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의 80주기 특집 11,

박성진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부끄러움의 시학과...



윤동주 80주기 특집 평론 11,



〈참회록〉 ― 부끄러움의 시학과 ‘자기라는 감옥’


박성진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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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 전문


〈참회록〉 –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렇게 부끄러움에 떨고 있는가.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천 번을 쓴다.

그 죄의 글자 위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懺悔)를 덧붙인다.

— 사랑하리라.


만 이천 번을 쓴다.

나는 진정으로 부끄러움을 위해서만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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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평론


“시의 윤리는 ‘부끄러움’이다. 그 윤리를 지켜낸 시인이 윤동주다.”

〈참회록〉은 한국 시사에서 가장 철저한 자기 고백이자 윤리적 선언문이다.

시인은 거울 속의 얼굴을 역사적 책임과 개인적 죄의식으로 마주한다.

이 시는 단순한 회한이 아니라,

‘자기라는 감옥’을 부수고자 하는 시적 결단의 기록이다.


핵심 구절은 단연 다음이다.


>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 만 이천 번을 쓴다.”

여기서 ‘만 이천 번’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이것은 시인이 평생 동안 반복해서 쓸 수밖에 없는 윤리의 문장이다.

그는 죄의식 속에 머무르지 않고,

그 위에 “사랑하리라”는 문장을 덧붙인다.

이 구절은 곧 윤동주 시의 전환점이며,

자기 고백에서 타자 사랑으로 나아가는 시학의 궤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시구는 더욱 깊다.


> “나는 진정으로 부끄러움을 위해서만 살아왔다.”

이 문장은 윤동주의 시적 삶 전체를 요약하는 핵심 진술이다.

‘부끄러움’은 그에게 반성과 소극의 감정이 아니라,

시인의 존재를 구성하는 도덕적 뼈대였다.

그는 ‘말하는 자’가 아니라, **‘참회하며 말할 자’**가 되고자 했다.

이 시를 읽는 독자 또한

그 앞에서 쉽게 고개를 들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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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늘의 독자에게


윤동주는 ‘부끄러움’을 시대 앞에서 입은 문학적 상처의 훈장으로 삼았다.

오늘날 우리는 ‘용기’ ‘정의’ ‘분노’는 쉽게 외치지만

‘부끄러움’은 얼마나 자주 말하는가?


〈참회록〉은 잊힌 윤리, 사라진 성찰의 언어를 복원한다.

그가 말한 ‘부끄러움’은

무기력한 자책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정면으로 마주한 인간만이 쓸 수 있는 시학이다.


지금 우리가

윤동주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가장 외로운 시대에

가장 고요하고 가장 정직한 목소리로

자기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그 고발은

시인이 아니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어야 할 삶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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