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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문제라면?

by 최환규

법원에서 이혼소송 중인 당사자를 만날 때마다 부부 모두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고 상대에게 잘못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서로를 탓하는 싸움을 하는 것이다. 당사자들은 ‘상대가 자신을 굉장히 힘들게 했다’라는 것과 함께 ‘상대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를 설명’ 하기 위해 정말 큰 노력을 한다. 부부의 일상을 관찰 카메라로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혼란스럽기만 하다.


부부가 상대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려 서로의 관계를 회복하고, 문제를 건설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들을 만나지만, 서로 상대 탓만 하고 있으면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 만약 이들이 이렇게 상황이 심해지기 전 ‘저 사람이 저렇게 반응하는 것은 혹시 나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마도 법원에서까지 자신의 배우자를 제3자 앞에서 헐뜯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사례는 직장에서도 흔히 경험하게 된다. ‘잘못되면 남 탓이요, 잘되면 자기 덕분’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특히 문제가 클수록 서로 남 탓하기 바쁘다.


직장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일본의 회사와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팀의 막내로 업무를 보조한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일본으로 컨설팅 대금을 송금해야 하는데, 제때 송금을 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정해진 날에 송금을 못 하면 환율 등으로 인해 차액이 발생하게 되어 회사에 손실을 끼치게 된다. 자기 부서의 문제라고 판명되면 책임을 져야 해 담당 부서인 경리부의 주무과장이 한참 후배인 필자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송금 날짜를 확인하지 못한 것은 네 탓이다.” “네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다.”와 같은 말을 노골적으로 필자에게 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경리부서의 선배가 이런 말을 하는데도 같은 팀의 선배들은 문제해결을 위해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도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경험이 처음인 필자로서는 ‘정말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나’는 걱정과 함께 ‘변상해야 할 돈이 얼마나 될까?’라는 걱정으로 거의 1주일을 아무 일도 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만약 이럴 때 관련 부서 사람들이 모두 모여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어떻게 하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고민을 함께했더라면 문제도 쉽게 풀렸을 것이고, 나의 씁쓸했던 기억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누구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나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를 만나면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어렵고 힘들겠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두려움에 휩싸여 몸은 위축되고 머리는 하얗게 된다. 특히 주변 사람들로부터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하는 거야?”와 같은 질책을 듣게 되면 문제해결 능력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도 주변 사람들이 ‘혹시 나의 잘못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한 다음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달라질까?


축구의 예를 들고자 한다. 축구선수 누구라도 슛을 할 때는 골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세계에서 몸값이 가장 비싼 선수도 슛을 할 때마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만약 실패할 때마다 동료들이 비난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직장에서 일부러 문제를 만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일부러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이런 사건들은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만날 확률이 아주 낮다. 진짜 문제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한 실수에 대해 마치 일부러 일을 망치려고 한 것처럼 주변 사람들이 대할 때이다.


직장 동료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조직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동료를 보면서 ‘고생 좀 해라’라고 반응하는 조직과 ‘빨리 도와줘야겠다’라고 반응하는 조직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힘들어하는 동료를 외면하는 조직은 성장할 수 없다. 반대로 동료의 어려움을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돕는 조직은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바람직한 조직 문화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움직여야 한다. 이런 조직 문화를 형성하자고 아무리 외쳐도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공염불이 되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조직 문화 형성의 첫걸음은 어려운 상황에서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려고 애쓰기보다는 ‘내 문제인가?’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대서 시작된다. 분명히 극복할 수 있는 해답을 찾게 될 것이며, 이런 경험의 축적은 건강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데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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