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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원할까?

by 최환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래된 명제처럼 사람은 홀로 설 수 없는 존재이며,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관계는 공기나 물처럼 사람의 생존과 건강 그리고 행복에 필수 불가결한 영양소와 같다. 이런 이유로 인해 사람들은 관계에 목말라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부족한 삶은 단순히 외롭다는 감정을 넘어 존재의 근간이 흔들리는 고통스러운 여정으로 비유할 수 있다. 고독이라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인간관계가 부족한 사람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부족할 때 내면의 황폐함을 경험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감정을 공유하며, 정서적 지지를 받는다. 하지만 관계가 단절된 삶에서는 이러한 역할을 해줄 다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도, 슬픔을 위로해 줄 사람도, 성공을 축하해 줄 사람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만성적인 고독감과 사회적 고립감으로 이어져 ‘나는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다’와 같은 부정적인 자기 인식에 갇히게 된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으로 인해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내면에 쌓인 부정적인 감정들은 해소되지 못해 우울감, 불안감, 무기력감과 같은 정신 건강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인간관계의 결여는 신체적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많은 연구에서 심리적인 고통은 신체적인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만성적인 외로움과 고립감은 몸을 끊임없이 스트레스 상태로 만들어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높인다. 이 결과, 면역 체계를 약하게 만들어 감염성 질환에 취약하게 만들고, 만성 염증 반응을 유발해 심혈관 질환, 고혈압, 당뇨병 등 각종 성인병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

사회적 고립은 흡연이나 비만만큼이나 조기 사망률을 높이는 강력한 위험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따뜻한 대화와 신체적 접촉을 통해 분비되는 옥시토신과 같은 호르몬이 부족해지면서 신체는 끊임없이 긴장하고 경직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인간관계의 단절은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타인의 감정을 읽고 적절히 반응하며, 자신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의사소통 기술이 무뎌지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데 더욱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또한, 중요한 정보의 흐름, 기회의 창구 대부분이 인간관계를 통해 연결된다. 인간관계가 나쁜 사람은 이러한 정보와 기회로부터 멀어져 사회적·직업적 성장의 기회를 상실하게 될 뿐만 아니라 비상시 도움을 청할 곳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에 놓이기 쉽다.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관점을 배우고, 피드백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며, 한계를 넘어설 동기를 얻는다. 관계가 단절된 사람은 이러한 외부적 자극과 성찰의 기회를 상실하여 개인적인 성장이 정체되고,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다. 삶의 많은 의미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찾아지는데 관계가 단절되면 자신의 삶의 목표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깊은 허무감을 느끼기 쉽다.


이처럼 인간관계가 부족한 삶은 단순히 외롭고 쓸쓸한 삶을 넘어 사람이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모든 본능적,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삶의 모든 측면이 위협받는 고통스러운 상태이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는 단순한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고, 성장하며, 행복을 느끼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사람의 관계 욕구는 진화론적 생존 본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수십만 년 전 원시 시대의 인간은 육체적으로 다른 포식자들보다 약한 존재였다. 홀로 서는 맹수의 위협이나 자연재해를 견디기 어려웠기에 집단생활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절대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었다. 서로 협력하여 식량을 구하고, 외적의 침입을 막으며, 연약한 새끼를 키워내는 과정에서 ‘함께’라는 유대는 생존에 필수적인 기술이 되었고, 이는 곧 유전자에 각인되었다. 집단으로부터의 분리는 곧 죽음을 의미했기에 소속감과 유대감에 대한 강한 욕구는 인간의 본능으로 각인된 것이다.

심리학자인 아브라함 매슬로 박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단계를 설명하면서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를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 다음으로 중요한 단계로 제시했다. 즉, 기본적인 생존이 보장되면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사랑을 주고받고 싶어 하며, 특정 집단에 속해 안정감을 느끼고자 한다는 것이다. 소속감은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며, 사랑은 삶의 고난을 이겨낼 힘과 의미를 부여한다.


또한, 인간관계는 ‘자아 형성’과 ‘정체성 발달’에 필수적인 거울과 같다.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관계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며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간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애착 관계를 통해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형성하고, 또래 집단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적 기술과 가치관을 배운다. 성인이 되어서도 다양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역할의 변화를 겪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계속해서 다듬어간다. 이처럼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자,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증명하는 무대인 것이다.


인간관계는 ‘감정 조절’과 ‘스트레스 해소’의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한다. 사람은 기쁨, 슬픔, 분노, 불안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런 감정들을 혼자 감당하기란 매우 어렵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공감을 얻으며, 위로와 지지를 통해 감정을 건강하게 조절한다. 예를 들어, 힘든 일이 있을 때 친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관계는 심리적 압박감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정서적 방패막이되어준다.


인간관계는 ‘성장’과 ‘자기실현’을 위한 촉매제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배우고, 도전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멘토와의 관계는 지혜와 경험을 배우는 통로가 되고, 동료와의 건설적인 경쟁은 더 나은 자신을 향해 노력하게 만드는 동기가 된다. 혼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꿈과 목표도 신뢰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원하는 것은 단지 외로움을 피하려는 나약함이 아니라, 진화적 생존 본능, 깊은 심리적 욕구, 자아 형성의 필요성, 감정 조절의 통로, 그리고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정의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며, 고통을 나누고, 기쁨을 증폭시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갈망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DNA이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불변의 진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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