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간의 지점
코로나 때문에 책상에는 칸막이를 치고, 최대한 혼자 자신의 자리에서 놀이해야 하는 교실이 나는 너무 답답하다.
이 아이들을 만나고 4개월이 지났다. 급간식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오감으로 만나야 하는데 표정을 살필 수 없으니 이름을 외우는 일도 감정을 읽어 내는 일도 도대체가 답답하다.
계획은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우리 반은 시간이 주어지면 숲을 오른다. 일주일에 네 번도 간다. 숲에서는 크게 숨을 쉬며 마음까지 뻥 뚫리는 것 같아 즐겁다. 나무만 보아도 좋고, 개미만 발견해도 아이들은 신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달팽이다. 동네가 훤히 보이는 꼭대기 오솔길을 따라가는데 달팽이가 많다.
‘아차! 어제 비가 내려 땅이 촉촉하구나.’ 숲에서의 놀이도 늘 계획이 있는데 역시 오늘도 계획하지 않는 놀이가 시작된다.
“얘들아~ 선생님 두 마리 잡았다. 한 마리는 좀 크다.”라고 말하며 유아들에게 소리쳤다. “선생님 볼래요. 저 주세요.”라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가 손을 내민다. “안돼! 선생님도 달팽이 귀엽단 말이야. 너도 찾아봐.”라고 말하며 진심인 듯 발현과정인 듯 새침하게 말한다.
그런데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여기저기서 “저도 잡았어요.”라고 소리치기 시작한다.
그냥 숲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명주 달팽이를 잡는 것에만 한 시간이 걸렸다. 그것도 보물을 발견한 듯 소리를 지르면서 말이다. 준비되지 않았기에 누구는 손바닥에 누구는 나뭇잎에 달팽이를 올려 유치원으로 가져온다.
“선생님 집에 가져갈래요.”라고 말하며 유아들은 재활용품 영역에서 요플레 통 두 개를 꺼내더니 한 곳에 달팽이를 넣고 한 곳에는 물을 담아 달팽이를 집에서 키우겠다고 한다. 교사가 잡은 것은 관찰 통에 넣어 둔다.
유아들을 모두 귀가시키고 컴퓨터에 앉아 달팽이 키우는 방법을 찾는다. 관찰 통에 넣을 흙과 달팽이 영양제를 구매하고 내일 유아들과 달팽이에 대해 알아볼 이야기 나누기 자료를 준비한다. 그런데 자꾸 가슴속에서 신명이 난다. 달팽이가 내 손 위에서 부드럽게 지나가는 느낌도, 유아들이 달팽이를 발견하여 환호하는 소리도 귓가에서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나 정말 행복한 직업이구나!’라고 생각하며 퇴근을 한다.
며칠 뒤, 우리 반은 달팽이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사는 곳, 먹이, 구조 등등의 자료들을 준비하고 달팽이와 관련된 다양한 그림책을 준비했다. 와 ~ 그런데 이런 행운이 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얘들아~ 지금이야~ 우의를 입고 숲에 가자.” 나는 너무 설레어 아이들에게 소리를 쳤다.
비가 내려도 숲 놀이를 하는 유치원이라 유아들은 거부감 없이 우의를 챙겨 입고는 왜 지금이냐고 묻는다. 나는 달팽이가 왠지 지금 비 맞으러 밖으로 나왔을 것 같으니 만나러 가자고 말한다.
“우와! 선생님 최고!”
이번에는 처음부터 단단히 준비한다. 운동장 텃밭에서 자란 상추와 달팽이를 담을 통까지 준비하고 숲으로 향한다. 역시... 명주 달팽이들은 샤워라도 하는 듯 땅 위에서 풀 위에서 꾸물꾸물 기어간다. 한 발 한 발을 옮길 때마다 달팽이가 여러 마리다. “선생님 저 열 마리 잡았어요”,“저는 하나, 둘, 셋.... 열세 마리 잡았어요” 유아들과 땅만 쳐다보고 비 내리는 숲을 걸으니 정말 달팽이 천지다.
나는 허리가 아파서 고개를 들었다. 물안개가 퍼진 숲은 어둡고, 까맣게 젖은 나무들은 조금 무섭기도 하다. 그러데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는다. 아무도 어둡고 무섭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하하 몰입하고 있구나! 이것이 자연이고 교육이구나! 나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얼굴을 보며 너무 행복한 감정이 온다.
‘우리 반 아이들은 평생 이 시간을 기억할 거야. 달팽이를 잡았던 이 비 내리는 어두운 숲을 아주 행복한 시간의 지점으로 기억할 거야.’
나는 숲을 내려오면서 어깨춤이 절로 나서 아이들과 노래를 불렀다.
‘보슬보슬 비가 와요. 하늘에서 비가 내려요. 달팽이는 비 오는 날 제일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