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환규 Dec 18. 2023

나의 ‘역할’은 안녕한가요?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바쁘다. 낮에는 올해 업무의 마무리와 내년 계획을 준비하고 퇴근 후에는 여러 모임에 참석하면 여유 시간을 갖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직장인이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신의 역할에 대한 균형을 잃어버릴 때가 가끔 있다.     

직장인은 다양한 역할이 있다. 직장에서는 조직의 구성원으로, 가정에서는 부모 혹은 자식으로, 동창회와 같은 커뮤니티에서는 멤버의 역할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특정 영역에 너무 많은 관심과 시간을 투자하면 다른 영역에서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게 된다. 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 직장에서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퇴근 시간이 빨라졌다. 많은 직장인은 퇴근 후의 시간을 즐기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데 ‘퇴튜런트’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퇴튜런트는 ‘퇴근’과 ‘스튜던트(student)’라는 단어를 합성한 것으로 문화센터, 학교, 취미와 자기 계발을 위해 퇴근길을 재촉하는 직장인을 뜻하는 말이다. 직장인의 이런 노력은 자기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퇴튜런트가 되려는 직장인은 먼저 퇴튜런트가 되려는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학습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비용이 필요하다. 새로운 배움에 많은 시간을 투입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다른 역할을 수행할 시간이 부족해진다. 어린이집의 도움을 받으면서 아이를 양육하는 부부가 퇴튜런트가 되었다고 생각하자. 이런 시간이 부모에게는 미래를 위한 투자의 시간이 되겠지만 아이에게는 부모만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직장인의 시간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될 수 있다. 직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두 영역은 ‘일’과 ‘가정’이다. 일은 직장인에게 가장 소중해 자신의 정체성과도 같다. 만약 아침에 출근해 “당분간 일하지 말고 그냥 쉬어.”라고 부서장의 말을 들으면 ‘야호!’와 같은 환호성이 절로 날 것이다. 하지만 그냥 쉬는 날이 점점 길어지면 처음의 즐겁던 기분은 어느새 사라지고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불안한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올 것이다. 이런 기분을 느끼는 이유는 일이 직장인의 삶에서 차지하는 가치와 비중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일의 소중함은 주변 사람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새로운 사업계획을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부서장에게 보고했다고 하자. 부서장으로부터 “지금 하는 일만 해도 힘들었을 텐데…. 정말 고생했네.” 혹은 “이런 거 할 시간 있으면 지금 하는 일에나 신경 써.”라는 두 종류의 대답을 들었다고 하자. 부서장의 대답이 부서원에게 미치는 영향은 극과 극일 것이다. 부서장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부서원은 뿌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부서장으로부터 야단을 맞은 부서원은 ‘다시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라는 결심을 굳힐 가능성이 크다. 부서장으로부터 인정받은 부서원은 자신의 업무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일하게 되면서 그에 비례해 성과도 올라간다. 반면 부서장의 반응에 서운함을 느낀 부서원은 부서장이 시키는 일만 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같은 일을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들의 반응에 따라 부서원이 생각하는 일에 대한 가치가 달라진다.     

부서원의 능력향상은 부서장의 역할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부서원이 작성한 보고서는 부서장의 눈에서 미흡한 부분이 먼저 보일 수 있다. 부서원이 작성한 보고서에서 부실한 내용이나 부족한 경험은 부서장이나 다른 부서원의 능력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부서원의 자신감이나 성공 경험은 저절로 향상되지는 않는다.      

부서원은 혼자서 성장할 수 없다. 주변에서 쉽게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축구나 야구의 경우를 보자.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도 저절로 성장한 선수는 없다. 지도자나 주변 사람의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으로 능력 있는 선수로 성장한 것이다. 직장인도 운동선수와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격려로 성장한다. 부서장이 부서원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과 눈빛은 부서원의 성장을 돕는 질 좋은 영양제이다.       

아무리 좋은 영양제라도 부작용이 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부서장이 부서원을 지나치게 격려하거나 배려해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부서장은 부서원에 대한 평가를 객관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부서원은 자신에게 부족한 지식과 경험을 알게 되고, 이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부서장의 이런 노력은 부서원의 성장을 돕는 방법이다. 영양이 풍부한 땅에 질 좋은 품종의 묘목을 심는다고 원하는 나무로 자라지는 않는다. 과수원에서는 나무가 높이 올라가는 대신 옆으로 뻗어야 열매를 수확하기 쉽다. 목재를 얻기 위해서는 가지치기를 해야 키가 높은 나무로 성장한다. 부서장이 부서원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나무를 기르는 것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조직에서 필요한 인재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부서원에게 그때그때 필요한 격려와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 부서장의 부서원에 대한 균형 잡힌 격려와 자극이 부서원을 성장시킨다.     

