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모도섬 짐승 앞에서

박성진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코모도섬 짐승 앞에서



시조 원문


〈코모도섬 짐승 앞에서〉

― 박성진 시조


눈 감으면 짐승 와서

내 그림자 혀로 핥고

검은 눈으로 나를 본다


그는 아무 말이 없고

나는 그의 침묵을 배워

바위 위에 오래 앉는다


모래를 걷는 그 발은

차가운 내 심장을 밟고

어디론가 천천히 간다


인간아, 네가 언제

너 자신을 두려워해

눈을 내리까느냐 묻는다





평론:


〈코모도섬 짐승 앞에서〉 – 침묵의 짐승, 인간의 내면을 흔들다


박성진 시인의 이 현대시조는 전통 시조의 형식미를 지키면서도, 심오한 존재론적 사유를 짧은 연 안에 농축하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1연은 ‘눈 감으면 짐승이 온다’는 불길하면서도 섬세한 심리적 묘사로 시작한다. 짐승은 외부의 야수라기보다, 내면에 잠든 원초적 본능이자 두려움의 은유다. "그림자 혀로 핥고"라는 표현은 자기 성찰의 고통과도 같은 이미지다.


2연에서 "그의 침묵을 배워" 앉는 화자는 윤동주의 시적 화자를 연상시킨다. 드래건의 침묵은 자연의 침묵이며, 인간은 그 앞에서 말 이전의 겸허함을 배운다.

3연에서는 그 짐승의 발걸음이 "차가운 내 심장을 밟고" 간다. 짐승의 존재가 인간의 내면을 건드리는 윤리적 충격으로 변모하며, 감각적 시어와 철학적 사유가 만난다.


4연은 이 시조의 중심 메시지를 선언한다. “너 자신을 두려워해 / 눈을 내리까느냐”는 물음은 윤동주 시에서처럼 자기 응시의 도덕적 진실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짐승은 인간 바깥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다.


박성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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