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소와 용기
“한동아 친구 때리면 안 돼!”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표현하는 한동이··· 오늘도 결국 한 명의 친구를 울린다. 정말 눈에서 화살이 튀어나올 듯 한동이를 쏘아본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조금 이 상하다. 그러고 보니 한동이는 교사가 훈육을 할 때마다 두 눈을 깜박였던 것 같다.
한동이는 ‘나는 왜 선생님이 나에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눈빛으로, 입으로는 “ 네 안 그럴게요. 안 때 일거예요. 사과할 거예요.”라고 말한다. 늘 이런 감정 없는 말투에 화가 났는데 오늘은 아이의 눈 깜박임이 눈에 박힌다. ‘이거 틱이구나’ 오랜 교사생활을 하다 보니 유아들에게만큼은 소아과 의사고 상담센터 소장이 되는 것 같다.
불편한 상황이나 심심할 때 눈을 깜박이는 아이들이 매 년 종종 있다. 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신체 틱이나 음성 틱이 나타난다. 대부분 부모님들도 인지하고 있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안다고 하여도 실천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부모님도 같은 심리적 증상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동이 한 명을 보면 충분히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지만 많은 아이들 중 한동이 한 명은 백배의 어려움을 준다. 때리고, 던지고, 소리 지는 한동이 그리고 한동이를 교사에게 야단을 쳐 달라고 뛰어 오는 아이들... 나는 너무 힘들고 지치며, 회의감이 든다. 당장이라도 유치원 문을 벌컥 열어 뛰쳐나가고 싶다. 하지만 나는 사직서 대신 모래놀이 실을 구성했다.
입사했을 때 이미 유치원 구석에 모래상자 소품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4년 동안 쓰지 않아 아직도 뽁뽁이에 싸여 있는 것이 많았다. 나는 한 달에 딱 두 번 사용하는 공방에 소품장을 넣고 모래상자를 구성하여 실내 모래놀이실을 만들었다. 한동이처럼 타인 조망수용능력이 부족하거나 감정을 몸으로 풀어내거나 아니면 유아가 벌써 가면을 쓰고 감정을 숨기는 경우 실내 모래놀이는 매우 도움이 된다.
세상에 모든 언어들이 작은 소품으로 존재하니, 저 밑에 무의식의 세상에 찾아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얘들아 이 상자는 내 마음 상자야. 그리고 이곳에는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소품들이 가득하단다.” 나는 아이들에게 실내 모래놀이에 대한 안전과 약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실내 모래놀이를 시작한다.
먼저 유아들은 치유를 상징하는 모래를 만지며 뿌리기도 하고 모아서 산을 쌓기도 한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 상자에 올려 두고 싶은 소품을 가져올까요?”라고 귓속말을 하니 마치 동네 슈퍼에서 특가 세일 때 아줌마들이 몰려드는 것처럼 아이들은 소품장으로 뛰어간다. 나무, 키티, 공룡, 배, 등등의 소품을 가져와 자신의 모래 상자위에 올려놓는다.
상자에 가득해서 모래바닥이 보이지 않게 가져다 놓은 것도 있고, 소품 하나만 가져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들도 많다.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은 것은 좋지 않다. 어느 것에라도 치우치면 불균형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놀이시간인 40분이 지나고 유아들에게 ‘오늘 나의 마음 이야기가 되어줘서 고마워’라고 마음속으로 말하면서 모래상자를 정리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소품을 모두 정리한 유아들은 자신의 모래상자를 만지며 기다려 준다. 그냥 모래인데 그리고 그저 많은 작은 피겨들인데 유아들은 표정이 매우 평온하고 따뜻해 보인다. 마치 쌓여있던 것이 내려간 것처럼 말이다. 나는 한동이가 쌓여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자연스럽지 못한 육아방식과 본래 가지고 태어난 기질이 충돌하여 꾸러기 아이를 만든 것이다. 그래도 이런 아이들은 어렵지 않다.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은 어렵지 않다. 채워진 것보다 버리는 것이 어렵다.
하준이는 후자다. 가정에서는 어떤 정지선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매일 기도하기 시작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 안에 진짜 너희들의 마음을 하나씩 담아내자.’ 나는 실내 모래놀이 상자를 통해 아이들이 해소의 과정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담게 된 나의 무거운 감정 덩어리를 다양한 무의식의 언어로 담아 풀어내면 감정 덩어리가 풀리고 그러면 긴장할 때 나타나는 틱도 주의가 산만한 것도, 학습장애도 모두 풀어지고 연해져서 감정의 신체화가 사라질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임상적 경험일 뿐 나의 생각을 단단히 세워 줄 무언가가 없다.
나는 나에게 다가온 아이들 특히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해소되고 용기를 얻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나의 유아 실내 모래놀이와 모래놀이치료사 과정에서 겪게 되는 전문성을 위해 나는 모래놀이치료사 상담과정 수업을 듣기 시작하였다. 유아교육현장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아이들의 마음 건강이 지키는 일인 것 같아 홀리듯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