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죽음을 맞이한 할머니 이야기가 뉴스에 나왔다. 이 할머니는 날마다 지하철역에서 구걸하며 연명하였는데, 그해 겨울 추위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장례를 치른 뒤, 시청 직원들이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침대 밑에서 150만 달러나 되는 큰돈을 발견했다. 그 많은 돈을 두고도 할머니는 먹지도 않고 기름도 아끼다가 배고픔과 추위로 숨을 거둔 것이다.
돈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직업을 선택할 때는 ‘연봉’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돈과 같은 재물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지금은 폐지된 개그콘서트의 어르신이라는 코너에서 출연자는 처음에 "○○(좋은 직장, 결혼 등), 그거 다~필요 없는기라."라는 대사로 운을 떼고 "돈 많이 벌면 뭐 하겠노,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 묵겠지. 소고기 사 묵으면 뭐 하겠노, 힘 나서 일 열심히 하겠지. 일 열심히 하면 뭐 하겠노, 돈 많이 벌겠지. 돈 많이 벌면 뭐 하겠노,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 묵겠지. 소고기 사 묵으면 뭐 하겠노, 힘나서 일 열심히 하겠지. 일 열심히 하면 뭐 하겠노, 돈 많이 벌겠지."라고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코너를 마무리한다. 이 대사처럼 돈을 버는 목적은 ‘소고기를 사 묵겠지’와 같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배고픔을 해소하거나 남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다.
돈과 같은 재물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매슬로 박사는 인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순으로 충족된다고 주장하였다. 5가지 욕구 중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는 ‘하위 욕구’로, 애정과 소속의 욕구, 존중의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를 ‘상위 욕구’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위 욕구는 돈으로 어느 정도 충족이 가능하지만, 상위 욕구는 돈으로 충족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돈으로 사랑을 사기는 쉽지 않다. 설사 그런 사랑이 있더라도 그 사랑을 받아준 사람은 다른 목적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자산이 많은 사람도 그 자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존경을 받을 수 없고, 자아실현 또한 어렵다.
직장인은 하위 욕구와 상위 욕구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다. 직장인은 한 달간 시간과 노력을 들인 대가로 급여를 받는다. 급여를 가지고 의식주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어 하위 욕구는 충족할 수 있다. 일하면서 동료를 존중하고, 동료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동료의 사랑과 존중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일’은 하위 욕구와 상위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현실에서는 일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상사나 동료는 일의 가치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사람이다. 부하가 작성한 보고서를 읽으면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해 보고서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보다는 부하의 실수를 기다린 것처럼 야단치는 상사와 일하는 사람은 자신의 업무에서 일의 가치를 찾기가 어렵다. 이런 부하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다니는 불쌍한 사람이 된다. 반면, 힘들어하는 동료를 외면하지 않고 자기 일처럼 돕고, 수시로 관심을 주는 동료와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솟아날 것이다. 이럴 때 비로소 두 사람 모두 상위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
상위 욕구 충족을 위해서는 돈이 아니라 다른 자원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 믿음직한 친구나 동료는 건강한 삶을 위한 중요한 자원이다. 품성이나 체력도 물질과는 다른 자원으로, 이런 자원이 많을수록 스트레스를 견뎌내고 역경을 극복하기가 수월해진다. 이런 보이지 않는 자원을 심리자원이라고 하는데, 심리자원이야말로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소중한 자원이다.
돈이나 심리자원은 나눌 때 가치가 있다. 앞에서 나온 할머니의 삶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나 같으면 적당히 맛있는 것도 먹고, 잠도 따뜻하게 잤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우리와 그 할머니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동료에게 점심 사는 것도 아까워하고, 동료의 도움에 감사함을 표현하지도 않고,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어 주지도 않고, 괜히 사람들 앞에서 얼굴만 찌푸리며 사랑할 기회들을 놓치고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기가 어려워 주머니 사정이 어려우면 마음에 가득 담긴 심리자원을 활용하면 된다. 동료나 상사와 비싼 점심 대신 편의점 삼각김밥을, 비싼 프랜차이즈 커피 대신 커피믹스를 마시면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자.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 깊은 곳에서 따뜻한 열기로 주변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20년이 한 달 남았다. 지금부터라도 가족과 동료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베풀도록 노력하자.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충만하고 따뜻한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