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자 시인의 《나팔꽃 인생》

박성진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변희자 시인의 《나팔꽃 인생》



《나팔꽃 인생》


변희자 시인


초장


해가 뜨면 활짝 열고 지는 해엔 조용히 접는

사랑은 나팔꽃이라서 소리 없이도 아름답다

벽 하나 품으면 온 세상 내 창문이 되었다


중장


비틀린 철창을 타올라 너른 하늘을 껴안으며

고단한 삶의 골목에도 제빛으로 아침을 불렀다

바람도 울던 그 여름날, 나는 꽃이었다


종장


묶이면 피고, 젖으면 핀다 – 그대가 몰랐던 진실

눈물로 여문 저 빛깔은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여자의 생엔 하루가 곧 한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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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박성진 칼럼니스트


《나팔꽃 인생》은 ‘여자의 생엔 하루가 곧 한 생이다’라는 마지막 행이 시의 핵심 진술이자, 전 생애를 관통하는 화자의 자기 증언이다. 나팔꽃은 흔히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는 꽃으로, 하루살이 운명을 상징하지만 여기선 그것이 곧 여성의 삶의 궤적이 된다.


변희자 시인은 ‘묶이면 피고, 젖으면 핀다’는 역설적 진실을 통해 억압과 고난이 오히려 아름다움의 조건이 되는 현실을 그려낸다. 이는 한국 여성, 더 나아가 모든 헌신적 존재들이 감내해 온 일상의 미학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중장의 "비틀린 철창을 타올라"는 여성의 사회적 제약을 상징하며, 그러한 경계를 꽃처럼 넘나드는 생명력이 나팔꽃에 투영된다. 나팔꽃은 담장에 피어 주변을 창문 삼아 세상을 보게 해 주고, 자기 삶을 우주의 일부로 확장한다.


이 시조는 단순한 식물의 노래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여성의 역사와 자기 서사의 축소판이다.

나팔꽃은 피고 지되 그 흔적을 남기고, 삶은 사라지되 그 향기를 남긴다.


바로 이 점에서 《나팔꽃 인생》은 여성시조의 거목이 될 수작이자, 현대시조가 품어야 할 존엄과 서정의 융합 모델로 우뚝 선다.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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