 추락의 감정은 영화가 요구하지 않아도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이렇듯 류승완은 전작의 문제점을 극복해냈고 자신이 여전히 건재함을 알렸다.


류승완이기에 가능한 장면들

<모가디슈>는 류승완이 비판을 수용함과 동시에 아직 보여줄 게 더 남아있다며 자신감을 표출한 결과이기도 하다. 중반부 총격전과 후반부 카체이싱 신이 바로 그것이다. 총격전의 음향은 상당히 훌륭했는데, 이는 우리가 당시의 모가디슈 거리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극에 몰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후반부 카체이싱 신은 덱스터의 기술력과 류승완의 연출이 만난 압도적인 명장면이었다. 마치 <아수라>의 카체이싱을 방불케 한 이 신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총알과 현란한 카메라 워킹, 혼란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마음속으로 감탄사를 저절로 외치게 된다. 여기서 대사관 일행이 탄 자동차들은 잡동사니로 어설프게 덮인 모습인데, 이러한 자동차의 모습과 이러한 형식의 추격전은 지금껏 본 적이 없어 신선한 충격을 준다.


연출의 디테일도 인상적이다. 영화의 초반부, 강대진(조인성) 참사관이 대사관 직원들을 기다리며 담배를 태운다. 그러던 중 한 거북이가 천천히 다 태운 담배 뭉치 쪽으로 향한다. 대진은 그 거북이를 반대쪽으로 가도록 놔준다. 어쩌면 이 거북이는 대사관 일행을 은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담뱃재로 향하는 거북이는 내전의 파멸로 향하는 대사관 일행이지 않았을까. 따라서 반대쪽으로 가도록 놔준 것은 대사관 직원들이 참사를 피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또한 대한민국 대사관 일행과 북한 대사관 일행이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대한민국 대사 부인 명희(김소진)가 깻잎을 제대로 떼지 못하자 북한 대사 부인 영숙(박명신)이 젓가락으로 깻잎을 떼도록 도와준다. 나는 이 장면에서 류승완의 연출에 탄복했다. 깻잎이 갖는 특성을 이용해 남북 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가 교조적인 태도를 갖지 않아도, 노골적인 대사 몇 줄을 쓰지 않아도, 한 장면만으로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결론적으로 <모가디슈>는 류승완의 반성문이자 선언문이다. 그는 전작의 과오를 인정하고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남아있음을 증명해냈다. 물론 <짝패>나 <부당거래> 같은 뻔뻔함과 저돌적인 면모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겐 아쉽겠지만 우리가 알던 류승완은 돌아왔다. 그는 다시 한번 우리를 놀라게 할 결과물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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