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여행, 유토피아만은 아니랍니다. 근데, 그래도 행복해요.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에서 맞이한 여느 평범한 아침이었다. 늘 그렇듯 느지막이 일어나 비몽사몽 휴대폰부터 집어 들었는데, 순식간에 잠이 깼다. '여행 언제 끝나요? 올해 11월이라도 들어올 수 없나? 내가 편집장 시켜줄게. 함 생각해봐요' 전 직장 선배가 보내온 다소 직접적인 내용의 카톡에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눈만 끔뻑였다. '네? 편집장이요? 전 가출한 탕아인데요?'
이쯤에서 내 소개부터 해야겠다. 난 지난 3월 퇴사하기 전까지 모 교육매체에서 6년간 기자로 일했다. 평범한 기자였다. 이따금 의미 있는 기사를 써내 홀로 뿌듯해하고, 때론 '이딴 것도 기사라고 쓰고 앉아있나' 하는 회의감에 몸부림치는 그런 평범한 직업인이었다. 회사 생활은 순탄했다. 좋은 선배를 만나 운이 좋게 빠른 승진을 했고, 어린 나이에 취재팀장이란 감투를 썼다. 선배는 늘 "편집장이 되려면 이런 것도 알아둬야 해" 하며 내게 많은 것을 귀띔해주셨다. 난 어미새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쑥쑥 자라는 아기새처럼 열심히 내게 필요한 것들을 흡수했다. 성실하게 지내다 보면 머지않은 시점, 의심의 여지없이 한 매체의 어엿한 편집장이 될 터였다. 그렇게 착착 앞으로 나아가던 내가 지난 1월 난데없이 퇴사를 선언했다. 세계여행을 하겠다고 말이다! 지지부진했던 퇴사의 과정을 지금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어쨌든 난 회사와 건강하게 작별했고, 지금은 집도 절도 없이 150여 일째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중이다.
내가 퇴사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조금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열망.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더 나이가 들면 결혼이나 육아, 노후준비 같은 사회가 내게 요구하는 각종 바운더리에 나를 가둘 것만 같았다.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더 실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돛줄을 던져라. 안전한 항구를 떠나 항해하라' 마크 트웨인의 명언을 들먹이며 불안한 순간마다 내 결정을 합리화했다.
그렇게 난 '자발적으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 됐다. 좋게 말하면 콘텐츠 크리에이터, 나쁘게 말하면 그간 열심히 벌어 놓은 돈이나 까먹는 백수다. 여행이 길어지다 보면 자연스레 여행이 일상이 된다. 그래서 즐겁게 여행을 하다가도 밀물이 몰려오듯 '헉' 하고 불안한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러다 나만 정말 저 멀리 뒤처지는 건 아닐까. 1년간 신나게 즐기는 사이 고통은 후불제로 쌓이고 있는 게 아닐까. 한국으로 돌아가서 마주한 현실은 냉혹하지 않을까.
그러니 다시 회사로 돌아오라는 선배의 카톡에 마음이 콩닥콩닥 뛸 수밖에. 그냥 돌아오라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지금 너 한식이 굉장히 당기지? 따뜻한 집밥이 그리울 거야. 지금 돌아오면 맛있는 한식 마음껏 먹을 수 있어. 돌아올래?" 하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잠시 흔들렸다. '인생에 절호의 기회가 총 세 번 온다는데, 그게 지금인가?' '하! 나 참 세속적인 사람이었구나' '편집장이란 감투, 그게 갖고 싶었니?'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선배의 카톡을 본 그 짧은 순간 별별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도 그럴 것이 난 내 일을 사랑했다. 비록 사회부, 정치부 기사처럼 화려한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늘 독자에게 가닿는 기사를 쓴다고 생각했다. 내 기사의 독자는 정해져 있었고, 난 그들을 위해 사려 깊은 기사를 쓰고자 최선을 다했다. 편집장이 되어 꺼져가는 우리 신문의 명맥을 다시 한번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감히 해봤다. 어쨌든 지금 내 앞엔 두 개의 갈림길이 펼쳐졌다. 안정적이고, 익숙하고, 편안하며, 예측 가능한 삶. 반면 늘 불안하고, 내일이라도 당장 무슨 일이 생겨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 새롭고 즐거운 삶.
냉수 한잔을 들이켜고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오히려 지금 내가 걷는 길에 확신이 들었다. 나는 지금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면 평생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았다. 이런 확신이 들자 마음이 상당히 흡족했다. '그래. 내 결정이 틀린 게 아니었어. 주체적으로, 진심을 다해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구나.' 머릿속 한바탕 소란은 30여 분만에 셀프 정리가 됐다. 곧장 메모장을 켜 선배께 보낼 장문의 문자를 정성스레 적어나갔다. '선배, 답장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일단 저를 아직도 예쁘게 봐주시고 능력 이상의 자리를 선뜻 제안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선배...'
이 일이 있은지도 벌써 한 달이 더 지났다. 그사이 난 알바니아와 몬테네그로라는 생전 처음 들어본 나라도 다녀왔고, 크로아티아와 오스트리아에서 살 떨리는 물가를 경험하기도 했다. 여전히 불안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어쩌랴! 내가 선택한 길인 걸. 인간은 원래 불안하도록 태어났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원시시대 때 멸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때로 불안은 좋은 동력이 된다. 그래서 요새는 가끔씩 밀려드는 불안을 거부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려고 노력한다. 불안한만큼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귀한 시간을 더 음미하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여행지에선 진심을 다해 행복해하고, 그다지 보잘것없는 도시에서도 여행자의 본분을 잊지 않고자 열심히 그곳을 공부하며 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없는 여행자의 삶은 필연적으로 고단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여행의 '여(旅)'가 나그네를 뜻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알 수 있다. 한 짐 가득 지고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의 삶, 그게 여행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일 년 간의 이 경험이 훗날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양분이 될 것이란 걸. 길가메시 같은 대서사시 주인공과 실제 역사 속 수많은 인물도 여행을 통해 좌절하고, 성장했다. 그렇기에 나 역시 불안함을 벗 삼아 오늘도 열심히 여행 계획을 짠다! 지금은 체코 프라하에 있다. 오스트리아보단 물가가 저렴해 마음이 한결 가볍다. 신문사에 보낼 원고 작업도 2회분이나 마무리했다. 이제 놀 시간이다. 프라하에 다양한 펍을 돌아다니며 무제한으로 맥주를 마시는 프로그램이 있단다. 벌써부터 끝장나게 놀 생각에 기대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