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어른들이 자주 했던 얘기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 말과 같은 만고불변의 진리를 잊고 사는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약속시간에 쫓겨 급히 나오느라 고객에게 전달하기로 한 서류를 집에 놓고 나왔다. 바쁜 마음에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버튼 대신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 순간 아차 싶어 내려가는 다시 눌렀지만 엘리베이터가 이런 급한 마음을 알아줄 리가 없다. 빨리 가려는 마음에 급하게 한 행동으로 인해 시간은 두 배가 소요되었다.
평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해 보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엘리베이터의 현재 위치를 표시해주는 숫자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 엘리베이터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을 구경하는 사람 등 참으로 그 모습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 중에서 거의 매번 만나는 사람은 시간에 쫓기거나 급한 용무로 빨리 엘리베이터에 타야 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급한 마음에 ‘내려가는 버튼’과 ‘올라가는 버튼’을 한꺼번에 누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계속해서 버튼을 누르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자신의 급한 마음을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있다고 이해는 되지만 이런 행동이 자신에게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급하게 위로 올라가야 하는 사람이 내려가는 버튼을 함께 누르게 되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도 멈추게 되어 자신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게 만든다. 어떤 사람은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지 올라가는지 보지도 않고 문이 열리는 순간 일단 타고 보는 사람도 있다. 급한 마음에 무조건 타기는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면 중간에 급하게 내리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도 자신의 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간까지 빼앗아 버리게 된다.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샘이다.
급히 서두르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경부고속도로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경부고속도로를 완공하는데 16년이 걸린다고 주장한 반면, 실제 공사는 2년 5개월 만에 완공되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 급하게 서두른 결과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다. 완공된 이후 지금까지 경부고속도로는 부실과 보강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도로 폭은 당초 계획한 24m에서 22.4m로 줄어들었고, 비용과 공사기간을 줄이기 위해 중앙분리대를 비롯한 안전시설을 생략하고 진행하였기에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대형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개통 1년 만에 전 구간에 덧씌우기 공사를 시행하게 되자 당시 야당의 한 국회의원은 "경부고속도로가 누워 있으니 망정이지 서 있었다면 벌써 와우아파트처럼 무너졌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개통 후 10년간의 유지보수비용은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을 넘는 수준이었으니 초고속 건설의 후유증은 실로 만만치 않았다. 서둘러 일을 그르치게 된 또 하나의 사례가 된 것이다.
이처럼 서둘러 일을 그르치게 된 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빈번히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다툰 경우를 보자. 이럴 때 갈등 당사자인 두 사람을 잘 알고 있는 제3의 사람이 두 사람을 화해시키기 위해 나서는 경우가 흔한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빨리 화해하기를 종용(?)하는 것이 일상적이다. 특히 제3의 사람이 싸운 당사자보다 지위나 권력이 높은 경우 화해를 강요하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제3의 사람에 의해 원하지도 않는 화해를 하게 되나 마음속에는 상대에 대한 미운 감정을 간직하고 있게 된다. 해소되지 않은 상대에 대한 미운 감정은 사사건건 트집 잡을 일을 찾게 되며, 자신의 뜻에 걸리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순간 더 큰 다툼의 원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문제의 요소를 제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선택하지 않았기에 또다시 유사한 다툼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빨리 승부를 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는 운동선수의 행동에서도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야구경기에서 수비수가 빨리 경기를 종료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경우 공을 잡는데 집중하기보다 다음 던질 곳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어 날아오는 공을 놓치는 실수를 하게 되면 오히려 더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축구경기에서도 공격수가 슛을 할 때 마음이 급하게 되면 골대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골을 차게 된다. 가끔 축구시합에서 자책 골이 나오는 경우가 이 경우라 생각된다. 운동 경기에서 역전승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 생각된다. 경기에 지고 있으면 마음이 급해져서 공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좋은 기회가 오더라도 그 기회를 십분 활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실수로 인해 마음의 부담은 더 커지게 되고, 초조한 마음에 서두르다 또 다른 실수를 범하는 악순환을 겪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등산하는 모습을 보자. 정상에 빨리 오르기 위해 초반부터 속도를 낸다면 정상에 오르지도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천천히 속도와 에너지를 조절해 가며 정상을 향해 가야만 기쁨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는 씨를 뿌리고 싹이 터서 튼실한 열매를 맺을 때까지 영양분을 주면서 기다려야 한다. 씨앗이 땅속에서 충분한 영양분을 흡수해야 하는 것처럼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고민해야 하고, 본연의 목적에 합당한 행동을 하며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이 없다면 우리는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바로 이런 의미일 것이다.
조직 내에 부서장으로 새로이 임명되어 온 사람이 있다고 하자. 아마도 많은 경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가시적인 성과 얻고자 서두를 것이다. 이때 부서원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거나, 부서원으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한 업무를 추진하다 보면 실패할 가능성이 커진다. 시작하자마자 실패를 경험하는 경우 자신감을 잃게 되고, 다른 사람을 탓하며, 그들이 자신을 지지해 주지 않는다며 불평하고 불신하게 되어 업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조직 구성원 간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급히 서두른 것이 화근이 된 경우라 할 수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이는 본래의 목적에 맞게 일을 진행시키는 것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조직원과의 ‘갈등 해결’에서도 중요하게 작동된다. 성장 과정이 달라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경험과 지식이 다르고 삶의 방식과 가치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공동의 목표를 향해 일을 해 나가는 곳이 바로 조직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는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서로 달리 해석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기 쉽다. 조직 내에서 갈등이 발생하게 되면 주변 사람들 모두가 불편해지기 때문에 어떻게든 빠른 시간 내에 갈등을 봉합하려고 한다. 화해의 술자리고 마련해 서로 화해하라고 권하기도 하고 부서 분위기를 고려하라고 은근한 압력을 가하기도 하면서 갈등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조급한 행동은 갈등을 더 크게 증폭시키고, 더 많은 사람들을 갈등 당사자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갈등이 생기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과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충분히 대화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다음에 상대의 바람을 내가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방법들을 찾아보고 갈등 당사자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리지만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시너지를 발휘하게 되고 이는 성과 향상과 건강한 조직문화를 가져다주게 된다.
아무리 마음이 급하더라도 과정을 생략할 수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급할수록 한 박자 쉬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나와 상대를 위한 것인가?’,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답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것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조상들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지혜이고 원칙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