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함께한 마지막 학년

by 말 없는 나무

나는 이제 졸업하는 학년이 되었다.

국가고시를 위해 올해는 공부에만 집중해야 하는 시기였다. 그런데 2019년 12월 말, 중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해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써야 했고, 학생들은 학교에도 가지 못했다. 10인 이상 모임 금지, 5인 이상 모임 금지 같은 규제가 이어졌고,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야 했다.

기숙사도 사용할 수 없어서, 시골집에 내려가 생활했고, 수업은 동생의 노트북을 빌려 온라인으로 들어야 했다. 교회에도 갈 수 없었으며, 집에만 머물러야 했기에 나는 학생이자 주부처럼 지내야 했다


아빠는 다른 동네로 일을 구해 나 가서 지냈기에 집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수업과 국시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마음이 한결 편했다. 집에는 할머니, 나, 남동생, 그리고 가끔 집에 오시는 삼촌들이 있었다. 나는 편찮으신 할머니를 돌보며 공부와 집안일을 번갈아 해내야 했다.


아침이면 출근하는 동생과 주 3회 물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시는 할머니를 위해 아침밥을 차렸고, 코로나 때문에 동생 점심 도시락까지 챙겨야 했다. 온라인 수업이 맞혀 남겨진 동생이 남긴 밥과 반찬들도 더럽다는 생각 없이 빨리 먹어치웠다. 나 자신이 엄마라고 느껴질 정도로 음식 솜씨와 야무지게 집안일하는 것도 늘었다. 마을 동네 할머니들이 오셔서 내가 만든 반찬을 맛보며 “시집가도 되겠다”, “원래 이렇게 요리를 잘했냐” 하고 칭찬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가족들을 챙긴 뒤에는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내 방에 들어가 줌(Zoom) 수업에 집중했다. 수업 도중 마을 사람들이 할머니를 찾아오면 잠시 불려 나가야 했고, 그럴 때는 수업을 녹음해 두었다가 저녁에 다시 듣고 공부했다.


집에만 있다 보니 공부 도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공책 하나 사려 해도 버스를 타고 나갔다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기에, 결국 교회에서 받은 달력을 공부에 활용했다. 달력에 외우기 어려운 의료법 조항들을 적어 벽에 붙여놓고 수시로 보며 암기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코로나 시절만의 독특한 공부법이었다.


그렇게 수업, 공부, 집안일, 밭일, 바닷일을 오가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 다시 학교에서 수업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캠퍼스 생활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새삼 깨달았다.


아빠가 가끔 집에 와 술을 드시고 잠들다 가기도 했지만, 예전처럼 힘들지 않았다. 이미 아빠의 술주정에 대한 면역이 생겨 두렵지도, 긴장되지도 않았다. 그저 귀찮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마스크는 여전히 벗을 수 없었지만, 2학기 개강 후 친구들을 만나 수업을 듣는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국가고시가 다가왔다. 마스크를 쓴 채 모의고사와 시험을 치러야 했다. 합격률이 높다고 했지만 가채점을 하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다행히 나는 합격했고, 교수님의 추천으로 같은 대학교 왕선배가 일하고 계신 병원에 12월 말 바로 취업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첫 사회생활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안고 있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