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누리 Dec 03. 2022

여행 중 한 번쯤은 경험할 인종차별에 대처하는 법

무례함엔 단호함으로

일단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지난 200여 일간의 세계여행 중 나는 인종차별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내가 유독 운이 좋은 덕분인지, 아니면 나를 둘러싼 세계가 아직 따뜻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까지 길에서 만난 많은 인연은 동양에서 온 이방인을 따뜻하게 대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소수의 경우이긴 했으나 몇몇 국가에선 나도 인종차별로 열 좀 받아봤다는 거다. 우주에서 영화도 찍는 시대에 국가, 인종 따위로 사람을 나누는 편협한 사고라니! 물론 여기서 인종차별에 관한 개인적인 분노를 쓰고자 하는 건 아니다. 그보단 '인종차별, 그 후'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한국을 떠나 여행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인종차별과 관련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야! 너 방금 뭐라고 했냐?" 하며 달려들자니 신변에 위협이 생길 것 같고(달려든다고 해서 내가 그들을 이길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렇다고 그냥 무시하자니 속은 부글부글 끓는 아주 불쾌한 경험을 말이다. 그럴 때 꽤나 잘 먹히는 나만의 반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나는 장기간의 여행을 통해 그 방법을 찾아냈다. 이게 정답이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무례한 그들에게 경고했고, 속이 시원했다. 나름대로 터득한 방법은 이거다. '무례함엔 단호함으로!' 무례하게 구는 이들 앞에서 쫄 필요 없다는 거다. 이 방법, 의외로 잘 먹힌다.


첫 시도(?)는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에서였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난데없이 한 단어가 선명하게 귀에 꽂혔다. "칭챙총~ 흐흐~'. 순간 귀를 의심하며 돌아봤다. 주인공(?)은 4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평범한 남성. 곁에는 자녀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내게 왜 그런 단어를 내뱉었는지 추궁할 마음은 없었다. 굳이 사과를 받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다만 그 행동이 굉장히 무례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문제적 남성'의 눈을 매서운 표정으로(나는 그랬다고 생각한다) 쳐다봤다. 째려봤다는 게 더 적합한 표현이겠다. 그가 태도 변화를 보일 때까지 눈을 피하지 않고 있는 힘껏 째려봐주었다. 그러자 허허실실 웃던 남성은 이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아들 손을 잡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통쾌했다! 자신도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아는 거겠지. (아닌가?) 그때 그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굉장히 기분 나빴고,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하는 마음으로 못 들은 체하기 싫었을 뿐이다.


여행하다 보면 의외로 무례한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어린이도 자주 만난다. 아이들에겐 잘못이 없다. 모두 잘못 가르친, 혹은 아무것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어른 잘못이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정정해 줘야 한다. 그래서 인종차별 문제와 관련해선 어린이에게 조금 더 단호한 편이다. 역시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에서 경험했던 일이다. (오해 말길, 북마케도니아엔 따뜻한 사람이 훨씬 많답니다!) 자전거를 탄 어린이들이 우릴 보며 "칭챙총!" 하며 낄낄대는 게 아니겠는가. 그 순간 아이들을 향해 소리를 빽 질렀다. 이런 반격은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웃음기가 사라진 아이들은 성급히 페달을 밟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음 같아선 동양 여자의 매운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홍콩할매처럼 미친 속도로 뛰어가(이것만으로도 무섭겠지?) "너네 그러면 안 돼. 아주 잘못된 행동이라고!" 하며 훈화를 늘어놓고 싶었단 말이다. 하지만 충격요법만으로도 만족. 아마 어린 마음에 적잖이 놀랐을 거다. 그래 친구들아, 말은 아주 조심해서 내뱉어야 한단다.


물론 이 단호함이 안 통할 때도 있다. 딱 봐도 약(혹은 술)에 취해있다거나, 본능적으로 위험해 보이는 사람은 그냥 서둘러 피하는 게 상책이다. 괜히 단호하게 대응한답시고 째려봤다가 무슨 반격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럴 땐 정말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하는 마음으로(사실 무섭기도 하다) 잽싸게 갈 길 가는 게 현명하다. 그럼 대부분은 이내 흥미를 잃고 다시 자기들 세계로 돌아간다.


차별에 관한 글을 쓰며 어수룩하게나마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된다. 나는 과연 이 주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일까. 부끄럽지만 당당하게 '그렇다'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평소 악의 없이 한 말이 누군가에겐 차별의 언어로 들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매사에 사려 깊고 싶지만 사려 깊기 참으로 어렵다. 그래도 이렇게 풋내 나는 글이나마 쓰며 나를 되돌아보고, 고쳐가다보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돼 있지 않을까.


내가 사랑하는 오흐리드의 풍경


작가의 이전글 집도 절도 죽도 밥도 없는 여행자의 삶은 불안한 법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