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술에 취한 날은, 집 안 공기가 무거웠다.
말소리도, 숨소리도 조심스러웠다.
그날도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는 슬리퍼를 끌며 집을 나섰다.
어린 나는 마을 회관 뒤편 철제 계단을 올라, 옥상 한켠에 웅크렸다.
밤하늘은 유난히 캄캄했고, 바람은 축축했다.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도, 강아지 짖는 소리도 모두 무서웠다.
하지만 집 안에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곳엔 내 편이 없었으니까.
시멘트 바닥에 앉아, 나는 조용히 울었다.
‘왜 나만 이럴까’, ‘이런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울음을 참고, 주먹으로 눈을 닦다가
문득,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숙아!"
할머니였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눈물과 콧물이 뒤섞인 얼굴로, 그저 일어섰다.
할머니가 나를 발견하자, 아무 말 없이 팔을 벌리셨다.
그 품 안에서 나는 말없이 울었다.
질책도, 질문도 없었다.
오직 따뜻한 체온과, 등을 천천히 두드리는 손길만 있었다.
그 밤, 나는 처음 알았다.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찾아줄 존재가 있다는 것을.
완전히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날 이후로, 내 삶은 조금씩 달라졌다.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할머니의 품을 떠올렸고,
그 기억은 나를 다시 일으키는 힘이 되었다.
지금도 가끔, 마음이 어지럽고 숨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다시, 마음속 옥상에 올라간다.
그리고 상상한다.
어둠 속에서 날 부르던, 할머니의 그 작은 목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