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완, 바다의 잠

박성진 여행작가

by 박성진

팔라완, 바다의 잠



박성진 시인 창작


〈팔라완, 바다의 잠〉


파도가 조용히 눕는 저녁

망그로브 뿌리 따라 흐르다

빛은 숨어, 사랑이 깨어난다


산호보다 더 맑은 그대 눈빛

바람도 숨죽이는 틈새로

나는 그리움의 노를 젓는다


팔라완의 밤은

깊고도 환한 물의 기도

그대, 나의 마지막 섬이여





시 해설


이 시는 필리핀 팔라완 섬의 황홀한 저녁을 감각과 정서로 엮은 **시적 명상(詩的 冥想)**입니다. 박성진 시인의 섬 연작 중에서도 특히 **'사랑과 고요의 밀도'**가 가장 짙은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1연 - 자연과 사랑의 첫 장면


“파도가 조용히 눕는 저녁”은 팔라완의 고요한 해변의 황혼을 시각적으로 그려낸 구절입니다. 맹그로브 숲의 뿌리와 흐름은 시간과 감정의 뿌리를 더듬는 상징으로 읽히며, “빛은 숨어, 사랑이 깨어난다”는 반전의 한 줄은 시 전체의 감정적 긴장을 고조시킵니다. 사랑은 빛이 사라질 때 비로소 등장하는 내밀한 감정이자, 밤의 이름입니다.


2. 2연 - 정념과 정지의 순간


“산호보다 더 맑은 그대 눈빛”은 팔라완 바다보다 더 투명한 내면의 사랑을 상징합니다. 이때 “바람도 숨죽이는 틈새”는 자연조차 멈춰 선 찰나를 묘사합니다. 시인은 그 틈새로 “그리움의 노를 젓는다”라고 하여, 사랑과 시간의 내적 항해자로서의 자아를 보여줍니다.


3. 3연 - 존재론적 종착점


“팔라완의 밤은 깊고도 환한 물의 기도” — 이 구절은 팔라완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정신적 성소로 재해석한 표현입니다. “그대, 나의 마지막 섬이여”는 이 시의 핵심 문장입니다. 모든 사랑이 끝내 닿고 싶은 장소, 혹은 기억 속 가장 아늑한 피난처로서 팔라완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총평


이 시는 ‘낙원의 풍경’과 ‘그리움의 정서’가 교차하는 서정의 정수입니다. 박성진 시인은 팔라완의 아름다움을 단순한 묘사를 넘어서 존재론적 고요로 바꾸며, 독자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감각적 침묵과 사랑의 여운을 남깁니다.


박성진 칼럼니스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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