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친구의 친척이 제주도에서 감귤 농장을 하고 있어, 제주도에서 감귤을 택배로 받으면 가끔 아들에게 감귤을 나눠줄 때가 있다. 시장에서 파는 물건과는 달리 색깔도 검고 껍질도 매끄럽지 않지만 맛이 좋아 인기가 많다. 가끔 ‘우리도 이걸 살 수 있으면 안심하고 먹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아들에게 “친구에게 부탁해 우리도 사먹을까?”하고 말하면 아들은 “그렇게 부탁하는 게 좀 곤란해요”라고 대답한다. 아마도 친구 사이에 돈이 오가는 상황이 영 어색한 모양이다.
이처럼 가까운 사람과 거래를 하는 것과 같은 일들은 일상에서 자주 발생한다. 세일즈를 하는 지인에게 상품을 구매하고 난 다음 문제가 생겨 인간관계에 틈이 생길까 하는 걱정으로 지인아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는 상사의 지시에 대해 상사의 의도를 정확히 모른 채 ‘상사가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 일을 시켰을까?’라고 추측을 하면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모르는 내용을 상사에게 직접 물어보면 수월하겠지만 혹시나 ‘상사가 귀찮아하면서 화를 낼까 두려워서’ 혹은 ‘자신이 너무 실력이 없다고 상사가 인식할까 봐’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상사에게 직접 물어보기를 꺼린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상사를 위해서도, 본인을 위해서도 결코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아들 친구의 사례를 보자. 아들 친구에게서 감귤을 구입하지 않아도 가족들이 귤을 좋아하기에 다른 곳에서 구입을 해야 한다. 품질이나 맛이 확실하지 않은 감귤을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구입하게 되어 불안할 뿐만 아니라 친구 입장에서는 농장에 재고가 쌓여 손해다. 친구가 불편해할까 우려한 친구에 대한 배려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이다. 업무도 마찬가지이다. 상사가 내린 지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주변 사람들과 의논을 하게 된다. “상사가 이런 말을 했는데 너는 상사의 의도가 무엇인 거 같아?”라고 묻더라도 모두 추측말할 뿐 정확하게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상사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여러 사람에게 계속 묻게 되면 ‘저 상사는 부하에게 업무 지시도 제대로 못하네’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또 혹시라도 자신이 여러 사람에게 묻고 다닌다는 사실을 상사가 알게 되었다면 상사는 그런 부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마도 업무 능력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 어떻게 해야 서로에게 도움이 될까? 상사가 업무를 지시하면 그 자리에서 상사와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확인하는 방법이 가장 현명하다. 만약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상사의 의견이 필요하다면 즉시 상사에게 보고하고 상사의 의견을 구해야 한다. ‘지금 상사가 바쁘니까 나중에 보고해야지’라고 상사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자신의 의견대로 보고서를 작성했을 때 다행히 상사가 동의를 하면 괜찮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자신의 선의가 오히려 상사를 무시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만큼 억울한 일도 없다. 자신의 지시에 대해 별다른 질문 없이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은 상사는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겠지’라고 안심한다. 중간에 부하로부터 특별한 보고도 없어 ‘잘 진행되고 있구나’라고 안심하고 있는데 막상 기한이 되어 제출한 보고서가 자신의 의도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면 어떻게 될까? 상사는 당연히 화를 낸다. 더 큰 문제는 보고서를 수정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결국 상대방을 배려하는 행동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이와 같은 경우 업무 효율을 높이는 간단한 방법으로 현명한 요청이 있다.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하는 부탁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요청이 부담스러운 이유는 ‘요구’와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구와 요청은 상대방이 나를 위해 무언가 해주기를 바라는 행동이지만 그 차이는 상대방이 거절했을 때 나타난다. 자신의 부탁을 거절했을 때 화가 나는 등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경우는 ‘요구’이다. 반면 ‘요청’은 상대방이 거절하더라도 마음의 동요가 생기지 않는다. “부장님, 오늘 오후 3시까지 결제 대금을 거래처에 지급해야 하는데 결제 부탁드립니다”라고 오후 2시 30분경 보고서를 들고 왔다면 이런 행동은 요청일까 요구일까? 요구가 조금 과하면 상대방에게는 협박으로 들릴 수 있다. 만약 부장이 보고서를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고 결제를 미루면 어떻게 될까? 회사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앞의 사례는 당연히 요구가 된다. 회사 생활에서나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요구를 자주 경험한다. 이럴 경우 괘씸한 생각이 들뿐만 아니라 마음도 편하지 않다.
상사에게 하는 요구를 피하기 위해서는 현명하게 요청할 필요가 있는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상사에 대해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다. 상사는 자신 위에 군림하면서 업무를 방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업무 파트너이다. 상사의 역할은 부하에게 어려운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상사에게 수시로 질문하고 의견을 구할 필요가 있다. 상사 또한 부하의 질문에 대해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도와줄 필요가 있다.
이제부터라도 망설이지 말고 상사에게 요청하자. 당당한 요청이야말로 상사를 도와주는 방법이라는 사실 또한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