적절한 격려와 자극은 조직원의 성장을 돕는다. 균형의 유지는 우리의 삶에서도 중요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게 되면 가정을 소홀히 하기 쉽다. 부모 중 어느 한쪽이라도 가정을 소홀히 하게 되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맞벌이 부부라면 이런 문제는 더욱 빨리 나타날 수 있다. 배우자가 도와주지 않아 육아독박을 써야 하는 경우 일도 해야 하고 가사노동을 해야 해 피곤은 두 배가 된다. 집안일을 도와줄 의사가 없는 배우자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기보다는 짜증을 낼 가능성이 크다. 업무에 시달려 피곤해 집에서 쉬고 싶을 때 짜증 섞인 말을 들으면 “내가 놀다 왔어? 왜 이렇게 귀찮게 해.”라고 화를 내게 되고, 이것이 부부싸움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가정에서의 불화는 직장으로 이어진다.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는데 “오늘은 언제 들어올 거야? 회사 일 혼자 다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집안일도 그렇게 해 봐.”라는 말을 들으면 불쾌해진다. 이런 상태로 회사에 출근하면 머릿속에는 아침에 들은 배우자의 가시가 돋친 말이 계속 

떠돌면서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게 된다. 출근하면서 함께 가지고 온 스트레스가 업무의 집중을 막는 방해물이 된다. 이런 문제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일과 삶의 균형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일과 삶의 균형은 ‘시간’이 중요했다.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여성에게 퇴근 시간은 단순히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아니라 가사노동이라는 또 다른 일터로의 출근 시간을 의미하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맡겨둔 직장인이라면 그 시간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도착하지 못하면 상당히 곤란한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인해 퇴근 시간 가까이 되면 업무를 마무리해야 한다. 퇴근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는 다른 조직원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약하다’라고 여긴다.      

일찍 퇴근하는 사람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하는 시간’을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조직에 필요한 사람은 ‘오래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과를 내는 사람’이다. 무능한 사람이 아무리 오래 근무하더라도 조직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 회사에서는 자리를 오래 지키고 있으면 조직에 충성하는 조직원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편견은 농사에 적합한 생각으로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논이나 밭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느냐에 따라 소출이 결정되었다. 열심히 하는 정도가 경쟁력인 시대였다.     

맹목적인 부지런함은 조직의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농사 패러다임에 젖어 있는 리더일수록 조직원을 오랫동안 조직에 남겨둔다. 이런 리더의 무의식에는 ‘퇴근 후에 일이 생기면 어쩌나?’라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어 퇴근이 두렵다. 부서장이 퇴근하지 않으면 부서원도 눈치를 보면서 퇴근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조직원의 마음에는 불만이 쌓이게 될 뿐 아니라 조직원의 시간을 낭비하는 결과가 된다.     

지금은 양이 아니라 질이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이다. 부서장과 부서원 모두가 퇴근 후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많은 것이 변하게 된다. 부서장과 부서원이 일찍 가정으로 퇴근하면 술을 마실 기회가 줄어든다. 일찍 퇴근한 부서원이 가사노동에 참여하거나 아이 돌봄을 배우자와 함께하면 마음의 부담을 덜게 된다. 또한, 술을 마시지 않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업무로 인한 피로를 해소할 수 있다. 건강한 상태로 출근하면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어 생산성은 높아지고, 성과도 올라가게 된다.     

퇴근이 빨라지면 자기 계발 시간도 늘게 된다. 퇴근 후에 업무에 필요한 지식을 얻게 되면 그 지식은 조직원의 능력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익힌 지식과 능력은 가정과 직장에서 활용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거의 모든 조직에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한다. 이렇게 익힌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가정에서 가족과의 소통에 도움이 되고, 직장에서는 동료들과의 소통에 도움이 된다. 이렇게 직장에서 익힌 지식과 능력이 가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직원은 항상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직장인은 조직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만약 저녁 모임에서 사고가 발생해 맡은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되면, 그 일은 다른 누군가에게 넘어간다. 이렇게 되면 그 일을 맡은 사람뿐만 아니라 조직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직장인의 사고는 조직만이 아니라 가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직장인에게 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힘든 사람은 당사자지만,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면 가족을 비롯해 동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2023년이 지나가고 있다. 직장인에게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함과 동시에 2024년을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달이다. 자신의 한 해를 철저하게 돌아보면서 내년으로 가져갈 자원들의 목록을 작성해야 한다. 여기서 자원이란 돈과 같은 물질 자원이 아니라 지식, 경험, 관계나 노력과 같이 보이지 않는 심리 자원을 의미한다. 시간을 가지면서 차분하게 한 해를 정리하다 보면 자신이 한 해 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를 알게 된다. 물론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자원이 있다면 그런 자원은 시간을 두고 채워가면 된다.     

직장인에게는 오늘도 중요하지만, 미래도 중요하다. 직장인의 지금 행동은 어떤 형태로든 조직과 가족에게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직장인은 오늘에 충실하면서 미래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동료와의 껄끄러운 관계에 매달리기보다는 서운함을 털어버리고 동료를 자신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람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조직원들의 이런 노력이 모일 때 조직은 발전할 수 있다.     

‘나는 한 해 동안 나의 역할에 충실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보자. 아마도 자신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내년을 준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감사와 협력이 조직을 발전시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