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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진 Jul 19. 2021

한 아이를 만나는 것은 한 가정을 만나는 것

빛으로 흙으로 살아라!

 1학기 부모 면담을 시작한다. 한 반을 꾸려 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활한 유대감 형성이다. 유아 대 유아, 유아 대 교사, 교사 대 부모와의 관계가 단단해지면, 1년의 교육 살림이 참 행복하게 흘러간다. 그래서 늘 학기가 시작되면 유아들의 이름을 빨리 외워 한 명 한 명 불러준다. ‘선생님은 너와 사랑하며 지내고 싶어’라는 마음의 메시지를 온몸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유아들은 성인과 달리 굉장히 빠르게 친해진다. 하루 만에 처음 만나는 성인이지만 ‘우리 선생님’이 된다. 색종이로 하트를 접어 선물하고 삐뚤한 글씨로 자신의 이름과 나의 이름만을 적은 편지도 준다. 가정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이야기해주고, “선생님 너무 예뻐요.”라고 말하며 세상에서 가장 날씬하고 예쁜 선생님으로 만들어 준다. 이렇게 유아들과 마음을 나누고 나면 나는 그들의 가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한 아이를 만나는 것은 한 가정을 만나는 것이기에 부모님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면담 신청서를 받고 면담 당일에는 특히 해당 유아를 더 주의 깊게 살핀다. 대화의 첫 시작은 아이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한동이가 정말 색종이 접기를 잘해요. 자유놀이 시간이면 여러 친구들이 한동이에게 둘러앉아 색종이 접기를 배우더라고요. 한동이가 그 시간을 참 좋아하고 뿌듯해하더라고요”      

  이렇게 아이의 장점으로 시작하는 대화는 부모님과 나의 어색한 공기를 단숨에 포근하게 만들어 준다. 첫 면담이기에 나는 최대한 부모님이 많은 이야기를 편하게 꺼낼 수 있도록 돕는다. 사전에 면담 질문지를 받아, 부모님들이 궁금한 것 또 기관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1차적으로 육아 철학의 아우트라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학습과 놀이 중 어느 곳에 무게를 두시는지, 가정의 하루 일과 중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은 어느 정도이며 이때, 무엇을 하는지 등의 기록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짐작된 자료를 면담을 통해 확인한다.      

  대부분 면담 질문지의 작성과 일관된 이야기를 하시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부모의 가면을 쓰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자녀의 행복감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부모라서 가지게 되는 욕심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영어시간에는 발표를 하나요?”, “학습 시간에 자리에 잘 앉아 있나요?”라는 질문을 시작한다. 이때 교사는 반드시 그러한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 “어머니 영어시간에 발표하는 것보다 즐겁게 참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요? 유치원의 교육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지 가장 궁금하시지요?”라고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이후 이러한 부분을 자세히 기록하고 유아의 학습 참여도와 또 그때, 일어나는 흥미와 아이디어를 관찰하여 때때로 부모님께 전달해야 한다. 그렇게 부모님이 ‘아! 우리 선생님이 내 아이의 학습에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시는구나!’라는 믿음으로 관계가 형성되면 그때 조금씩 교사로서 욕심을 부리기 시작해야 한다. 유아시기에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지금 이 아이에게 주어야 하는 적절한 지원은 무엇인지에 대해 교육적 전문성으로 다가설 수 있다.      

  이렇게 한 아이, 한 가정을 만나는 설레는 일이 조금은 고단한 속에서 이뤄지고 나면 이제 진짜 우리 반이 되고 우리 아이들이 되어 하루하루가 의미로 만들어진다. 소소한 일상들을 전화 면담을 통해 전달하기도 유아들과의 행복한 교육적 상황들을 사진과 영상에 담아 가정과 공유한다. 그렇게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공유할 것들이 많아지면 모든 학기가 마무리될 때까지 부모님들은 내 편이 되어 준다.     

  아이가 다쳐서 전화를 드리면 “아유 선생님 많이 놀라셨지요? 상대 아이는 괜찮나요? 꾸러기 맡기고 너무 죄송하고 감사합니다.”라고 오히려 나의 마음을 헤아려 주신다. 또한 유아들의 사진을 키즈노트에 올리면 늘 대단하고 노력하는 교사로 만들어 주신다. 하루의 일과가 때로는 피로감으로 가득할 때, 이러한 배려와 헤아림은 비타민이 되어준다.      

  그렇지만 모든 아이, 모든 가정을 그렇게 만나고 그렇게 하나가 될 수는 없다. 교사마다의 교육적 색깔이 있는데 그것이 때로는 너무 상반된 가정을 만났을 때는 곤란함을 겪는다. “아니 선생님 저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요. 그냥 다치는 게 싫어요. 그냥 그 아이랑 부딪히지 않게 해 주거나 반을 옮겨 주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 마음이 쿵! 하고 아프지만 그것 또한 교사의 몫이기에 차분히 대화를 풀어간다. “알겠어요 그럼 일단 선생님 말 믿도 당분간 지켜볼게요.” 그럼 다시 이 부모와의 관계 맺기를 처음부터 시작한다. 공감, 그리고 유아 관찰, 반복적인 대화를 만들어 간다.      

  해가 지날수록 교사의 지지도가 낮아짐을 느낀다. 그래도 이 일이 이렇게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너무 재밌고, 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님들의 작은 배려와 격려에 힘이 나고 용기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것이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인 것 같다.      

  이희진 네가 세상에 나아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만나는 것이야 그곳에서 빛으로 흙으로 구름으로 살아라~ 하고 보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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